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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an 14. 2021

여행병에도 변형 바이러스가 있다

스트리트 푸드파이터를 너무 열심히 봤나 봐

tvn 유튜브 채널에서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전편을 24시간 스트리밍 해주고 있다. 언제든지 유튜브만 들어가면 방송 중인 스트리트 푸드파이터를 볼 수 있다. TV에서 본방송을 할 때도 워낙 좋아했던 프로그램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매번 본방사수를 못하고 재방송을 봤다. 심지어 처음부터 각 잡고 본 것이 아니라 채널을 돌리다가 하면 봤던 식이라 띄엄띄엄 여러 도시 편을 봤다. 이 정도라면 '워낙 좋아했던'이라고 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어쨌든 스트리트 푸드파이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몇 안 되는 TV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다. 그래서 집에 있는 이때 제대로 보자는 결심으로 아침마다 눈을 뜨면 바로 유튜브에 입장한다. 그렇게 음악을 BGM 삼아 들으며 일하는 카페 직원들처럼 백파더님의 목소리와 음식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낸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로 인해 의도치 않게 여행병이 도졌다. '코시국에 여행병은 흔한 거 아닌가?'싶지만 이번 여행병은 변형 바이러스처럼 증상이 다르다. 어디가 가고 싶은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해외여행하면서 먹었던 그 음식들이 계속 떠오른다. 어느 한 곳도 아니고 국적 불문하고 불쑥불쑥 음식 모양새들이 그려진다. 그 음식들은 다음과 같다.




네덜란드 항공사에서 줬던 기내식

어느 레스토랑에서 먹은 것도 아니고 기내식이다. 누군가는 싫어하는 바로 그 기내식. 하지만 나는 과하게 좋아해서 배탈이 나도 먹어야 하는 기내식. 그중에서도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네덜란드 항공에서 간식으로 받은 오믈렛 샌드위치가 생각난다. 겉모습은 정말 별 거 없다. 곡물빵 사이에 오믈렛 슬라이스와 파가 들어간 머스터드 후추 소스가 발라진 것이 전부다. 처음에는 당장 먹을 요량으로 받았으나 생각해보니 네덜란드 공항에서 경유 대기를 꽤 긴 시간 해야 해서 아껴두기로 했다. 어차피 기내식 먹은 지 얼마 안 됐으니까(네덜란드 항공도 기내식이 소화되기 전에 간식을 주는 사육 방식을 갖추고 있다) 그렇게 샌드위치를 정성껏 가방에 넣었고 네덜란드 공항 스타벅스에서 산 음료와 함께 먹었다.

TMI이지만 앞머리에 롤을 말고 주문한 동생을 보고 스타벅스 직원들이 희죽거렸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큰 기대 없이 집어 들은 샌드위치는 반전 그 자체였다. 마치 햄과 치즈만으로 완벽한 토스트를 만들어내는 한국의 토스트 가게들처럼 고소한 통밀 식빵 안에 들어있던 계란 맛과 굳이 가까운 소스를 찾자면 생선가스를 찍어먹는 타르타르소스와 비슷한 알 수 없는 소스의 조합이 동공 확장을 일으켰다.

"뭐야 이거?"

옆에서 커피만 홀짝대는 동생에게 엄청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동생은 소화가 안된다며 다 먹으라고 했다. 동생은 눈치도 빠르고 양보도 잘한다. 기특한 것. 아쉬운 척을 하며 두 쪽을 다 먹었다. 철없는 언니가 됐지만 멈출 수 없는 맛이기에 눈치 없이 다 먹었더랬다. 한국에도 곡물 식빵과 달걀 오믈렛 정도는 있으니 만들어보고 싶은데 그 소스를 도저히 모르겠다. 타르타르소스 같은데 타르타르는 아닌 마법의 소스는 대체 뭘까? 네덜란드 사람들은 흔히 먹는 소스인가? 네덜란드 마트에서 파나? 전혀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던 네덜란드인데 항공사에서 준 샌드위치 하나로 네덜란드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한국의 어떤 샌드위치에서도 이때 먹은 샌드위치와 비슷한 맛도 못 찾고 있다.


유럽 젤라토

유럽만 가면 시작되는 젤라토 사랑은 한 차례 따로 글을 쓴 적이 있을 정도다. 젤라토만큼이나 진한 애정이다. 최근 또다시 그 특유의 진한 단맛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대리 만족하면 되겠지만 그 혜자스러움을 한국에서는 만나기 어렵다. 분명 젤라토 전문점에서 먹는데 양을 많이 줘서 동네 편의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처럼 부담 없이 사 먹게 되는 건 오직 유럽에서만 가능하다. 심지어 맛도 수십 가지다. 가게마다 꼭 처음 보는 맛이 있고 가끔은 봐도 뭔지 모르겠는 맛도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먹어봐도 뭔지 모르겠는 맛도 있다.

"이거 먹어봐. 무슨 맛 같아?"

"음... 모르겠는데 고소하네."

"곡물류인가?"

"모르겠어."

이름을 모르면 어떤가. 맛만 있으면 되지. 쿨하게 모두 긁어먹는다. 이렇게 때로는 맛을 맞추는 재미에 때로는 한국에서 못 먹으니 최대한 많이 먹어야 한다는 불타는 의지에 혹은 그냥 길을 걷는데 보여서 먹고 또 먹는다. 콘으로 먹어도 컵으로 먹어도 언제나 맛있는 젤라토를 언제 또 유럽에서 먹을 수 있을까? 다시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젤라토만큼이나 달달한 설렘에 방방 뛰게 될 것 같다.


https://brunch.co.kr/@travelys/45



스페인 바르셀로나 'Taller de Tapas.에서 먹은 음식들

바르셀로나에 있던 사흘 사이에 두 차례를 간 타파스 전문 레스토랑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한 곳을 두 번 방문하는 일은 드물다. 최대한 많은 곳을 가야 직성이 풀리는 뽈뽈이 여행자이기 때문인데 바르셀로나에서 그 희박한 가능성을 뚫은 곳이 이 레스토랑이다.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거리인 람블라스 거리에 위치한 큰 규모의 레스토랑 'Taller de Tapas'는 스페인(에스파냐) 전통의 음식 형태이기도 한 타파스(Tapas)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타파스 본래 뜻은 식사 전에 술과 곁들여 먹는 간단한 안주라는데 그 안주를 주식으로 거하게 먹었다. 감자에 빵에 치킨까지. 이걸 타파스라고 하기에는 스스로도 민망하다. 그냥 안주인 것으로.

스페인어를 몰라 눈대중으로 찍어 주문했는데 이 날 주문한 메뉴는 모두 성공적이었다. 스테이크로 치면 미디엄 웰던으로 익힌듯한 감자 위에 간이 세지 않은 칠리소스와 샤워크림소스를 얹은 감자튀김은 함께 주문했던 생맥주와 찰떡궁합이었다. 흔해 빠진 감자튀김과 생맥주 조합인데 위에 뭔가를 더 뿌렸다고 이렇게 요리가 될 줄이야. 바게트 같았던 빵 위에 콩을 주된 재료로 사용해 만든듯한 맛이 나는 소스를 얹어먹었던 난생처음 보는 음식도 합격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재방문할만한 이유가 스페인 음식이 생각보다도 다들 많이 짰는데 이 레스토랑이 유독 한국인 입맛과 동일한 간으로 요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재방문해서 먹은 음식들도 모두 딱 적당한 간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먹은 상그리아가 스페인 전체 여행 기간 동안 마신 상그리아 중 가장 이상적인 맛이었다. 마지막 날 마셔서 아직까지도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중이다. 그때마다 천상의 맛이었지- 중얼거릴 뿐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산 파우 병원 앞 빵집에서 먹은 크루아상

우연히 갔던 빵집이다. 산 파우 병원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병원 앞으로 더 가까이 가려는 찰나 왼쪽에 보이는 빵집이었다. 빵집 안에 있는 빵들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거의 빨려 들어가다시피 이끌렸다.

"우리 이거 하나만 사서 나눠먹자"

그렇게 구경만 하는 것에 실패했고 손에는 갓 나온 것 같이 반질반질 바삭바삭해 보이는 크루아상이 들렸다.

먹기 전부터 엄청난 맛일 거라 예상 가능한 바삭한 모습이었지만 예상해도 먹어보는 것과는 또 천차만별이다. 동생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파사삭 소리 나는 크루아상에서 나는 버터향이 웃음이 절로 나게 하는 맛이다. 진짜 맛있는 음식은 말이 필요 없지 않은가. 그저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갈 뿐. 그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 하나만으로 모든 평이 대체되는 딱 그 맛이다. 하나 더 살까 고민하다가 그냥 간 것으로 기억하는데 과거의 나는 참 어리석었던 모양이다. 몇 년 뒤에도 너는 이 빵을 그리워하고 있단 말이야!


한인민박에서 준 김밥

물론 일반 현지 호스텔보다 숙박비는 비싸지만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강력한 강점이 있는 한인민박. 그래서 유럽여행을 갈 때는 한인민박을 한 도시 정도는 택하는 편인데 이 한인민박은 유독 벼르고 음식을 만드는 듯했다. 한식을 뷔페식으로 거하게 차려주시는데 별개로 이른 새벽부터 김밥을 싸서 복도 한쪽에 쌓아두신다. 그러면 투숙객들은 자연스레 한 줄씩 포일에 싼 김밥을 들고 여행길에 나선다. 덕분에 미술관 앞에서 포일에 싼 김밥을 먹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마치 한국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해외로 피크닉을 온 기분이랄까. 내용물이 엄마표 김밥만큼 다양하지는 않지만 해외 와서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애초에 못된 짓이다. 계란과 단무지, 고기가 들어간 김밥은 충분히 든든한 한 끼 식사였다. 햇살이 굉장히 강렬했던 날씨였는데도 미술관 맞은편 돌계단에 걸터앉아한 줄을 뚝딱 다 먹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다.


싱가포르 카야토스트
이제 보니 샌드위치의 맛에 재료의 가짓수는 그리 중요치 않나 보다. 버터와 카야잼뿐인데 줄을 서서 먹는 가게가 되다니.

싱가포르에 가면 누구나 먹을법한 '카야토스트'. 현지인들 사이에서 머쓱해하며 줄을 서서 주문했던 기억이 강렬하다. 이때만 해도 혼자 해외여행한 경험이 적어 언어를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게만 들어가면 기가 죽었다(지금은 너무 뻔뻔해서 현지인들만 답답하다). 아무도 뭐라 안 했는데 혼자 주눅 들고 긴장한 눈빛으로 바디랭귀지와 몇 가지 단어를 내뱉어 주문한 카야토스트. 원래 날달걀 같은 것도 주문하고 싶었는데 고른 것이 그게 아니었다. 다시 줄을 설 용기는 또 없어 그냥 먹었다. 바삭하게 식빵을 구운 뒤에 안에 큼직한 버터와 카야잼을 바른 카야토스트는 이때 난생처음 먹어봤다. 다시 방문하면 꼭 반숙란도 함께 주문할 거다. 함께 먹으면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하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그리워하는 카야토스트라는 것이 싱가포르에서 먹은 카야토스트의 맛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난생처음 먹었을 때의 그 맛'을 다시 경험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오직 처음일 때만 맛볼 수 있는 놀라움 말이다. 이유야 어쨌든 다시 가서 먹어봐야 정답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먹은 블랙버거

놀이공원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버거다. 블랙버거라니. 이색적인 비주얼의 블랙버거를 메뉴판에서 본 순간 버거라면 환장하는 초딩 입맛은 안 먹어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치킨 버거다(어릴 때 학원 선생님이 양계장 집 아들이랑 결혼하라고 했을 정도로 학생 시절부터 치킨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놀이공원 줄을 설 때만큼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세트 메뉴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누가 봐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먹은 음식인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온갖 패키지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로고가 프린팅 되어 있었다. 얼른 버거 포장지를 접어 먹었다. 애초에 당연한 것이겠지만 버거 번이 검은색이라고 해서 맛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냥 색만 검은색일 뿐. 이색적인 색 때문에 먹었는데 색은 2순위가 되었고 맛이 1순위로 치고 올라왔다. 번이 엄청 푹신하고 두툼했고 치킨도 맘스터치 치킨 버거 속 치킨만큼이나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게다가 놀이공원에서 먹는 음식치고 재료도 풍성했다. 원래 놀이공원 음식은 부실하면서 비싼 것인 줄 알았는데 이 햄버거를 먹으면서 '한국 한정이군' 확신하게 됐다.




 먹으러 여행 간다는 말이 있지만 그럼에도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여행지나 숙소가 많이 생각났는데 최근 변형된 여행 바이러스에 걸려 해외 음식으로 골골 앓고 있다. 아무래도 거리두기가 끝나면 해외 음식 전문점에서 외식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그전까지는 백파더님에게 무한 의지할 생각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나의 백파더님은 뉴욕에서 굴을 드시고 계신다. 아 나 굴 진짜 좋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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