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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Mar 11. 2021

와 진짜 좋겠다! 스물다섯이라니

그때만 할 수 있는 여행이 있다

어느 그룹에 들어가도 무조건 막내였던 이십 대 초중반, 여행을 다니면서 게스트하우스나 한인민박, 호스텔에 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런 것들이었다.

'와 진짜 좋겠다! 스물다섯이라니.'

'뭐? 90년 이후로 사람이 태어났어?'

'그럼 대체 몇 학번인 거예요?'

'와, 그 나이 때 나 뭐했더라.'

'진짜 부럽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거나 뜻을 모아 동행을 할 때, 항상 나이를 말하면 같은 의미의 반응들이 쏟아졌다. 나중에는 나이를 말한 뒤의 상황을 으레 짐작하면서 말했을 정도였다. 사실 그때는 반응이 모두 한결같아 일련의 '언제 밥 한번 먹자'같은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날씨 얘기라던가. 초면에 하기 좋은 무난한 몇 문장 중 하나일 뿐 진심이 담긴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흘러가는 시간이 아무렇지 않은 때였다. 한 살 더 먹어도 그저 새해라고 하하호호 재미있는 순간이 하나 늘었을 뿐이었다.


우습게도 스물여덟 살 때부터는 나도 그 말을 하고 다녔다.

"와! 진짜 부럽다. 저는 돌아가면 진짜 더 열심히 돌아다닐 거예요. 공부 더 안 해."

특히 여행을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행동 중 가장 좋아하는 만큼 여행지에서 만난 이십 대 초중반의 학생 혹은 사회초년생을 보면 꼭 이 말을 하게 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났던 대학생이라는 동생들에게도 이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삼 주째 유럽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친구들이 그저 부러웠다. 둘이 여행 성향 문제로 투닥거리다가 "언니 누가 맞는지 들어보세요?" 하며 구구절절 에피소드로 한 시간 동안 입을 멈추지 않는 모습조차 좋아 보였을 정도다. 이때쯤 깨달았던 것 같다.

'몇 년 전 내가 들었던 말들이 다 진심이었구나.'

지나가는 이십 대가 투박 해지는 기분이 드는 이십 대 후반에 들어선 뒤에야 나는 그 말을 했던 모든 분들의 말에 뼈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아쉬움이 담긴 말이었다는 것도.

그렇다고 지난 시간 동안 적게 돌아다닌 것도 아니다. 학교 수업 사이에 시간이 비면 근처에 가볼만한 곳을 다녀왔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혼자 해외여행도 여러 번 다녀왔다. 스스로 어떻게든 나가려고 아등바등했고 집안 환경도 여행을 좋아하는 만큼 주변 또래 친구들치고 국내외 여행을 많이 다닌 축에 속한다.

그런데도 이십 대 초중반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내가 돌아다닌 걸음 수의 두 배를 만들고 싶은 욕심 문득문득 튀어 오르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다시 돌아가면 더 열심히 다닐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동생들을 부러워한지 두 달이 조금 넘어(그놈의) 코로나가 터졌다. 인생을 여행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인 자칭 여행덕후에게는 가장 큰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하늘길이 막혔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급격하게 많아졌다. 아니 급격하게 많아진 정도가 아니라 거의 일 년을 넘게 집에만 있다고 봐야 할 정도다. '이렇게 집에서 하루를 다 보내는 날이 많았던 적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집수니가 되는 법을 익히고 있다. 그렇다고 역마살이 어디 가랴. 항상 떠나고 싶다. 특히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기내식으로 사육당하며 열몇 시간을 하늘에 떠있던 그 시간이 가장 그립다. 그리움이 크다고 온 우주가 도와주는 것은 아닌가보다. 결국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단 한 번도 못 간 채 2020년을 보냈다.

그러면서 내가 곧잘 말했던 '와! 진짜 부럽다'는 사뭇 다른 알맹이를 가지게 됐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생겼다. 시간이 가치관이 성향이 감정이 결정하는 '그때만 할 수 있는 여행'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숫자만 바뀌는 줄 알았다. 2020년에서 2021년이 되고, 28살에서 29살이 되고. 그게 다인 줄 알았는데 올해 처음으로 많은 변화를 느꼈다. 한 번에 지속적으로 걸을 수 있는 걸음 수가 대학생 때보다 확연하게 줄었다는 것을 직감했고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 어떤 선택 하나를 했을 때 잃는 것에 대한 미련, 어깨 근육통으로 예전보다 오래 매지 못하는 배낭 등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음을 코앞에서 목격하는 기분이다. 생생해서 더 아쉬운 것들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 변화에 주목하게 되는 순간도 잦아졌다. 운동, 공부 등으로 자기 관리를 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는 것도 인정하게 됐다. 과거의 여행을 그대로 다시 하는 것은 이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체력, 어떤 판단을 내릴 때의 기준 등을 기점으로 과거와는 다른 여행을 만들어갈 테니. 이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았던 시기가 이십 대 초중반이라 그 나이가 부러워졌다.

미래에 세계여행이라는 큰 목표를 갖고 있고 누가 뭐래도 갈 생각이라 준비도 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종종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 체력으로 정말 반년을 다닐 수가 있을까. 배낭도 오래 못 메는데.'

'난 정말 장기여행이 맞을까? 단기로 여러 번 다녀오는 게 더 후회 없지 않을까.'

1~2년 전에는 생각도 안 하던 것들에 자꾸만 물음표를 단다. 이래서 미루지 말라고 하나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을 내려두고 큰 결단을 밀고 가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비전 있는 회사에 합격하고도 거절하고 제주도 한 달 여행을 갔던, 일 년 전에 항공권을 끊어두고 크리스마스 유럽여행을 다녀왔던, 혼자 난생처음 해외여행을 가 보겠다고 앞뒤 안 쟤고 항공권부터 끊던 나와 계란 한 판을 앞두고 있는 내가 비교되는 요즘이다.


최근에 취미 모임에 갔다가 작년 가을에 보고 오랜만에 얼굴 보게 된 반가운 동생을 만났다. 이런저런 근황 토크를 하는데 당찬 동생 왈.

"저 한라산 가기로 했어요!'

동생의 말투에서 확신이 느껴진 만큼 이 친구 정말 가겠구나- 동생의 미래를 벌써 본 기분이 들었다. 대단한 결심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등산을 좋아하더라도 한라산은 어쩐지 미루기 딱 좋은 산이다. '언젠가 가야지'를 수십 번 하다가 못 가는 해만 반복되기 쉽다. 나도 스물네 살 때 가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가지 못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는 산이 한라산이다. 그만큼 동생의 의지가 빛나 보였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그 풍경을 꼭 봤으면 좋겠다! 나도 나중에 사진 보여주고.'

이번에는 부러움을 다른 말로 표현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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