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모였을 때의 북적북적한 분위기로 기분 전환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조용히 혼자 깊은 생각을 하거나 공간을 즐길 때 휴식이 가능한 사람도 있다. 필자의 경우도 후자에 가까워 혼자 이곳저곳 새로운 카페를 갈 때가 많은데 최근 잠실에서 가장 힙한 거리인 ‘송리단길’에서 혼자 갔을 때 온전히 쉬기 좋았거나 ‘혼자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카페들을 발견해 공유한다.
비정제(比定蹄)
송리단길에서는 사실 한동안 단골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카페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카페 비정제가 생김으로써 일명 ‘최애 카페’도 생겼다. 비정제는 작년 12월 말에 오픈한 비교적 신상에 속하는 공간이다. 특이점이 있다면 낮에는 커피와 브런치를, 저녁에는 와인 하이볼 등 주류를 즐길 수 있어 다양한 이유로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외부 음식도 반입이 가능하다. 원하는 음식을 외부에서 포장해 비정제의 메뉴와 즐길 수 있다. 최근 비정제를 첫 방문한 필자는 낮에 카페를 목적으로 방문했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등장하는 비정제의 공간은 조도가 낮아 해가 진 뒤를 경험하는 듯하다. 실제로 카페 안에 들어섰을 때 찰나 동안 눈이 갑작스러운 어두움에 적응을 못하는 듯했다. 눈이 어두움에 적응을 마치면 비로소 들어오는 힙한 인테리어와 저녁의 달을 보는 것 같은 조명들은 카페를 더욱더 편안하게 했다. 어두운 카페 공간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을 안정감있게 보낼 수 있었다. 분명 카페 공간도 넓고 좌석도 많은데 혼자 방 안에 있는 기분이 든다.
곳곳에 피워둔 인센스 향은 이국적이면서도 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편안한 향이었는데 그 향이 진해 카페에 있는 내내 코 주변을 맴돌았다. 카페를 다녀온 날 집에서도 생각이 났을 정도로 구매 욕구가 피어나는 향이다.
카페로서의 비정제는 여기에 특이점을 하나 더 얹는다. 전 메뉴 무설탕을 사용하며 일부 메뉴의 경우 락토프리/비건 요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메뉴를 고르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비건 카페가 될 수 있다. 비정제 딸기라떼를 비건으로 변경 요청하니 아몬드브리즈와 두유 중 선택이 가능했다. 아몬드브리즈의 맛은 호불호가 있으니 혹시 한 번도 마셔보지 못했다면 두유를 선택할 것을 추천한다.
비정제에서 먹어본 메뉴 중 가장 추천하는 메뉴는 ‘망고치즈 요거트볼’이다. 동그란 우드 보울에 담겨 나오는 요거트볼로, 냉동 망고와 치즈케이크, 코코넛청크, 아몬드 등의 견과류, 햄프씨드, 로투스 크럼블, 플레인 요거트가 예쁘게 플레이팅되어 나온다. 요거트볼의 양이 재료가 보울보다 위로 올라올 정도로 결코 적지 않아 브런치나 가벼운 식사대용으로 적합하다. 보기에도 만족스러운 비정제의 요거트볼은 먹어보는 순간 그 만족도가 더 커진다. 치즈와 망고의 조합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 꾸덕함과 사르르 녹는 짧은 순간에도 달콤한 망고 맛은 혼자 오기를 잘 했다는 다소 못된 욕심이 들 정도다. 혼자 이 요거트볼을 다 먹을 수 있다니! 여기에 요거트의 부드러운 식감과 바삭한 식감을 주는 견과류와 로투스 크럼블까지 더해지니 입안이 화려해지는 기분이다. 비정제의 요거트볼은 다음번 방문 시에 꼭 또 먹을 메뉴다.
뷰클랜드
뷰클랜드는 지인과 함께 방문했지만 혼자 또 한 번 방문하고 싶은 카페다. 온전히 구석구석 집중해서 즐기고 싶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뷰클랜드는 송리단길 메인 거리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주변에 생겨난 카페가 많아 ‘떨어져 있다’는 표현이 어색한 위치에 있다. 날이 좋은 날 뷰클랜드를 방문하면 햇살 가득 머금은 카페 건물을 볼 수 있다.
카페 뷰클랜드는 공식 인스타그램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아름다워지는 곳’이라고 쓰여있는 것처럼 휴식과 유독 잘 어울리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 카페를 기획할 때 책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는 비하인드스토리처럼 뷰클랜드 곳곳에는 책 속의 언어가 있다. 그중에서 넓은 사각형 창을 통해 볕을 한껏 받고 있는 우연책방이라는 공간은 카페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공간이다. 인중 이정화 서예가가 손수 적은 글이 담겨있는 책 표지는 카페 공간과도 잘 어울리면서도 서체가 주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 시선이 간다.
우연책방 공간 앞에는 나에게 필요한 문장을 발견하게 될지 모르는 북타로가 있다. 누군가의 인생 책 속 문장으로 만들어졌다는 타로카드는 여느 카페에서 만나기 힘든 경험을 하게 해준다.
책 외에도 카페에서 구입할 수 있는 여러 MD가 있는데 흔치 않은 MD가 많아 혼자 하나하나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꽤 흐른다.
다시 방문하면 다른 맛도 먹어보고 싶은 뷰클랜드의 케이크는 정사각형의 투명 케이크에 담겨있다보니 차곡차곡 샌드위치처럼 쌓여있는 케이크 단면을 보는 재미가 있다. 종류는 당근 케이크, 얼그레이 무화과 케이크, 쇼콜라 케이크, 빅토리아 케이크, 시솔트 초코 케이크가 있는데 사진 속 케이크는 ‘얼그레이 무화과 케이크’다.
얼그레이 무화과 케이크는 티라미수를 떠먹을 때처럼 깊숙이 바닥까지 떠 올려야 제맛을 경험할 수 있다. 맨 밑에 무화과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케이크 시트 사이사이에 얼그레이 크림이 가득 발라져 얼그레이 향은 진한 편이다. 평소 얼그레이티를 즐겨 마신다면 선택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식사를 하고도 충분히 1인 1케이크할 수 있는 맛이었다.
향긋한 케이크에 티 종류 중 하나인 ‘루이보스 진저레몬’을 함께 마셨더니 뷰클랜드가 향으로 기억될 정도다. 혼자 애프터눈 티를 마음껏 즐긴 기분이 들었던 카페다.
만옥당
카페 만옥당은 강남점과 송리단길점 두 곳이 있다. 이 중 다녀온 곳은 송리단길점으로 석촌호수에서 도보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2층이라 건물 입구를 찾아야 하는데 한자로 만옥당이라 쓰여있는 나무 간판을 발견했다면 도착이다.
만옥당 송리단길점은 을지로에 흔히 있는 카페들이 떠오르는 레트로한 인테리어로 꾸며져있다. 도자기, 미싱기 등 세월이 느껴지거나 뉴트로 컨셉에 걸맞게 제작된 소품이 많이 보여 시선을 여러 군데에 두게 되는 것이 만옥당의 특징이기도 하다.
테이블과 의자는 자리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혼자 다이어리를 쓰거나 책을 읽기에 불편하지 않은 높이다. 카페 공간에 떠 있는 것 같은 배경 음악의 음량도 무언가에 집중하면서 듣기 좋은 정도의 음량이고 좌석 간 거리 두기가 넉넉해 혼자 생각을 정리하거나 온전히 공간과 시간을 즐기기에 편안했다.
만옥당의 모든 음료 베이스는 수제로 만들어져 정성이 담긴 시간 끝에 테이블 위에 올려진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메뉴는 ‘심연밀크티’. 카페가 추운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스 음료를 맛있게 다 마셨을 만큼 만족스러운 맛의 밀크티다. 밀크티의 향과 맛이 진해 밀크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마실 맛이다. 단, 밀크티는 아이스로만 주문이 가능하니 추위를 타는 편이라면 따뜻한 봄이 오기 전에는 고민해 보자. 카페가 겨울에는 추운 편이다.
*본 콘텐츠는 네이버 여행플러스 포스트인 '여플프렌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윤슬의 인스타그램은 아래에!
https://www.instagram.com/editor_hyeon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