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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Feb 24. 2021

차도 우유도 아닌 완성되다 만 음료의 참맛

밀크티는 애매모호한 음료가 아니라 완벽한 음료였다

밀크티는 영국식 음료로 홍차에 우유를 넣은 논커피의 한 종류다. 네이버 지식사전에 따르면 보통 아삼, 실론티 등을 진하게 우려낸 후 우유와 설탕을 섞어 마신다고 한다.


작년 말, 목욕탕 물 온도를 가늠하듯 찰랑대는 아이보리색 밀크티 위에 손가락을 두세 마디 담가 보더니 올해 몸을 깊게 밀크티 안에 넣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밀크티가 호(好)인 것은 아니었다.

한 프랜차이즈의 밀크티가 인기를 끌고 너도나도 밀크티를 사 마실 때도 단 한번도 밀크티를 마셔본 적이 없다. 마트 드럭스토어에서 밀크티 재료를 눈에 띄게 진열하기 시작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웬만하면 일단 경험은 해보고 좋고 싫음을 표현하는데 이상하게 밀크티에게만은 흥선대원군이었다. '내 취향 안으로 들어오지 마!'

카페만 가면 항상 밀크티를 선택하는 친구가 있다. 정말 온갖 밀크티를 다 마시고 다니는 진정한 밀크티 덕후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밀크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훨씬 뒤늦게 알았을 거다. 친구는 항상 '라떼는 말야~'처럼 '밀크티가 말이야~'를 거듭했다. 제발 내가 밀크티를 마셔봤으면 좋겠다나. 지금 생각해보면 '마셔봤어야지!' 고구마 오억 개 먹은 듯한 표정으로 가슴을 탕탕 칠 노릇이지만, 그때의 나는 밀크티에게 강력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밀크티에게만 야박한 사람 치고 평소 차(tea)와 우유 각각은 굉장히 좋아했다. 그 나이 먹도록 흰 우유를 정기적으로 사다 마시는 사람도 드물 정도로 우유를 자주 마셨다. 차(tea)도 마찬가지다. 커피를 못 마시는 체질이라 누가 커피를 사 준다고 할 때면 가격 때문에라도(논커피는 커피보다 비싼 편이다) 차(tea)를 골랐다. 해외에서도 티백을 사 오고 집에서도 매일 아침 차(tea)를 마시니 이 정도면 밀크티는 안 좋아할 이유가 애초에 없었긴 하다. 그때의 나는 밀크티를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차도 우유도 아닌 완성되다 만 음료


이렇게 평생 가리라 생각했던 철옹성 같은 밀크티 불호에 대한 벽이 대뜸 2020년 말 무너지기 시작했다.




생애 첫 밀크티는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할법한 감성 카페에서 만났다. 메뉴판에 밀크티라고 쓰여있지 않고 카페만의 독특한 네이밍이 담긴 이름이었다. 차(tea) 종류에 쓰여있길래 당연히 차(tea) 종류인 줄 알고 별생각 없이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흔치 않은 메뉴명을 주문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 음료의 모습은 분명 밀크티인데? 음료 가까이에 코를 대고는 내적 경악. 이건 분명 밀크티다. 밀크티 덕후 친구가 마시던 아이보리색의 라테 같은 비주얼. 분명 밀크티다. 다시 주문할까- 고민하며 테이블 위에 놓인 지갑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그렇게 넉넉한 주머니 사정이 아님을 자각하고 지갑을 겉옷 주머니 속에 넣었다. 방법이 없다. 마셔야지.

'하 처음 보는 메뉴명이면 물어볼걸' 생각하며 빨대를 꽂아 조금 호록했다. 맛만 보자.

"음?"

오곡라떼 같은 고소한 이 맛은 뭐지? 할입맛인 취향을 저격할 만큼 고소한 밀크티의 첫맛이었다. 식감도 좋아하는 논커피 라떼류나 우유를 마시는 것만큼 부드러움이 감돌았다. 아니 오히려 라떼류보다 더 부드러운 재질로 느껴졌다. 크리미함에 가까웠으니까. 생애 첫 밀크티의 맛은 생각 외로 더 마시고 싶은 맛이었다. 살짝 이질적이기는 하지만 우유 맛 끝에 나는 홍차의 향도 마실만했다. 나는 이날 주문한 밀크티얼음을 제외하고 모두 마셨다.


낯설지만 '마실만했던' 밀크티는 그 이후로 종종 주문했다. 마시다 보니 문한 우유 혹은 라떼 음료의 재질의 끝에 나는 차(tea)의 향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밀크티의 향은 지금껏 마셔온 차와는 또 다른 결의 향으로 느껴졌다. 더 깊게 느껴진달까. 평소 향에 둔감해 음식의 향에 무관심한 편인데 밀크티는 이토록 무덤덤한 나의 코에도 느껴지는 향이다.


남들은 다 죽고 못 사는 커피를 혼자 못 마셔서 카페를 가면 항상 논커피를 고른다.  그런데 2020년 하반기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한 뒤로는 휘핑크림이 올라가는 프라푸치노나 달달한 쉐이크 등을 거의 끊다시피 했다. 때문에 이전보다 카페 음료 선택의 폭이 훨씬 좁아졌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논커피가 차(tea)와 밀크티다. 검색해보니 밀크티의 칼로리는 포만감을 기준으로 예상했을 때보다 가벼웠다. 360g에 125kcal. 물론 카페마다 제조법이 상이해 설탕의 양에 따라 숫자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다른 논커피류보다 가벼운 것은 사실이다. 당이 잔뜩 들어간 음료는 마시기 싫지만 무게감 있는 음료를 마시고 싶을 때 메뉴판에 밀크티가 적혀있으면 그렇게 감사하다. 마침 또 좋아하는 음료가 되었으니 말이다.

최근에 알게 됐지만 밀크티는 건강에도 좋은 구석이 있다. 네이버의 시사상식사전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홍차와 우유를 블렌딩 하면 우유에 들어 있는 단백질인 카세인이 홍차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영양면에서도 풍부하게 해 준다.

문득 밀크티 덕후 친구가 '밀크티는 말이야~'열변을 토할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밀크티 이 녀석 너무 완벽하잖아!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날에도 밀크티를 마셨다. 직원은 어쩐지 불친절했고 카페 내부는 추워 패딩을 입고 마셔야 했지만 아이보리 빛깔의 밀크티가 진하고 맛있어 방문한 것 자체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이 대목에서 밀크티가 나에게 충분히 힐링을 덮어주고 있는 음료가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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