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Apr 22. 2021

7개월 만에 출근한 여행사 직원의 단상

7개월이면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구나

4월이 마감되려면 아직 일주일이 남았지만, 일주일 뒤나 지금이나 느끼는 바는 동일할 것 같아 일찍 한 달을 마감한다. 2021년 4월은 '7개월 만에 여행사 출근'이라는 특별한 이슈가 있었다. 코로나 속에서도 꾸역꾸역 잘 다니다가 작년 9월부터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많은 여행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같은 상황을 겪고 있듯이 소속은 있으나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용돈벌이를 해도 매일같이 타던 지옥 버스와 지옥철이 없어지니 돈을 버는 것 같지 않았고, 시간은 많으나 돈이 없어 이도 저도 못하는 불안정한 시간이었다(물론 장점도 있었다. 덕분에 다이어트에 성공했고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많았고 평일 낮에 인기 많은 맛집과 카페를 방문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장점이었다). 

처음에는 다시 출근하라는 전화가 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지만, 무소식 몇 달이 지나니 백수의 유유자적한 일상에 적응하게 됐다. 그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무런 기대 없이 지냈던 3월 마지막 주, 팀장님으로부터 4월부터 주 3일 출근할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고 당황 속에 일단 '넵!' 대답을 했고 오랜만에 다시 출퇴근길이 있는 직장인이 되었다. 

아무리 반년이 지났어도 뭐 달라진 게 있겠냐고 생각했지만 나도 회사도 회사 주변도 모두 달라졌다. 덕분에라고 해야 할지 때문에라고 해야 할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경계가 모호한 변화들이 눈과 머릿속에 들어온 한 달이었다. 그 달라진 것들에 대해 기록해본다.




1) 팀도 팀원도 바뀌었다.

출근하지 않은 반년 동안에도 매일 출근했던 분들이 계신다. 최소 인력 안에서 회사가 운영됐고 그 안에서 조직개편이 두 어번 이뤄졌다. 그 결과 가지고 있던 명함이 무색하게 팀명과 사무실 층 수가 바뀌었다. 팀원도 낯선 분들 투성이었다. 쉬는 동안 정리해고라는 빅이슈(보통 빅이슈가 아니어서 빅이슈라고만 표현하기에도 너무 소소한)가 있었고 그때 항상 점심을 같이 먹고 대화를 가장 많이 했던 직장 동료들과 헤어지게 됐다. 그 뒤로 처음 출근하니 모르는 분들 투성이. 혼자서 7개월 만에 출근하니 마치 새로운 회사에 첫 출근한 것 같은 쭈뼛쭈뼛한 기분이 들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새로운 팀원분들과 대화라는 것을 나누는 일이 이번 달의 미션 중 하나였다.


2) 직무도 바뀌었다.

솔직히 이건 조금 너무한 거 아닌가-싶다. 본래 직무였던 콘텐츠의 종류가 달라졌다. SNS와 같은 온드 미디어 채널이 아닌 기획전 등의 상품으로 다루는 일로 변경됐다. 사실 첫 출근 주간까지만 해도 이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사전 설명도 없었고. 누가 인수인계도 안 해주니 예상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런데 대뜸 타사 기획전 동향? 기획전 아이디어 제안? 웬 기획전? 

SNS이나 유튜브 채널 관련 업무만 해 왔고 스스로도 크리에이티브한 홍보 업무를 하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쌓고 싶었기에 더 당황스럽다. 급하게 타사 플랫폼도 열심히 보고 어떤 상품이 판매되고 있는지 파악했지만 여전히 팀장님께서 업무를 할당해주실 때마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번 달에 한 일 중 유일하게 적성에 맞았던 업무는 순간순간 백일장처럼 찾아온 카피라이팅밖에 없었다.


3) 나의 취향과 가치관 심지어 외모도 바뀌었다

반년 사이에 식습관과 커리어에 대한 생각, 체중, 생활습관 등 거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심지어 헤어스타일도 단발로 숭덩 잘랐다. 

다이어트로 15kg을 감량하면서 사무실 책상 위에 온갖 과자와 음료를 쌓아두고 먹었던 습관이나 식후에 무조건 공차로 달려가 흑당 밀크티를 사 먹는 루틴이 없어졌다. 간식은 여전히 먹지만 이제 무당 아몬드 밀크와 견과류, 석류즙, 단백질 과자 등만 먹는다. 퇴근 후 저녁도 매번 거창하게 먹었지만 이제는 퇴근길에 편의점이나 샐러드 가게 등에서 가볍게 포만감만 채우고 집으로 향한다. 덕분에 걱정과 달리 출근해서도 체중 유지가 잘 되고 있다. 다이어트를 하고 처음으로 출근한 달이다 보니 나를 알던 직원분들이 다들 나를 못 알아보는 해프닝도 종종 있었다. 헤어스타일에 입는 옷 스타일까지 변했으니 그럴 만도 했구나-이제야 생각해본다.

커리어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직장에 대한 불안정함을 경험하면서 커리어에 대해 많은 순간 생각했다. 나는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어떤 업계에서 종사하고 싶은지,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숱하게 노트에 끄적였다. 언제든지 답이 달라질 수 있는 질문들이지만 현재의 나는 크리에이티브한 업무가 많은 에디터나 채널 운영, 콘텐츠 기획 및 제작 쪽이 적성에도 맞고 더 성장하고 싶은 영역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듯이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글 영상 사진의 결과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콘텐츠 업계에 종사하고 싶은 목표도 생겼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던 현재 직무에 대한 아쉬움이 생긴 것이다.

생활습관에도 큰 변화가 있다. 오전 5시 40분에서 6시 사이에는 눈이 떠진다. 오전 6시로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떠 여유롭게 삼십 분 동안 아침식사를 차려 먹는다. 예전에는 오전 6시 30분에 알람을 듣고 겨우 일어나 십분 커으로 와구와구 빨리 먹고 나갔다면, 지금은 일어나자마자 아침 스트레칭도 하고 따뜻한 차도 마시고 미리 계획한 식단을 꼭꼭 씹어 먹는다. 이렇게 여유로운 직장인의 아침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느긋하다. 


4) 출퇴근길이 특별히 더 좋아졌다.

퇴근길이야 원래도 즐거운 법이니 더 좋아졌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출근길이 그리 피곤하지도 발걸음이 무겁지도 않다. 추측하건대 아침의 시작이 여유로워지면서 생긴 정신적인 변화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예전보다 20분 정도 더 일찍 버스를 타니 지옥 버스의 강도가 덜하고 일찍 회사에 도착하니 업무 시작 시간 전에 삼십 분의 여유가 생겼다. 그 시간 동안 뉴스 기사도 보고 오늘 해야 할 업무도 정리한다. 차근차근 여유롭게 일을 진행해야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성향에 잘 맞는 요즘의 아침 루틴 덕분에 출근길도 심리적으로 편안한 편이다.




다니고 있는 회사를 조만간 퇴사를 하게 될지 의외로 오랫동안 다니게 될지 모르겠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 지금 회사에 대해 가지는 의문일 것이다. 7개월 이상을 고민했던 것 같다. 

'이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더라도 그 고민은 했을 것이다.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싶은 욕심은 전 세계 모든 직장인의 공통 희망사항일 테니. 

코로나가 터지지 않아도 이 정도 고민은 했을 텐데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의 상황에서 이 고민은 더 하면 더했지 덜할 리가 없다. 

과연 오랜만의 직장생활을 어떻게 꾸려갈지 스스로도 미래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장 가능한 부산 해리단길 내돈내산 찐맛집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