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복궁 수라간 시식공감에서 궁중음식의 진수를 맛보다
수많은 티켓팅에 참전했지만, 아무리 가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티켓팅일지라도 막상 실패한 뒤 여운은 삼 일 이상 가지 않는다. '속상해봐야 달라지는 것도 없다' 생각하는 성격 덕분이다. 그런데 딱 한 번 일주일도 넘게 아쉬워했던 티켓이 있다. 바로 '2020 경복궁 시식공감'. 경복궁 시식공감 행사는 정말 이상하다. 주위에 시식공감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행사인데 매번 1분 만에 매진되는 아이돌 콘서트 뺨치는 티켓팅이 펼쳐진다. 작년 시식공감도 겨우겨우 티켓 두 장을 건졌는데 아뿔싸. 코로나로 취소된다는 것이다. 티켓팅에서 승리했다는 사실 플러스 처음 가보는 행사에 대한 기대감이 디데이를 셀 정도였는데 취소라니요 엉엉. 행사가 취소되고 일주일을 넘게 혼자 쒸익쒸익-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시식공감. 반드시 티켓을 얻어야했다. 서버시계를 맞추고 요이~땅! 간절한 마음을 컴퓨터도 알아줬는지 같은날 1&2회차 티켓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에 시식공감을 두 탕 뛰게 되었다.
경복궁 수라간에서 진행되는 2021 상반기 경복궁 시식공감은 5월1일(토)부터 5월29일(토)까지 하루에 2회차씩 진행하는 미식행사다. 공간 음식 공연 감동을 주제로 궁중음식과 문화를 경험하는 오감을 동원하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에 진행된 여러 문화생활 중 매우 희귀한 이색 행사에 속한다.
게다가 이번에는 기존에 운영하고있던 경복궁 생과방의 특별 프로그램인 '식도락'과 콜라보하여 명사가 들려주는 전통 문화 이야기와 공연, 궁중음식을 함게 즐기는 것으로 구성되어 더욱더 특별한 행사가 됐다. 이번 2021 경복궁 시식공감의 주제는 총 다섯 가지의 주제로 진행되고 있다. 그중 필자가 간 날은 '복식'을 주제로 한 수라간 궁녀들의 앞치마 이야기. 주제가 그랬던만큼 행사의 전반적인 진행도 한복디자이너인 이혜미 선생님께서 맡아주셨다.
행사 전반적으로 그랬지만 스텝도 충분히 많았고 스텝 한분한분이 정말 친절함의 끝판왕이셨다. 음식을 제공해주실 때도 자리를 안내해 주실 때도 친절 그 자체였다. 스텝분들 만큼이나 장소 구석구석에서도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점은 두툼한 무릎담요. 해가 지면 쌀쌀해지던 당시의 날씨에 꼭 필요한 담요였는데 마련되어 있어 감사했다.
2021 시식공감에서는 금은화 산사차와 호두정과, 타락죽과 김부각, 화전, 꼬리절편, 조란, 만두과, 석이병, 금귤정과, 과편, 전약을 차례대로 맛볼 수 있다. 가장 처음 앞에 놓인 궁중음식은 금은화 산사차와 호두정과다.
금은화 산사차는 아토피에 도움이 되는 등 피부 개선 효과가 있는 차다. 때문에 화장품 제조시에도 쓰이는 식물이기도 하다. 금은화 산사차에 대해서는 이 날 진행자셨던 한복디자이너 이혜미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셨다. 이밖에도 행사 내내 음식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눈 앞에 있는 음식에 대해 들으면서 즐기니 음식의 맛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리였다.
길거리에 보이는 호두 간식들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맛의 호두정과였다. 오독오독 고소하게 씹히는 호두에 은은한 단맛의 더 먹고 싶은 맛이었다. 2회차도 참석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또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만큼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힘든 맛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귀하게 느껴졌던 음식이었던 '타락죽'이다. 타락죽은 찹쌀가루를 곱게 갈아 우유에 쑨 죽을 말하는데 '타락'이 우유의 옛말이라고. 타락죽은 남녀노소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영양죽인데 사실 맛으로 치면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담백한 맛이다. 간이 안 되어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맛이기 때문인데 그 담백한 맛이 평온한 매력이 있다. '밍밍하다'가 아닌 '단아한 맛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고운 맛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진상을 했던 음식 중 하나라고하니 굉장히 고급 음식이기도 하다.
옆에는 죽의 담백한 맛에 짝궁처럼 잘 어울리는 김부각이 데코 겸으로 있었다. 죽의 꾸덕하게 녹아드는 식감에 톡-톡- 부러지는 단단한 식감의 김부각은 말해 뭐할까. 찰떡궁함 그 자체였다.
먹으면서 다양한 공연과 이야기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접한 적이 없는 춘앵무와 여창가곡, 거문고 산조, 앞치마 이야기를 보고 들었는데, 먹기도 열심히 먹고 보기도 열심히 봐야하고 귀도 활짝 열어야하는 다채로운 순간들로 한 시간이 훌쩍 갔다. 이렇게 시간이 순식간인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다음은 본식이 등장했다. 인간문화재 선생님께서 만들어 더 고급스러웠던 유기 그릇에 꼬리절편과 화전, 조란, 만두과, 석이병 이렇게 다섯가지 궁중음식이 담겨져 나오는데 그 플레이팅이 너무 예뻐 먹기 아까울 정도였다. 그야말로 정성이 가득가득 담긴 외관이었다. '이걸 어떻게 먹어!'했지만 결국 다 먹기는 했다.
대추를 으깨 다시 뭉쳤다는 '조란'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대추를 쪄서 대추살만 곱게 다져 꿀과 계핏가루를 섞어 조린 다음 대추 모양으로 빚은 음식이라고 한다. 듣기만해도 정성이 안 들어갈 수가 없는 음식이다. 그만큼 맛도 희소가치가 충분한 이색적인 대추맛이었다. 씹다보면 미세하게 나는 꿀의 단맛과 으깨진 대추의 식감 모두 신선한 경험이 되어 주었다.
옆에 있는 '만두과'는 안에 단팥을 넣고 송편모양으로 빚어 튀긴 음식이라고 한다. 한국 재래의 후식에 해당하는 음식으로 맛은 약과맛과 흡사하고 식감은 오란다와 흡사하다. 오란다에 꿀이 좀더 치덕치덕 붙은 식감과 맛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가깝다.
그나마 익숙한 '화전'도 들어있다. 그렇지만 알아도 먹기 힘든 떡인만큼 부지런히 음미하면서 최대한 오래 기억하려고 노력한 음식이기도 했다. 화전은 떡이 굉장히 쫄깃해서 치즈가 늘어나는 것 같았을 정도다. 직접 방아를 찧어 만들면 나오는 떡의 찰기 정도랄까.
이름을 들어도 '이게 맞나?'싶은 어색한 발음의 '석이병'은 멥쌀가루에 석이가루를 섞어 물을 내리고 여기에 잣이나 석이채, 대추 등을 섞어 빚어 만드는 떡이라고 한다. 석이병을 처음 먹어봤는데 담백한 설기의 또 다른 버전처럼 느껴졌다. 떡의 세계도 접할 때마다 광활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떡이 파도파도 계속 나온다.
'꼬리절편'은 떡을 자를 때 끝에 꼬리를 내면서 잘라 이런 귀여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멥쌀가루를 찌고 절구를 쳐서 만드는 떡으로, 이름이 붙여진 유래만큼이나 맛도 귀여웠다. 크기도 한입에 쏙 들어오고 식감도 꿀떡 떡이랑 똑같으니 말이다.
본식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후식이 나왔다(타락죽부터는 음식이 빠르게 나와서 조금 부지런하게 먹었다).
이번 시식공감에서 먹은 음식들은 거의 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지만, 그중 최고 이색적인 메뉴는 단연 후식이다. 이름부터 낯선 과편, 전약, 금귤정과가 후식으로 나왔다. '과편'은 과즙에 설탕을 넣고 조려 모양대로 굳히는 묵과 언뜻 비슷한 조리 과정을 가진 전통 음식이라고 한다. 설명만 들어도 굉장히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드는 그야말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그 만큼 꾸덕한 젤리 식감이 제대로 났던 음식이었다. 과즙을 활용한 음식인만큼 향도 상큼달달하니 딱 후식의 맛이다.
'전약'은 조선 왕실에서 먹는 특별식 중에서도 손에 꼽는 특별식이다. 임금이 특별한 날에 신하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한 음식이기도 했다고. 우족이나 가죽을 푹 삶아서 대추, 꿀, 계핏가루 등을 넣고 끓여 굳힌 후 모양을 내는 다소 난해한 레시피의 음식이다. 다른 곳에서는 절대 못 먹을 음식이라는 생각에 작은 전약을 더 꼭꼭 씹어 맛을 느껴보려고 했는데, 어떤 맛이 강하게 나지는 않고 식감이 하리보 젤리정도의 단단함을 갖고 있었다.
'금귤정과'는 후식 메뉴 중 가장 좋아한 음식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금귤정과는 시중에서도 곧잘 구입이 가능한 음식이었다. 금귤정과에서는 금귤의 진한 상큼함에 달달함을 더해 꽤 강렬한 맛이 났다.
후식까지 해서 행사가 끝나고 나가는 길에 받은 수라간 시식공감 기념품은 시식공감 티켓에 포함된 경복궁 야간관람에 도움이 될 핫스팟이 안내된 지도와 소창행주. 디자이너 선생님께서 행주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렇게 연결된 기념품을 주시다니! 2021 시식공감을 더 오래 기억할 계기가 될 것 같다.
시식공감이 좋았던 또 다른 점은 행사 뒤에 경복궁 야간관람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티켓 안에 야간관람도 포함되어 끝나고 경회루 등 경복궁의 밤을 산책할 수 있다. 궁중음식도 먹고 공연도 듣고 이어 궁까지 둘러보니 그냥 경복궁 야간관람만 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경험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다른 공간에 와 있는 기분이 더 극대화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또 가고싶어서 오늘도 11번가 티켓을 들어갔는데 역시 취소티켓은 없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