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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May 13. 2021

여행사직원으로서쓰는 마지막 글

여행사를 퇴사합니다

덕업 일치했던 여행업계를 떠난다. 재직한 지 약 3년 만이다. 사실 이 회사를 3년 넘게 다니고 있음을 며칠 전에 인사정보를 보고 처음 알았다. 

'웬일이래?'

워낙 한 곳에 진득하니 오래 있지 못하기에 한 해를 세 바퀴나 돌아야 하는 긴 시간 동안 회사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본래 여행사의 SNS 콘텐츠를 제작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콘텐츠 마케팅은 점점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기에 여러 직무들 중 비전 있는 직무에 속한다. 하지만 콘텐츠라는 것이 아무리 트렌드이고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더라도, 결국 내 회사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직무를 담당하고 있는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분명 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을 했다. 유튜브 1 boon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플랫폼은 바뀌어도 언제나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강제 휴직에 들어갔고 반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복직한 올해. 이래서 휴직하고 돌아오면 책상이 없어진다는 말이 도는 것일까. 회사가 낯선 이유는 꼭 흘러간 시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회사도 직책자분들도 콘텐츠보다는 당장 매출이 눈에 보이는 상품만 관심 갖는다. 콘텐츠나 브랜딩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는 눈치였고 앞으로 코로나가 나아진다고 해서 금방 콘텐츠 직무가 주어질 것 같지 않았다. 이미 흘러간 시간도 아쉬운데 더 기다리는 건 언제나 성장을 추구하는 나에게는 맞지 않는 끈기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이직을 마음먹었고 그렇게 이번 주 퇴사를 하게 됐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 회사일지라도, 회사에 불만이 생긴 채로 퇴사를 할지라도 3년을 돌아보면 즐거운 일이 더 많이 생각난다. 상사가 이렇게 순할 수가 있나-싶었던 팀장님과 돈가스에 진심이었던 사수님도 만나봤고, 유튜브 채널 담당자가 되어보기도 했다. 특히 유튜브 담당자일 때가 인상적인데 여러 온라인 채널 중 가장 핫한 채널을 담당하는 시간은 분명 큰 뿌듯함을 주는 직무였다. 크리에이터분들과 커뮤니케이션했던 순간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덕분에 나도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써 개인 콘텐츠에 대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선임님들과 점심시간보다 15분 일찍 나가 유명 맛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던 순간들도 생각난다. 한 번은 제 시에 와서 대기 후 입장한 팀장님과 마주쳐서 '이거 이거~'하며 서로 웃었던 때도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해외출장도 다녀왔다. 중국 상해와 인도네시아 발리를 다녀왔는데 물론 출장 자체는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각각의 출장이 모두 나의 경험치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일적으로는 인솔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협의를 해야 내가 원하는 것도 얻고 인솔하는 사람들도 독려할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하며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 외적으로도 해외출장은 깨달음을 주었다. 발리는 휴양지라 할 게 없다는 편견을 단번에 깬 게기가 되었고, 대륙의 도시가 무엇인지 실체를 보여준 상해였다. 둘 다 꼭 여행으로 다시 가고 싶은 곳일 만큼 충격적인 곳이다. 훗날 두 도시를 다시 간다면 회사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이제 여행사 직원이 아닌 여행을 좋아하는 고관여 소비자로 돌아간다. 퇴사를 하더라도 여행을 그 어느 것보다 좋아하는 여행 덕후라 가끔 내가 다녔던 회사니까-라는 핑계로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고 SNS도 들여다볼 거다. 그리고 그때마다 순간순간 이십 대 후반의 반 이상을 채웠던 마지막 사 원급이었던 이 회사를 다시 떠올리게 될 거다. 

다들 시원섭섭하냐고 물어보면 '무슨. 200% 시원하기만 하지!'라고 답했는데,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조금 섭섭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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