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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ul 06. 2021

티켓의 수명은 끝나지 않았다

방 정리를 하다가 다녀온 해외여행


 며칠 전 문득 방 정리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방 속에 오래 자리만 차지하고 쓸 일은 없는 짐들을 걸러내는 시간을 가졌다.

온갖 책과 파일 꽂이가 있는 선반도 정리 대상이었다. 특히 파일 정리함은 집중해서 봐야 한다.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모르겠는 온갖 서류들과 종이들을 넣어두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걸러내지 않으면 뭐가 있는지도 모른 체로 방치될 가능성이 높다.

선반 맨 아래에 있는 파일 꽂이 앞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종이들의 정체를 밝혀내기 시작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정리를 하는데도 항상 여기 있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나온다. 어느 카페에서 받은 스티커와 명함, 팸플릿, 사용설명서 등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반응은 매번 똑같다.

"어? 이게 여기 있었네?"

버릴 건 왼쪽 차곡차곡 정리할 건 오른쪽에 두는데 한 파일 속에서 흰 종이봉투를 발견했다. A4용지의 2/3 정도 되는 크기의 흰 봉투다. 입구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조심스레 열고 안에 들어있는 무언가를 꺼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무언가의 정체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느낀 몽글몽글한 설렘을.

재작년 십이월에 다녀온 체코와 헝가리 크리스마스 여행 중 받은 티켓과 교통권 그리고 항공권이었다.


 맨 뒷자리에 탄 바이킹이 한쪽으로 쭉-올라갔다가 내려갈 때의 기분과 같다. 심장이 들어 올려진 느낌이랄까. 붕-하는 느낌이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다.

순간적으로 작년에 다녀온 여행이라고 착각했다. 그 정도로 생생하고 큰 의미였던 여행이다. 체코에 막 도착해서 수화물을 찾아 꺼내 들었을 때의 낯섦이 선명하다. 혼자 유럽에 왔다는 사실이 뿌듯하면서도 살짝 긴장했던 마음은 여행 기간 한정인 줄 알았는데 항공권을 보자마자 그 순간 그 시간으로 돌아가더라.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울려 퍼진 들어본 적 없던 노랫소리와 헝가리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전통음식 퇼퇴트 카포스터도 마찬가지다.

 특히 주황색 화살표가 그려진 지하철 티켓은 잊고 있던 기억까지 살렸다. 체코 프라하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가장 먼저 주어진 미션이었던 지하철 티켓 구입하기. 크게 산 것도 없는데 한국에서 출발했을 때보다 훨씬 무거워진 캐리어를 우당탕 계단에 박으면서 삼십 개 남짓한 계단을 내려와 무인발권기 앞에 섰다. 같이 머리를 싸맬 일행이 없는 나 홀로 여행자는 은혜로울 지경인 어느 블로거가 올린 티켓 구입 방법을 한국에서부터 수십 번을 보고 캡처까지 했다. 그럼 뭐하나. 직접 경험하려니 블로그에 나오지 않는 화면이 발권기 모니터에 나오는데. 뭐라는 거야- 혼자 알 턱이 없는 글자를 해석하려 애쓰다 찍었고 다행히 원하는 티켓이 나왔다. 그 과정에서 느낀 긴장감이 너무 진해 티켓 속 주황색 화살표에 담겼나 보다.

 체코 프라하를 크리스마스 마켓 시즌에 방문했다면 꼭 가야 할 시계탑 티켓에는 빡빡한 북적임과 눈물이 차오르는 광장의 야경이 담겼다. 시계탑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인파는 좁은 시계탑 전망대에 들어서자 극에 달했다. 발을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모르겠을 만큼 시계탑 전망대 안은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을 보려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어두운 공간이 빼곡한 사람들로 더 깜깜했다. 안대를 쓴 것 같은 시야로 어찌어찌 밖이 보이는 자리까지 갔다. 그리고 펼쳐지는 눈부심. 광장 전체가 알록달록 크리스마스 색감과 금빛으로 가득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유럽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은 상상한 것보다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매년 이 광경을 보는 프라하 사람들이 부러웠다. 인생 최대 목표를 이뤘을 때의 감정을 이 날 처음으로 배웠다. 큰 의미가 담긴 그 시간은 커다란 입장권에 고스란히 담겼다. 


 현지에서 티켓을 받았던 당시보다도 더 자세히 티켓을 봤다. 아직도 해석 불가인 글자부터 다양한 크기, 입혀진 디자인까지 눈에 각각 담았다. 어찌 보면 캐리어 안에 구깃하게 넣고 위에서 체중을 가득 실어 캐리어를 눌러야만 한국까지 가져갈 수 있었던 기념품들보다 여행 일정을 위해 당연히 구입했던 각종 티켓이 더 큰 기념품이 아닌가 싶다. 

 예상치 못한 해외여행을 다녀오느라 방 정리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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