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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Dec 31. 2021

2021년 한 해의 감정을 정리하는 글

아주 조금은 나를 알 것 같아


<올해의 무엇>으로 올해의 이것저것을 다시 꺼냈지만, 정작 감정은 꺼낸 것이 없는 것 같아 단축근무를 한 2021년의 끄트머리 절벽에 걸터앉아 올해를 조금 더 꺼낸다.



아홉수가 있긴 한 건지 심적으로 여러 번 방황하고 힘들어했던 일 년이었다. 욕심만큼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날이 많았고, 코로나와 통장 잔고 등의 이유로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자주 서러웠다. 다시 사정이 나아지나-했을 때는 자신이 없거나 책임감이 막중해 부담스러운 것들에 잠을 설쳤다. 여기에 건강 문제까지. 자주 템플스테이가 가고 싶었다. 템플스테이를 1박 2일 다녀온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음을 알면서도 도피성으로 떠올렸다.

충동적으로 과식하는 날도 많았다. 자기 조절 능력이 작년보다 많이 떨어진 것이다. 매일 하던 아침 스트레칭과 홈트레이닝을 건너뛰기 시작했고 습관으로 만들었던 것들이 하나 둘 무너졌다. 실제로 현재는 운동도 아침 스트레칭도 매일 하는 주간이 없다. 특히 아침 스트레칭은 매트를 깔아 놓아도 안 하더라. 습관으로 만드는 데에는 일 년도 부족하더니 무너지는 것은 일주일도 안 걸린다. 가끔 위기감을 느껴 어어-하고 부여잡아도 자꾸만 흘러내리는 모래성에 좌절감을 느꼈다. '왜 되는 게 없는 걸까' 어린아이 마냥 펑펑 울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눈물을 속에 쌓아두고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속에 물이 차는 것이 느껴지는 기분에서 벗어난지는 몇 달 되지 않았다. 이직을 하고 여행을 다녀오고 산 정상을 몇 곳 밟으면서 조금씩 무뎌졌다. 없어진 게 아니라 무뎌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 성격도 상황도 반전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단지 내일을 버텨낼 수 있는 지속가능성을 조금씩 알아갔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데 그러면서 나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사실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나는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고 곁에 두고 싶은 사람 안에 내가 포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런 배경을 모를 때는 모든 것에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행하려는 나를 두고 '완벽주의자' 딱 이 정도로 판단했다. 정작 엄청 덜렁거리면서 바라는 것도 참 많다며 골치 아픈 성격이라고 웃픈 감정만 느꼈는데, 더 깊은 바닥에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엄마한테 좋은 딸이고 싶고, 동생에게 든든한 언니이고 싶고, 친구들에게 단점이 보이지 않는 친구가 되고 싶고, 회사에게 능력 있는 인재이고 싶다. 그래서 눈치를 봤던 모양이다. 눈치가 빠르지는 않은데 속으로 부단히 본다.

모두에게 완벽한 사람이 되려는 것은 쓸모없는 욕심임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니 예쁜 쓰레기다. 예쁜 쓰레기를 끝내 버리는 것은 그만뒀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못 버리는 스스로를 못난 사람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나인데 어쩔까. 인정받고 싶어 무리수를 둘 때마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들을 만들어 주는 수밖에. 그저 괜찮은 시간들을 자주 마련해주기로 했다.


두 번째는 나와 같이 바쁘게 살려고 노력하고 포기하면 인생을 헛되게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의 디폴트 값은 '불안'이라고 한다. 이건 최근에 받은 '밑미' 뉴스레터를 통해 알게 됐다. 그대로 문장을 떼어 오면 아래와 같다.

꼭 지금의 생활 방식이 지속 가능한지 살펴보세요. 지금처럼 다양한 경험을 즐겁게 오래 경험하기 위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요. 물론 젊은 체력으로 버티고 있다는 해당이 없습니다. 결국 소진되어 그토록 좋아했던 것들이 다 싫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가장 기초적인 일곱 시간 이상의 수면시간부터, 일일 40분 이상의 유산소 운동 시간 등부터 침범할 수 없는 ‘1순위 일정’으로 등록하셔야 합니다. 열심히 살수록 누적된 심신의 피로로 번아웃이 왔을 때 타격이 아주 크거든요. 그리고 새로운 경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미 한 경험들을 바로바로 정리하고 다지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밑미에도 영감 노트 등 기록하는 습관을 강조하는 리추얼이 있는 건 귀한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들여 한 경험이 휘발되지 않게 붙드는 것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거든요. 새로운 경험을 잔뜩 겹쳐할 때, 경험의 밀도를 놓치지 않도록 미리 가상의 ‘경험 정리’ 시간을 함께 정해 놓으시길 권해드립니다.나, 지속 가능함을 위한 자기 돌보기, 둘, 경험 정리 시간 확보하기. 이 둘을 챙기시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하시면 됩니다. 당연히 놓치는 것들이 있겠죠. 아쉽겠죠. 괴로우실 겁니다. 어떻게 이런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물으셨죠. 이제 답을 드릴게요. 못 벗어납니다. 지금은요. 하고 싶은 게 많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유형들의 고질적인 감정이니 벗어나려고 애쓰거나,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한 번 더 비난하지 마셔요. 친구 중에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 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들에게 기본값이 무덤덤이듯이, 불안은 오드님과 같은 분들의 기본값입니다. 잘 달래며 데리고 살아야지 마음먹어주시길요.  - 밑미 고민상담소 사연 답변 중-

요약하면 경험에 대한 강박으로 바쁜 사람들은 '불안감'을 벗어나려고 애쓰기보다는 경험을 지속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돌보는 1순위 일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번아웃이 자주 그리고 세게 오기 때문에 특히 자신을 돌봐야 한다.

사연에 대한 답변을 읽는데 내가 보낸 사연 같을 정도로 마음 깊이 공감했다. 그 뒤로 경험을 소화시키는 시간을 갖기 위해 몇 가지 기록 창구를 노션에 마련했다. 체력도 신경 쓰고자 어제 헬스를 등록했다. 헬스보다는 주 2회 하는 요가를 해보고 싶어 등록했는데 요가 수업이 없는 날은 다른 수업이나 러닝머신 타기라도 하려고 한다. 꾸준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과거에는 힘든 시간이 찾아와도 매번 이유보다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스스로를 답답해했다. 왜 자꾸 생각한 대로 되지 않고 변수가 있는 걸까, 왜 자꾸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현재에 불만을 가진 적은 많아도 이유를 찾으려는 '왜'는 없었다. 그 과정이 없어 올해 더 힘든 것은 아니었을까?

내년에는 내가 왜 이럴 때 슬퍼하고 기뻐하고 낙담하고 설레고 긴장하는지 자주 들여다봐야겠다. 자주 들여다보며 돌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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