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교 지역인 춘천은 어느 도시보다 익숙했다. 닭갈비의 도시를 제외하더라도, 학창 시절 때는 다니던 학교의 졸업생 중 4/1이 춘천으로 대학을 진학했고,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던 친구가 춘천으로 취직을 해 놀러 가 닭갈비를 먹은 기억이. 있으며, 가족들과 나들이도 꽤 여러 번 다녀왔다. 춘천과 연관된 기억이 많은 만큼 잘 아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 편향에 돌을 던져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춘천에 케이블카가 생겼다는 소식과 어느 카페 거리가 유명하다는 정보, 레고랜드의 오픈 소식은 춘천이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갈아입은 듯했다(옷을 갈아입다 못해 염색까지).
그렇게 다녀온 2022년 업데이트된 춘천에 대한 인상을 여행 과정에서 만난 공간과 연결짓자면 다음과 같다.
통영/목포와 견줄만한 케이블카가 있는 곳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면 볼 수 있는 풍경
어느 도시에 가든 케이블카가 있으면 무조건 타 보는 여행 스타일이 있다. 케이블카에 대한 집착의 시작점은 통영의 유명 케이블카인 미륵산 케이블카에 있다. 제주도의 물빛만큼이나 색감이 특이한 푸른 바다 위에 있는 섬들을 파노라마 사진처럼 넓게 보고 있는 순간을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덕질하고 있다. 그 이후로 또 한 번 목포에서 결은 다르지만 크기는 동일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는데 춘천에서 그 감동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2021년 하반기에 오픈했고 2022년 5월, 전망대 위에 스카이워크가 오픈한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는 이제 막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운 좋게 스카이워크 오픈 직후 방문해서 그런지 주말인데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덕분에 바로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는데 삼악산 일대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처음 알았다.
물론 날씨가 도와준 덕도 크겠지만, 의암호가 이렇게 잔잔하고 빛이 나는 호수인 줄 처음 알았고 규모도 호수보다는 강이 어울리는 넓이라 미안하게 느껴졌다. 잔잔한 호수를 두르고 있는 삼악산은 꼭 섬 몇 개를 가까이서 보는 것 같다.
국내 최장 케이블카라 케이블카 안에서 있는 시간이 편도 15분쯤 소요되는데 그 시간이 심심하지 않도록 케이블카 안에 몇 가지 요소가 들어있다. 그중 타 지역 케이블카에는 흔히 있지 않은 글귀 스티커가 특히 눈에 띈다. 비교적 요소 덩어리가 크고 단조로운 의암호 일대의 풍경과 글귀가 잘 어울렸다. 목포의 경우 수많은 집들의 색감 때문에 오히려 케이블카에 이런 글귀가 쓰여있으면 복잡할 것 같은데, 삼악산 일대의 심플한 풍경 위에 글귀가 얹어지니 자연과 인위적인 요소의 올바른 콜라보 같았다.
케이블카는 안도 안이지만, 밖에서 케이블카를 보는 것도 볼거리다. 특히 빨간 케이블카가 날씨 요정이 능력을 아끼지 않은 날의 풍경과 더해지면 그 색감이 귀엽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색감들이 사진을 자꾸 찍게 한다.
스카이워크로 올라가는 길도 나무 데크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산의 중턱 어디쯤답게 숲 속을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꽤 울창한 길이 초록빛이 가득한 요즘 시기와 잘 어울린다. 화담숲의 자연 그대로의 버전 같기도?
케이블카로 올라오는 길도 정거장 건물에 있는 전망대에서 본 풍경도 멋있지만, 역시 하이라이트는 스카이워크! 스카이워크가 오픈되기 전까지는 올라와서 할 게 없다는 후기가 많던데 그분들이 다시 이 케이블카를 찾았으면 좋겠다. ㄷ자 형태로 툭 튀어나온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보는 삼악산의 어느 암벽과 통영만큼이나 넓게 그리고 멀리 보이는 도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열심히 돌아다녀도 계속해서 새로 나오는 한국의 아름다움에 정신 못 차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카이워크
날씨가 좋은 날에 춘천여행을 간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가 생겼다. 게다가 체력적인 여유가 없어도 등산이 가능하고 특히 삼악산에서 바라보는 뷰가 예사롭지 않으니 이쯤 되면 케이블카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소비보다는 투자에 가깝지 않을까? 나만 알고 싶은 맛집 같으면서도 알리고 싶어 입과 손가락이 근질근질한 곳이 춘천에 생겼다.
한 사람의 끈기가 어떤 결과까지 만들 수 있는지 눈으로 볼 수 있는 곳
창작자로 살다 보면 다양한 아이디어 사례에 관심이 많아진다. 여행 중에도 마찬가지로 ‘오!’ 눈길이 가는 것들에 대한 잔상이 여행이 끝난 뒤에도 기념품처럼 남는데, 이번 춘천에서 얻은 기념품은 ‘감자빵’이다.
아버지의 감자밭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MZ세대의 새로운 춘천 명물이 됐다. 울퉁불퉁 겉으로 보면 정말 감자 같은 카페 감자밭의 감자빵은 인스타그램을 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존재다. 알려졌다는 사실은 카페를 나오면서 본 길게 늘어선 대기줄로 확신할 수 있었다. 유명한 카페를 갈 때는 역시 남들 식사할 때 가야 한다. 카페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무조건 들여보내지 않는 듯하다. 마당을 제외하면 카페 내부 공간이 작기도 하고.
누구나 아는 익숙한 감자를 귀엽게 그려내니 남녀노소 모두 감자와 한층 더 가까워지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어릴 적 감자도리 캐릭터의 열풍을 이을 새로운 감자 캐릭터는 카페 감자밭의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세대 불문하고 카페 곳곳에 있는 감자빵 캐릭터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안 찍기 어려울 정도로 귀엽긴 하다(필자는 컵홀더도 가져왔다).
감자빵은 인터넷으로도 택배 주문이 가능하지만 카페를 한 번쯤은 꼭 방문해야 한다. 카페 마당의 분위기가 과장 두 스푼 더 하면 템플스테이 마루급이기 때문이다. 수용 인원 제한을 둔 덕분인지 마당이 깔끔하고 북적이지 않아 꼭 넓은 한강 둔치에 피크닉을 온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뚝섬 한강공원에서 돗자리 깔고 가만히 멍 때리던 순간이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그만큼 휴식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는 곳이다. 인기 많은 카페에서 이런 분위기가 가능하다니. 신기하다.
다소 아쉬운 게 있다면 논커피 음료 가격이다. 관광지에 있는 카페들의 음료 가격이 으레 8,000원인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공간 대여료가 포함된 가격일까. 밥보다 음료수가 더 비싼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이럴 때 실감한다.
(다행히 시즌 음료였던 ‘프레시베리티’는 딸기맛이 가득해 싱그러운 맛이었다)
감자빵 종류는 치즈 감자빵과 기본 감자빵 두 종류인데, 맛이 딱 이름 그대로다. 포슬포슬한 감자 으깬 맛을 즐기고 싶다면 기본 감자빵을, 치즈를 좋아해서 온갖 것에 치즈를 더할 정도면 치즈 감자빵을 선택하면 된다. 물론 베스트는 둘 다 먹는 거지만 두 개는 간식으로 먹기에는 다소 무게감이 강한 것 같다.
진짜 감자 박스처럼 생겨 소장가치가 있어 보이는 박스 감자빵은 다들 두 박스는 기본으로 사 가는 굿즈같은 존재다.
농촌 카페에서 시작해 아이디어를 수없이 발전시켜 지금의 카페 감자밭이 되었다는 한 사람의 끈기가 춘천의 한구석에 활기를 제대로 불어넣고 있다. 역시 버티고 다시 해보고 고민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24시간도 채우지 않은 하루 춘천을 다녀왔다고 춘천을 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춘천은 더 이상 닭갈비가 맛있는 도시가 아님은 확실하다. 그 이상으로 감동적이고 '오호!'할만한 순간들이 많아졌다. 이제 춘천은 어떤 곳이냐고 누가 물으면 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굳이 답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