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하면 호두과자라는 좁은 시야의 선을 넘다
천안 당일치기 여행은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됐다. 인스타그램에서 한 사진작가께서 올린 천안 각원사 사진을 보고 바로 천안행 버스 티켓을 예매했다. 사진은 천안 각원사 곳곳에 핀 겹벚꽃 사진이었다. 최근, 한 달 전부터 예약했던 서산 개심사행 당일 투어 상품이 취소되면서 이번 봄에 겹벚꽃은 못 보겠네' 아쉬워하던 중에 개심사 말고도 겹벚꽃을 실컷 볼 수 있는 사찰을 발견했으니 미룰 이유가 없었다. 여행 전용 배낭을 오랜만에 거북이 등딱지처럼 장착하고 그 주말에 천안으로 향했다.
천안에 대해 본래 알고 있는 것은 창피하게도 호두과자밖에 없었다. 휴게소만 가면 만나는 천안 호두과자는 만나는 빈도수만큼이나 천안의 모든 것으로 인식됐다.
여행만큼 생각을 넓혀주는 게 없다고 했던가.
고작 당일치기만으로 천안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책 한 권을 완독 한 것처럼 확- 넓어졌다.
그중 가장 강렬하게 '우와'했던 것이 세 가지가 있다.
봄꽃의 성지
겹벚꽃만 있는 줄 알았는데 웬걸? 사찰에 부처님의 은혜만큼 봄꽃들이 내려앉았다. 콩배나무 수양벚꽃 철쭉 등 온갖 4월에 피는 온갖 꽃들을 각원사에서 볼 수 있었다.
천안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것은 호두과자인 줄 알았는데 봄꽃이었구나.
연화지를 거쳐 언덕을 올라 각원사 입구에서 뒤를 돌아본 순간 아차 했다.
겹벚꽃이 만개한 마지막 주말의 각원사는 꽃의 수만큼이나 사람도 많았다. 다가올 석가탄신일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일까-싶을 정도로 주차장이 만차였는데 그 북적거림도 이기는 꽃들의 존재감이 씩씩했다. 봄에 볼 수 있는 색감을 전부 보고 온 듯하다.
꽃을 보겠다고 간 것이지만 이렇게나 많은 꽃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사찰 전체를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러 꽃들의 옆 그리고 아래에 서면서 천안하면 호두과자라는 편견을 단번에 지웠다. 30년 동안 먹은 호두과자 개수보다 각원사에서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본 꽃의 개수가 몇십 배로 많으니까.
갓성비 갤러리
버스터미널 옆에 이렇게 고퀄리티 미술관이 있을 수 있는 건가?
위치부터 '음?' 했던 미술관이었다. 버스터미널과 백화점 거대한 시내 속에 '아라리오 갤러리'가 있다. 보통 미술관은 조용한 외곽에 있는 편이 대다수다. 전국에서 가장 북적임이 큰 서울에서도 어떻게든 조용한 곳을 찾아 여유롭고 초록빛과 가까운 곳에 미술관들이 자리 잡았는데 천안은 예외인 모양이다. 천안 여행을 하면서 가장 거리 폭이 넓었던 신부동 그리고 명동에 있는 백화점만큼이나 폭이 넓었던 백화점 옆에 붙어있다.
예술 작품 감상을 사람들이 일상 속에 좀 더 가까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인 걸까?
더 놀라운 것은 전시 퀄리티였다. '3,000원에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고?' 입장료가 경복궁 입장료 같았다. 너무 낮게 책정됐다. 각 작품에서 보이는 시간만 봐도 무료입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색채와 요소로 만들어낸 그림 조형물은 때로는 기이하고 몇몇은 깊이에 눌리는 듯했다. 어떤 순간에는 최대한 가까이서 보려고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정적인 분위기였지만 관람객의 행동은 능동적으로 만드는 전시였다.
전시는 두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미술 작품에 잘 모르는 사람도 '나라면 무슨 작품을 살까?' 가정하며 둘러보면 작품과의 거리를 가까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라리오 갤러리는 다시 천안을 떠나는 시간 전, 마지막 일정으로 두면 효율적인 코스를 만들 수 있다)
맛의 스탠다드
한 여행자의 운이었을까. 천안에서 하루 동안 먹은 음식들을 떠올리면 전주만큼이나 맛의 수준이 높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진짜 천안 호두과자는 어때? 맛있어?'라는 질문에 '호두과자도 맛있지만 샌드위치도 맛있고 수프도 맛있고 휘낭시에도 까눌레도... 심지어 오렌지 주스도 맛있더라!'라며 질문이 그은 선을 당차게 넘는다. 하지만 정말 우열을 가릴 수가 없는 걸?
수프에 곁들여져 나오는 빵마저 갓 나온 식빵만큼이나 푹신하고 부드러워 내적 놀람을 일으켰으니 말 다 했다. 비주얼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부드러운 식감 속에 진한 감자를 담은 대파감자 수프와 달거나 짜지 않아 다른 재료와 더 잘 어울렸던 바비큐 고기, 그 고기를 담았던 겉바속촉 샌드위치 그리고 포슬포슬한 빵가루의 진수를 보여준 휘낭시에와 레몬 마들렌 등 어느 것 하나 아쉬운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식당 음식치고 자극적이지 않고 디저트 치고 달지 않은 메뉴들에 각원사 풍경만큼이나 감탄스럽다. 먹은 모든 음식점들이 생활권 안에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보통 같은 여행지를 또 가면 두 번째에는 다른 곳을 가보려고 한다. 새로운 경험을 여행의 이유로 삼기 때문인데, 간혹 그 이유보다 우위를 점한 예외의 맛집들이 생긴다. 천안에 그런 맛집들이 생겼다. 언젠가 또 천안에 가면 반드시 또 갈 생각으로 지도 앱에 저장했다.
그래서 호두과자 맛은 어땠냐고 묻는다면, 천안 호두과자의 시초라는 거피팥 호두과자는 휴게소 호두과자처럼 달지 않아 더 많이 집어 먹게 한다. 봉지로 구입해 갓 나온 호두과자를 맛볼 수 있었는데 천안하면 호두과자만 있다는 것은 분명 아주 좁은 시야이지만, 호두과자로 알려져도 괜찮을 만큼 최고의 맛이었다. 여기 호두과자를 먹은 이후로 생활권 안에 유일하게 있는 호두과자집을 끊었다.
개인적으로 여행 배낭을 자주 메는 모험적인 여행자들의 말을 그 밖의 사람들보다 믿는 경향이 있다. 대화만 해도 직접 경험한 어떤 것들의 깊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말들은 '그런가 보다'라고 곧이곧대로 믿던 편견의 선을 과감하게 넘는다. 내가 여행하는 삶을 지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여행의 힘을 오랜만에 천안에서 느꼈다. 천안을 직접 가지 않았다면 생각보다 크고 다채로웠던 신부동도 체감하지 못했을 거고 그 속에 퀄리티 높은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호두과자의 시초는 갈색 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하지 않았을 거다. 천안에서 그렇게 다양한 봄꽃을 볼 수 있는지도 몰랐을 거다. 여행했기 때문에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 천안 당일치기 여행 브이로그는 요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