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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un 10. 2022

다양한 색채가 잔잔하게 머무는 도시, 포항

목포를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포항이라고 적어야 하는데 목포라고 적은 적이 많다. 숙소에 놓여 있던 방명록에서도 목포라고 쓰다가 직직- 두 줄을 그어 고쳤고 타이핑을 칠 때도 목포라고 썼다가 '엇' 알아차리고 백 스페이스바를 눌렀다. 그 정도로 목포를 닮은 도시가 포항이었다. 포항이 목포를 닮은 것인지 목포가 포항을 닮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감상이 명확하지 않은 때를 제외하면 목포가 포항보다 먼저라 순서를 그리 쓴 것일 뿐이지. 중점은 두 도시에 대한 감상이 흡사하다는 점이다.


2016년에 포항을 간 적이 있지만, 경주와 함께 묶어 다녀와서 그런지 오어사에 대한 기억만 강렬할 뿐 그 외의 기억은 미비하다. 그래서 이번에 포항을 다녀온 것도 있다. 제대로 포항이라는 도시에 빠져보기 위해. 유명 드라마 촬영지에 호미곶 상생의 손 그리고 몇 달 전 인스타그램 피드를 가득 채운 스페이스워크 까지. 정보만 무성한 도시를 직접 접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특정 여행지에 대한 경험보다 전체적인 도시의 매력에 더 빠졌지만 말이다.


포항에서 본 모든 풍경이 머릿속에 그림으로 박힌 듯하다. 그만큼 풍경의 선이 뚜렷하고 색이 명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장소를 봐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때마다 그 색과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그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도 사진을 유독 여러 장 찍었고 멍하니 바라볼 때도 많았다.


볼 때마다 다른 바다

바다는 분명 어떠한 틀도 없이 지구를 감싸는 하나의 일렁이는 존재라는데 왜 볼 때마다 다를까. 과학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신기하다는 생각은 포항에서 자주 튀어 올랐다.

포항에서 제대로 본 바다는 호미곶 일대와 송정 해수욕장 그리고 영일대 일대인데 모든 바다를 볼 때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 바다를 본 것처럼 "우와..." 감탄하게 했다.

영일대 해수욕장

가장 티 없이 맑은 바다는 '영일대 해수욕장'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바다를 본 날이기도 했는데 바다가 '오호! 너 처음이란 말이지?' 어깨 뽕 잔뜩 올리며 자신을 뽐내는 풍경이었다. 위풍당당하면서도 그 모습이 귀엽다고 느낀 건 색감 때문이다. 초록색과 파란색을 섞어 그러데이션을 펼친 바다 위에 쨍한 하늘색, 마치 믹서기에 갈아 버린 것처럼 고운 모래가 만드는 일관된 상아색, 그 위에 놓인 노랗고 빨간 텐트. 우연의 조합이라기에는 너무 완벽해 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돌계단에 앉아 20분을 더 바라보고 떠났다.

신기하게도 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는 영일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는 그 색도 배경이 주는 분위기도 확연히 달랐다. 오전 일찍 아침 산책 겸 갔던 영일대 바다는 뒤로 보이는 제철소와 어우러져 깊은 웅장함을 만들었다. 가만히 바다의 생명감 넘치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니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실제 깊이를 알 수 없어 무서웠다.

그러다가도 고개를 반대 편으로 돌리면 이렇게나 눈부시다. 어릴 적 곧잘 쓰던 반짝이풀을 바다 위에 바른 걸까. 눈을 찡그려야 할 정도로 눈부셨던 바다다. 반짝이풀을 바른 채로 도시 안으로 파도를 보내는 바다의 움직임이 영일대를 뛰고 걷는 사람들처럼 부지런하다.

고개만 돌려도 양극의 바다를 모두 담을 수 있어 한번에 두 여행지를 즐긴 것 같았다.

보통 상생의 손을 보기 위해 호미곶을 간다. 필자 역시 그랬는데 실제로 보는 순간 마음이 싹 변했다. 낮에 31도의 땡볕이었기에 얼어버릴 것 같은 추위에 헛웃음이 났지만 "와 추워 얼어 죽는 거 아녀?" 반팔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와중에도 바다를 30분을 보고 갔다. 일몰 시각이 30분쯤 남은 바다는 칠흑같이 검은 바다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핑크빛 바다만이 아직은 이르다며 붙잡는 낮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걸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하는 걸까.


팔레트 같았던 도시

국내여행을 다니다 보면 유독 많은 색을 간직한 도시가 있다. 포항이 그랬다. 간판 지붕 자연의 산물들이 한데 섞여 두 눈에 담기는 장면들이 마치 애니메이션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방방 뛰는 기분을 주는 도시였다.

바다 앞에 핀 무지개

영일대 앞에는 장미원이 있어 바다와 장미를 한 시야에 담을 수 있다. 장미 만개 시기도 지난 뒤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웬걸? 포항 오기도 힘든데 보고 가라며 선심을 써 준 건지 생각보다 장미가 많이 피어 있었다. 덕분에 난생처음 장미와 바다가 함께 있는 풍경을 봤다.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하얀색들이 옹기종기 모인 모습이 또 하나의 무지개였다.

제철소에서 초록빛을 그것도 이렇게 평화로운 초록빛을 보게 될 거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포스코 제철소 투어를 사전 신청해 웰컴센터를 방문했는데 입구에 제철소 방문객과 직원만 지나가는 숲길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서울 근교 드라이브 코스에서나 볼 수 있는 초록빛 터널을 제철소 안에서 발견했다. 차가 거의 드나들지 않아 본연의 모습을 실컷 볼 수 있었는데 아스팔트 도로 위에 그려진 그림자까지 소중하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포스코는 나무를 많이 심는 제철소로 알려져 있더라)

목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골목에 있다. 포항의 골목은 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가 아니더라도 일본 소도시가 연상되는 골목들이 많았다. 특히 개인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동네 안에 들어서면 일본 센다이 동네를 보는 것 같았다. 색채도 선도 엉켜있는 듯한 복잡함이 눈에 띈다. 이런 생각이 목포여행 중에도 자주 들었다. 목포는 선보다는 색이 많이 엉켜있고 옹기종이 모여있는 도시다. 케이블카를 타면 그 느낌이 가장 절정에 달한다. 만약 포항에도 케이블카가 있어 위에서 바라보면 어찌 보일까- 궁금하다.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점점 진해지는 생각은 도시마다 갖고 있는 색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가 그렇다. 어느 도시를 다녀오고 나면 특정 색상이 쉽게 떠오른다. 그게 한 가지 색상이 될 수도 있고 영일대처럼 여러 색이 무지개처럼 조화를 이룰 수도 있다.

하늘 아래 같은 색이 없다는 건 화장품뿐만 아니라, 포항에도 해당되는 말이었을까. 2박 3일 동안 본 색이 몇 개인지 모르겠다. 유치원을 다니던 꼬꼬마 시절에 매일같이 쓰던 48색 크레파스보다도 더 많은 색을 경험했던 다채로운 도시였다. 이번에는 몇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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