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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un 15. 2022

놀 줄 아는 통영

예술가들의 도시다운 다채로움에 또 한 번 반하다

2015년 겨울 내일로 기차여행으로 찾아간 이후에 약 7년 만에 통영을 찾았다. 이번에도 내일로 패스권을 들고 찾아갔으니 새삼 흘러간 시간이 유별나게 느껴졌다(2015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뚜벅이 여행에 진심인 것부터가 놀라움이다).

시간보다 더 유별나게 놀라운 것은 그때와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었고 때문인지 주변 길도 금방 기억나 지도 앱 없이도 잘 걸어 다녔다는 점이다. 휴대폰이 꺼져도 다음 여행지를 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이쯤 되면 두 번째 방문해놓고도 제2의 고향이라고 허풍을 떨어도 되지 않을까?

그 말이 진실이 아니라 허풍인 데에는 지리적인 위치 빼고는 모든 게 새로웠기 때문이다. 통영이 변한 것인지 내가 자란 것인지 둘 다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테마파크만큼이나 다양한 종류의 놀거리가 눈 돌아가게 만드는 도시였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몇 가지를 꼽자면...


루지와 케이블카 - 한 도시의 풍경을 가장 설레게 보는 방법

통영의 풍경을 보며 탈 수 있는 액티비티로는 '루지'와 '액티비티'가 제일이다. 사실 루지는 싱가포르에서 탄 적이 있고 통영 케이블카도 과거에 두 번의 경험이 있어 느끼게 될 재미가 예상됐다. 이렇게 인상적인 몇 가지 안에 넣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을 정도로 익숙했던 액티비티들의 반전은 실제로 탔을 때 시작된다.

언제나 운전대를 잡을 때의 체감 속도는 뒷자리에 앉을 때보다 빠르다. 전통 킥보드의 반전 속도만큼이나 순식간에 달달달 덜그럭거리며 코스를 내려가는 루지는 코너를 돌 때는 스릴이 느껴졌다. 단순한 조작법 대비 무섭게 내려가는 루지는 첫 주행만으로 충분히 기분을 방방 설레게 했고 남은 2회도 줄기차게 속력을 냈다. 여기에 출발점까지 사람과 카트를 실어 나르는 리프트에 앉아 보는 통영의 어느 풍경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연휴 치고 사람이 없어 리프트를 혼자 타고 올라갔는데 발아래 트랙 위를 달리는 카트 소리와 새소리를 빼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분위기가 멀리 내다 보이는 통영 바다의 잔잔함을 닮았다. 카트를 타고 우당탕 내려올 때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때의 기분이 꼭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더 더 기분이 붕 떠 있었나? 정신 못 차려서?

3회권을 모두 소진하고 나오는 길에 다짐했다. "앞으로 루지 있는 도시에서는 꼭 카트를 타야지!"

장롱 면허 주제에 운전에 맛 들린 것 같다.

유시민 작가는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국내에 있는 케이블카 전망 중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 전망이 최고라고 했다. 케이블카를 많이 탈 수밖에 없는 여행덕후로써도 동감한다. 기억하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2015년의 통영 여행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는 장면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미륵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다도해다. 잔잔한 바다 위에 점박이처럼 여러 섬이 있는 장면은 꼭 둥근 지도를 넓게 펼쳐 보는 것처럼 신기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두 번째라 그만큼의 감흥에는 못 미칠 것이라 예상했는데, 자연을 대할 때는 함부로 예상하면 안 된다.



지역 축제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

운 좋게 통영에 도착한 날이 통영 문화재 야행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서피랑에서 조용히 통영항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여유를 깨는 북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시작점을 가늠해보니 오호라 통제영! 누가 들어도 공연 소리라 통제영 방향으로 내려갔더니 축제란다.

축제도 축제였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죄다 시민들로 보였다. 한복 입고 온 아이들, 운동복 입고 슬리퍼 끄는 소리를 내며 휴대폰 하나 들고 혼자 온 학생, 양복 입은 아저씨들의 무리, 아주머니들의 모임 등 '여행자는 나 혼잔가?' 의아할 정도였다. 시민들의 참여가 굉장했다. 이쯤 되면 관광객들을 위한 공연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영 시민들의 축제날이었다.

공연도 퀄리티가 높았다. 가수를 초대하고 트로트 리듬이 펼쳐지는 평이한 지역 축제가 아니라 통영의 지리적 특성과 갖고 있는 역사를 바탕으로 구성된 공연들의 총집합이었다.

 '이 정도 기획이면 돈 받고 공연해도 되겠는데?'싶은 공연이었다.

시민들의 호응도 적극적이었다. 생각보다 앞에 분들이 오래 앉아 계셨고 초점을 맞추려고 정성 들여 휴대폰 영상을 촬영하는 아저씨도 볼 수 있었다.

야간공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축제였던 난장마당

통제영에서 공연을 보다 시간이 늦어져 중간에 나왔는데 통제영거리에서는 마당놀이가 한창이었다.

탈을 쓴 공연팀이 장구와 꽹과리를 치며 노는데 그 들을 둘러싸고 관람하는 분들이 박수를 치며 추임새를 넣었다. 얼쑤! 좋다! 잘한다!

한편에는 직접 탈을 써 볼 수 있는 체험 공간도 있었고 아이들이 방방 뛰며 탈을 쓰고 놀았다.

이렇게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니 예산을 들일 가치가 있는 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게 시민 한 명 한 명 삶의 질을 알게 모르게 높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디피랑-자연이 스크린이 되다니

해가 지면 무조건 디피랑이라더라. 뭔지 몰라서 정보 좀 찾아보려 했더니 뭔지 모르고 가야 재미있단다. 뭐지... 아리송한 생각으로 진짜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갔다. 6시 50분까지 갔더니 30분을 대기해야 입장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덕분에 딱 '붉은 노을'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일몰을 봐서 긴 대기 시간에 불만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디피랑에 대해서는 최대한 모르고 가는 것이 맞다. 영화를 보러 갈 때 스포를 당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용을 아는 순간, 놀라움과 재미는 1/2 이상 감소한다(때문에 사진은 넣지 않겠습니다). 웬만하면 디피랑 홈페이지도 보지 않는 것이 좋다. 무조건 만족할 테니 네이버 예약만 하시라.

알아도 되는 선에서 언급하자면, 통영 대극장 일대의 숲길을 배경으로 이런 놀라운 예술을 펼쳐냈다는 것이 놀랍다. 특히 동피랑과 서피랑에서 사라진 벽화로 시작하는 스토리텔링은 견고해서 보는 내내 다 큰 성인도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당연히 이름 모를 사기업에서 만든 건 줄 알았는데, 통영시와 통영관광개발공사 작품이라고. 축제에 이어 통영시에서 얼마나 노는 것에 진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디피랑은 단언컨대 이번에서 통영에서 경험한 놀라움 중 가장 큰 놀라움이었다.



통영은 단순히 관광 자원이 많은 도시라고 하기에는 표현에 구멍이 있다. 다른 관광 도시에 비해 시민들의 참여가 돋보이는 곳이었고, 관광지의 위치나 그곳의 분위기도 '여기는 관광지야' 선을 긋는 것이 아닌 시민들의 생활권이 어쩌다 보니 여행객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된 경우가 많았다. 서피랑과 중앙시장이 그랬고 주변 섬들도 마찬가지다. 관광 자원이 많은 곳 치고 시민들의 흔적이 곧잘 보이는 도시였다. 그런 점에서 다른 관광 도시와 결을 달리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새로운 결의 도시를 경험하게 된 것이 이번 여행의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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