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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Dec 15. 2022

이젠 조금 날 알 것 같아

단어집 -고아(高雅)

애매모호하게 알고 있는 단어들이 있다. 대충 어떤 뜻인지는 알고 있으나 "그게 뭔데?" 물으면 명확하게 "그건 이거야"라고 설명할 수 없는 단어들. 이런 단어도 있다. 잘 알지만 나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들. 그저 어디서 '보기만 한 단어들'. 알지만 모른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단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 단어는 나에게 어떻게 대입할 수 있을까?'

고아하다(高雅하다)
뜻이나 품격 따위가 높고 우아하다


나다운 보폭으로 나아간 한 해였다. 빠르거나 티나지 않지만 혼자 뿌듯해하고 행복하다고 자부하는 그런 발자취였다. 작년까지, 20대에는 성장이라는 단어에 몰두했다면 올해는 '챙김'을 더했다. 올해 언젠가 '나 자신을 내가 낳은 자녀라고 생각하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내가 낳은 자녀라도 그렇게 말한 건지 그렇게 참으라고 할 건지 하지 말라고 할 건지 생각해보라는 글의 의미는 그만큼 나를 존중하라는 거였다.

존중의 '존'은 높일 존(尊)이다. 나를 존중하는 건 곧 나를 높이는 일이다. 나 자신을 고아하게 만드는 일이 올해의 화두였다.




경험주의자의 삶을 위해

벌써 올해를 결산하는 건 남은 2022년이 섭섭해할 일이지만, 국내외를 열심히 다녔다. 코로나로부터 자유를 되찾게 되자 홍길동 혹은 김삿갓이 됐다. 남은 2주가 지나도 변함없을 사실이다. 1박 이상의 여행을 갈 때마다 블로그에 카테고리를 만드는데 그것만 해도 일곱 개를 완성했고 그 안에는 인생 버킷리스트 속에 있던 미국 뉴욕 여행도 포함되었다. 그 밖에도 약 30건의 장소 콘텐츠가 올라갔다. 가고 싶은 곳들이 더 많았으나 여러 이유로 참았는데도 이 정도다.

블로그에 기록하지 않은 장소도 많을 테고 평일에는 출근하니 주말만 나갔다고 가정하면.... 나한테 역마살은 없다고 말하는 점쟁이는 돗자리 접어야 한다.

특히 뉴욕 여행이 올해 중 가장 큰 배움이었다.

진정한 개성이란 무엇인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내가 앞으로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할지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은 어때야 하는지

내가 밟아 본 땅이 넓어진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다국적의 사람이 모여 살았을 때 그 도시에 얼마나 많은 다양성이 생기는지

모마 휘트니 메트로폴리탄 세 곳에서 세계적인 작품들을 실제로 보고 미술사를 한 바퀴 훑으면서 미술 세계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데도 부글부글 끓어 넘쳤다. 덕분에 올해 국내에서도 온갖 유명 미술전을 섭렵했다.

원데이 클래스들도 하나씩만 보면 마치 간만 보는 것 같지만 흥미를 파악하는 데에 있어 유용한 경험이었다. 적어도 케이크를 데코 하는 게 보기에는 쉬워도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는 시간

휘낭시에에 무슨 재료가 들어가는지 아는 시간

나이프 등 새로운 도구로 그림을 그려보며 촉감을 기억하는 시간

무슨 꽃을 사용하냐만큼 중요한 게 어떻게 꽂느냐인 걸 체득하는 시간

모두 원데이 클래스로 얻었다.

경험이 밥 먹여준다고 믿고 실제로 밥을 먹여주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조금만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만나는 모든 체험은 크리에이터에게도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마케터에게도 10첩 반상이 되고 있으니.

내년에는 시간적 그리고 경제적 여유가 좀 더 생겨서 더 많은 새로움을 시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돈에 대해서는 다다익선(善)이라 생각하는데, 수렴하자면 새로움에 대한 망설임을 0으로 만들고 싶어서다.



나를 닮은 방을 위해

지난 11월 한 쇼핑몰 기획전에서 본 문구다.

집에만 있는 하루가 아니라, 여행 중에 숙소에서 쉬는 하루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임진아 작가-

방에 대한 애착은 어릴 적부터 강했다. 노란 장판을 못 바꾸는 집에 살아도 책과 침대 위 인형 등의 위치를 바꾸며 인테리어를 월 1회 바꿨다.

3년 전쯤 리모델링을 했을 때도 온통 흰 벽지와 흰색 가구로 마련해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방을 꾸미고 있다. '오늘의 집' 등을 보면서 누군가의 방을 따라 해 보고 물건도 따라 사며 잡지에 나올 것 같은 방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언제나 멋져 보이는 방이 목표였지만 노력과 달리 또 한 번 방을 뒤엎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뭔가 부족하단 말이지.... 그건 비싼 소품을 사지 않아서 혹은 미적 감각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올 하반기에 '내 집은 나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곳이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이렇게 저렇게 바꿔도 100%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나를 닮지 않아서구나.

여행자

크리에이터

책을 좋아하는 사람

미키마우스가 인생 캐릭터인 사람

풍경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진작가

글을 쓰는 사람

실제로 내가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여행 중 숙소를 고른다면 어떤 공간을 선택할까 생각해봤다.

일명 '절간' 향이 나고 오만가지 책이 꽂혀 있는 장이 있는 공간.

전체적으로 각이 잡혀 입혀 생각도 잘 정리될 것 같은 '차곡차곡'이라는 수식어가 떠오르는 공간.

해가 잘 들어와 따뜻한 플레이리스트를 틀게 되는 공간.

조용히 글을 쓰기 좋은 책상과 연필 그리고 빈 종이가 있는 아날로그적인 공간.

이거면 충분하겠더라.

그 숙소의 모습을 가져오면 그게 가장 좋은 인테리어임을 이해하게 됐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소비를 위해

앞서 말한 인테리어와 연결성이 있다. 올해는 유독 소비가 많았다. 코로나가 끝나면서 아꼈던 여행들을 쏟아냈고 그 안에는 미국 여행도 포함됐다. 여행만 해도 총합은 900만 원쯤 되지 않을까.

여행이나 옷처럼 항시 사던 품목 외에도 연필깎이 타이머 마우스 수납함 등 여러 품목에 카드를 내밀었다. 올해는 돈을 쓴 사실 자체보다 어떤 이유로 썼는지 방향에 대해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는 무조건 모으는 것만이 미래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끼고 또 아껴야지가 개인적인 철학이었는데 프리랜서로서 올해 본격적으로 수입을 만들어 가면서 이를 정정했다.

'나를 성장시키는 소비는 아끼지 말자'

이는 2022년 1월에 마련한 27인치 모니터가 기점이었다. 매번 노트북만으로 개인 작업들을 했는데 이러다 거북목이 생기거나 목이 딱딱하게 굳는 병에 걸릴 것 같았다. 고민 끝에 19만 8천 원짜리 흰색 모니터와 모니터암을 구입해 노트북과 연결했다. 와, 시력이 3.0은 된 기분을 경험하게 될 줄이야. 모든 화면이 확 트이니 작업하기 어찌나 좋던지. 작업 속도까지 빨라졌다. 영상 볼 때도 좋아서 영화를 엄청 본 것은 예상외 이득?

단언하는데 몇 주 남은 2022년 동안 추가적인 소비를 하더라도 올해의 소비는 단연 모니터다.

한번 소비의 긍정적인 영향을 경험한 뒤로는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영역이 생겨났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강의・원데이 클래스, 집중력을 높여주는 제품,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제품에게는 현실적인 가용 범위 안에서 긴 고민 없이 비용을 지불했다. 작게는 버티컬 마우스부터 구글 타이머, 베이킹 클래스, 여행작가 강연, 유료 BGM 사이트 등의 각종 프로그램 등. 어느 것 하나 후회되지 않는 소비다. 소비를 잘 운용하면 생산성을 높이기도 어떤 노력을 지속하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한다는 걸 이제 경험으로 잘 안다.

물론 계속해서 이렇게 쓰기 위한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라는 큰 숙제도 동시에 얻었지만.


의존하지 않는 삶을 위해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삶이라는 어렵고도 확실한 목표를 갖게 됐다.

'왜 나는 타협하는 삶을 살지 못할까.'

이는 직장생활 3년 차를 지나며 내내 고민했던 부분이다. 관심과 욕심이 있으면 집착하리만치 부단히 끌고 나아가지만 호불호가 명확해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뒤돌아선다. 때문에 여행 좋아하는 사람 아니랄까 봐 일상 속에서도 김삿갓이 따로 없다.

이 부분에 대해 여러 지인들께 조언을 구했지만 누가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듯 이렇다 할 심경 변화는 없었고 부단히 버틸 뿐이었다. 스스로도 프리랜서나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살면 되는 건지. 세계여행을 실컷 다녀오면 되는 건지. 작년까지 여러 가정을 세웠지만 바뀌는 게 없었다. 확실한 정리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2022년이었다.

나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가 2022년 현재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나는 이러이러한 것들을 좋아하고 잘하고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를 만들고 또 지켜가고 싶은 사람. 나를 구성하는 다양한 키워드를 구성하고 그것들을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하거나 잠시 묻어두지 않는 사람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올해 초~중순쯤 인스타그램 피드에 '나를 이루는 키워드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나에게 대한 관심이 지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결론은 이렇다.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말자'

그게 금전적인 부분이든 커리어면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뭐가 있어야만 내 생활을 영위하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가장 완벽한 상태 값일 것 같다. 그러려면 회사가 아니어도 나를 설명할 수 능력들이 있어야 하고, 돈에 허덕이지 않아야 하며, 인관 관계에 있어 스트레스받지 않는 단단함이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고아한 나를 바라고 있다. 어려워도 차근차근 0.1씩 이뤄가는 게 내년의 목표다.

 



신기한 일이다. 앞자리가 3으로 바뀐 건 그저 인간이 정한 기준에 불과한데 20대 때는 풀리거나 이해되지 않거나 고집부렸던 것들이 풀려간다. 나이 먹는 것은 그저 사람들의 숫자놀이라며 의미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의미부여를 해야 한다면 이런 긍정적인 변화가 온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런 걸 어른들이 말하는 무르익어 가는 걸까. 나에게 고아한 맛이 생기는 걸까.

이런 식이면 내년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어떡하나.


문득 아이유의 노래 중 어느 가사가 떠오른다.

[이젠 조금 알 것 같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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