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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Dec 19. 2023

오렌지 태양 아래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세계여행 첫 유럽, 스페인을 떠나며

세계여행 루트의 첫 유럽이었던 스페인 여행이 끝났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하는 알사버스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15일간 10개 도시. 6년 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만 여행했던 그때보다 더 다양한 얼굴을 보고자 부지런히 움직였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 끝에 온 지금, 나는 어떤 얼굴들을 봤을까?


스페인을 12월 초에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한 유럽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경험하고 싶고 추운 건 싫은 언밸런스함을 최대한 맞춘 결괏값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12~1월을 보내면 이후엔 좀 위로 올라가도 덜 춥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따뜻하긴 했으나 경량패딩 없었으면 패딩 하나 샀을 거다. 12월의 스페인은 영상 5~10도 내외를 왔다 갔다 한다. 한국에 비하면 가을이라고 봐야겠지만, 아침에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8시 넘어야 해가 뜬다) 아침 일찍 움직이면 체감 온도는 훨씬 낮다. 때문에 한국의 한 겨울과 같은 옷차림으로 목도리까지 하고 다니는 현지인들도 흔히 볼 수 있다. 네르하나 프리힐라지아처럼 일부 도시는 남부인 데다가 올해 이상기후로 20도 가까이 올라가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스페인도 겨울이었다.

스페인도 추운데 다른 유럽 국가 갔으면 얼마나 추웠을까. 가끔 생각했다. 원래 스페인 오기 전에 독일을 들리려고 했다. 독일이 또 크리스마스 마켓이 유명하니 이때 보면 좋을 것 같았다. 독일에서 스페인으로 오는 교통비가 세계여행 경로상 비효율적인 것 같아 결국 제외했다(미국과 캐나다를 찍고 따뜻한 계절에 다시 유럽여행을 시작할 예정).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 일인 것 같다. 지금 안 가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언제 독일을 가냐-싶지만 그렇게 이야기했던 스페인을 이렇게 또 왔지 않은가.


두 번째 스페인은 내가 생각했던 스페인과 너무나 다른 나라였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로 스페인을 정의했을 때는 관광국가로 느껴졌다. 가우디 바다 탱고 왕궁 대성당. 여행자 전용 키워드로 스페인이 읽혔기 때문이다.

이번 스페인 여행은 다양한 사람들의 군상과 도시 자체의 특징이 여행지들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스페인 전반적으로는 이 나라에도 내향인이 있을까 너무 궁금했다. 다들 어찌나 말을 적극적으로 잘하는지. 카페와 식당 야외석은 매번 대화에 목마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안주도 없이 맥주만으로 앉아서 또는 서서 웃고 떠드는데 그런 모습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이 나라의 사회생활이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이들에게도 인맥 관리가 중요할까? 살아가는 데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일까?

바르셀로나타 해변보다 해변 끝에서 할아버지들이 체스와 비슷한 보드게임에 열중하는 모습에 더 눈이 갔다. 가만히 보는데 종로 3가에서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

계획 도시인 바르셀로나의 모양도 와닿았던 시간들이었다. 길을 건널 때마다 코너를 둥글게 45도쯤 돌아야 하는 일련의 규칙이 재미있었다.

론다의 누에보 다리보다 넓은 이탈리아 남부 와인밭을 닮은 들판과 울그락불그락 뽀빠이 근육 같았던 협곡이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절벽 위 그리고 아래에서 삶을 일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궁금했다. 투우가 유명한 도시답게 열정적이고 아슬아슬할까. 론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면서 겉할기로 본 건 그들의 일상도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지만.

프리힐리아나와 시체스에서는 새하얗고 좁은 골목길에 있는 가정집 문들에 주목하게 됐다.

'이런 곳에 사는 건 마치 북촌한옥마을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이겠지?'

남들은 예쁘다-까르르 웃으며 사진을 찍지만 이들에겐 일상일 테니. 창틀에 알록달록 꽃이 핀 화분들을 두는 것에는 내 집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생각한 마음이 들어 있을지도 가늠해 보며 걸었다.

세비야와 마드리드에서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에 가게 앞을 쓸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걸음을 매일 봤다. 카페에서는 빵과 커피를 먹으며 노트북에 열중이었다. 스타벅스에서도 개인 카페에서도 아침을 노트북 타이핑과 함께 혹은 화상 미팅과 함께 여는 사람들이 많았다.


곁에서 나 또한 노트북을 타탁 거리는데 어디서 어떻게든 일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최대한 내가 한국에서부터 하고 있던 개인 작업들을 유지하면서 여행했다. 블로그에 여행 정보를 올리고 유튜브에 올릴 여행 브이로그를 편집하고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편집했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도 꾸준히 올렸다. 8년 동안 기다리고 때때로 간절했던 이 여행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호스텔 라운지에서 침대 위에서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을 하며 느낀 건 의지의 문제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와이파이가 너무 느려 영상 만드는 걸 그만둘까 생각한 적이 수십 번이었지만 어떻게든 올리겠다는 의지가 있으니 최종 업로드까지 해낼 수 있었다. 충전기를 연결한 노트북을 켜놓고 자다가 중간에 깨서 랜더링이 잘 됐는지 확인하고 하나뿐인 콘센트에 휴대폰 충전기를 꽂아 충전하며 영상을 만들고 올렸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제대로 배웠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도슨트를 들었다. 가이드님이 어떻게 스페인에서 이 일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 여쭤봤다.

"스페인에 여행자로 왔다가 너무 좋아서 아예 뿌리를 내리게 됐어요. 한 십 년쯤 된 것 같네요."

그날 도슨트 내용도 좋았지만 가이드님의 그 대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이드를 하면서 해외에 뿌리내리고 살 수도 있구나.'

내가 정말 해외에서의 삶을 생각한다면 이런 걸 준비할 수도 있겠구나 깨달았다. 나도 영어 회화와 미술사를 공부하면 미술관 도슨트를 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여행하면서 영어 회화와 미술 공부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여행을 편하게 하기 위해 절실해진 걸 수도 있다) 한국 가면 열심히 공부해야지 생각했던 찰나라 더 와닿았던 가이드님의 히스토리였다. 가이드님은 중남미 여행도 도전하고 싶다 하셨다. 가이드님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참 자기 주도적이고 멋진 인생이라 생각했다. 나도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넓게 그리고 자유롭게 미래를 계획해보려고 한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방법도 있고 이런 선택도 할 수 있다는 걸 종종 깨닫는데 마드리드에서 그런 순간을 만났다. 꼭 여행으로만 다양한 길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자꾸만 세상을 이곳저곳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건 참 중요한 것 같다.


스페인에 있던 15일로 스페인을 다 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오히려 모른다고 해야 맞을 거다), 어딜 가나 있었던 오렌지 착즙 주스와 오렌지과 열매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무들이 '그래도 여긴 따뜻한 나라야'라고 말해줬던 스페인의 따뜻한 얼굴들을 마주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통해 나를 생각해 볼 수 있어 유의미했던 시간들이었다. 스페인이 준 따뜻한 조언과 추억들 그 모든 선물들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스페인 마지막 베이스캠프였던 세비야에서 근교 도시 론다로 당일치기를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아이유-에잇>을 들었다. 듣는데 문득 가사가 딱 스페인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인 것이 아닌가.

 글을 올리기 전에 만나 다행이다.

그래서 마지막 문단은 아이유의 에잇 가사 일부로 대신한다.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춰. 정해진 안녕 따위는 없어.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하얀색이 그렇게 하얀색일 수가 없었던 프리힐리아나
미니어처 같은 사람들이 귀여웠던 네르하의 해변
일몰 직후의 보랏빛이 아름다웠던 그라나다
잊지 못할 충격,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해리포터를 만나게 될 줄이야! 바르셀로나
미술관 앞에서 매주 열리는 아트마켓이 아름다운 문화로 보였던 세비야
그림 같았던 휴양도시, 시체스
걸어서 역사 속으로, 지로나
영화 <반지의 제왕> 요새가 생각났던 톨레도
누에보다리보다 더 좋았던 협곡, 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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