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Jan 12. 2024

포르투갈 3주 살이는 어떨까?

3주 동안 머물렀던 포르투갈 도시들을 정리하는 글

*정확히는 25일을 포르투갈에 머물렀다. 3주는 넘고 4주는 모자라고. 애매하니 겸손하게 3주 살이라고 퉁치기로 한다.



포르투갈은 2023년에 국내 SNS상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유럽 국가일 거다. 정확히는 포르투(Porto)라는 도시 때문일 텐데 이전에는 포르투갈 하면 대체로 리스본만 알았는데 일 년이 지나니 "포르투가 그렇게 예쁘다며"라고 하더라. 전 여행사 출신 여행 크리에이터로써 꽤 신기한 현상이라 생각했다.

긴 비행시간 치고 큰 인기를 끌었던 포르투를 포함해 2023년 연말부터 2024년 연초까지 리스본 카스카이스 호카곶 아베이루 코스타노바 브라가 이렇게 7개 도시를 여행했다.


세계 여행이라는 큰 틀을 제외하면 제주도 한 달 살이 이후 가장 긴 시간을 투여한 프로젝트성 여행이었다. 굳이 포르투갈에서 긴 시간을 머문 이유는 그저 궁금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끝에 있는 나라. (사실 이건 와 보니 잘 모르겠지만) 겨울에도 비교적 온난한 나라. 에그타르트가 유명한 나라. 유럽치고 물가가 저렴한 나라. 포르투의 진실(?)이 궁금하기도 했다. 포장되지 않은 모습으로 지역을 제대로 보려면 최대한 긴 시간을 머물러야 했다. 스페인에서 지낸 일수보다 일주일 가량 더 많은 시간을 포르투갈에 쏟기로 결정하고 넘어왔다.


평소 유럽에 낭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현재까지 가 본 유럽 국가들 중에서 크로아티아만 인생 도시다 말하고 있다. 이를 제외하면 사실 취향은 미주 그리고 뉴욕이 더 잘 맞는 극단적인 도시파다. 그런 여행자가 포르투갈에서 3주나 있겠다고 결심한 게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언제나 여행은 예상을 빗나간다.

단 3주 만에 포르투갈에 반했다. 낭만적인 나라라고 생각하게 됐다. 모든 게 꿈같은 곳이다.


스페인에서 버스 타고 건너와 지하로만 이동하다가 처음 리스본 도시 풍경을 봤을 때 바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

와 이 힘든 와중에 예쁘네

세계여행을 출발한 이후에 가벼워질 생각이 없는 캐리어를 와당탕 끌고 가면서도 예쁘다고 말한 건 리스본이 처음이다. 세계여행이 아니더라도 보통 숙소를 찾아갈 때는 풍경이 눈에 잘 안 들어오는 직진 여행자인데 리스본은 오직 미션에 집중하는 여행자의 시선도 돌리는 도시였다. 꼭 노란색 트램이 아니더라도 통일감 전혀 없는 건물 외관들의 합주가 완벽하다. 지금껏 유럽은 통일감 있는 건축미가 특징이라 생각했는데 리스본은 예외다.

여기에 도심에 붙어 있는 바다도 신기했다. 쇼핑 거리 끝에 바다라니. 바다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만 살아봐서 아침마다 해안산책로를 걷는 게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졌다. 바다의 얼굴은 실시간으로 달라져 매번 새롭고 자꾸 걷고 싶었다. 그 덕에 벨렘지구까지 1시간 40분을 걷기도 했고 검색 결과에는 나오지 않던 일몰 스팟까지 알게 됐다. 리스본은 바다 곁에 살아보고 싶은 여행자의 소원을 이루게 해 줬다.

포르투갈에 오기 전에 가본 사람들이 다들 그랬다.

"포르투 가면 리스본 진짜 별로였다고 생각할 거예요"

"리스본은 오래 있을 곳이 아니에요"

역시 뭐든지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는 거다. 나는 솔직히 리스본이 포르투와 동등하게 좋았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리스본에서 긴 시간을 머물 거다.

리스본에서 두 지역을 더 다녀왔다. 바로 '카스카이스'와 '콜라레스'.

콜라레스는 호카곶이 있는 도시다. 호카곶은 유럽의 끝 중에서도 끝. 이것만으로도 리스본에 있을 때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리스본에서 호카곶을 가려면 무조건 카스카이스 혹은 신트라를 거쳐야 한다. 카스카이스는 그렇게 가보게 된 휴양 도시다.

'여기서부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호카곶 풍경을 잘 설명하는 문장을 생각해 냈는지. 문장만 생각해도 선명한 수평선과 너무 넓어 우주같기도 했던 그날의 바다가 떠오른다.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루피가 된 것 같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장소였다. 호카곶의 바다를 보면 계속해서 다짐했다.

'여기에서 느낀 감정을 잊지 말자'

유럽의 끝에 혼자 찾아올 정도면 뭔들 못 하겠냐며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주문을 외웠다. 호카곶이 앞으로의 삶에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구름이 바다와 데칼코마니였던 카스카이스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도시다. 동동 떠 있는 형형색색의 배들을 보면 어촌마을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보이기도 하고, 골목을 걷고 있으면 단정하게 정돈된 소도시라는 생각이 들고, 악마의 입이라 불리는 해안 절벽 위에 서 있으면 '여기가 천국으로 가는 길인가' 제3 세계에 온 것 같다. 해변 바로 앞에 있던 광장에서 크리스마스 마켓과 대관람차 그리고 회전목마를 봤을 때는 놀이공원 같은 귀여움이 느껴졌다.

도시의 주요 명소를 모두 도보로 다닐 수 있는 카스카이스의 매력은 도시의 크기보다 훨씬 크고 다양했다.


문제적 도시 포르투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열이면 열 모루 공원에서 보는 일몰이었다. 실제로 처음 포르투에 갔을 때 가장 중요하게 매달렸던 것도 모루 공원 일몰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테일러스 와이너리 양조장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포도주 향과

유명 맛집들보다 훨씬 덜 달고 바삭했던 젤라토 가게의 나타를 처음 입에 물었을 때의 식감

주문을 잘못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먹게 된 월넛 샌드위치의 고소함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대화와 기가 막히게 잘 불러서 걸음을 멈추게 만든 길거리 공연

취향인 노래들만 틀어줘서 계속해서 노래를 검색하게 만든 스타벅스의 플레이리스트다.

시각보다 후각 미각 청각이 훨씬 먼저 생각난다. 보이는 것 외에도 얻는 게 많은 도시다. 그래서인지 사진보다 영상을 유독 많이 남긴 도시였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나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물론 모루 공원 일몰도 짧고 굵은 아름다움이었다

포르투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온 '코스타노바'와 '아베이루'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으로만 보면 줄무늬마을을 실제로 보는 것 자체만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여기에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해변과 전통 간식인 '오부스 몰레스'와 '트리파'까지. 이래저래 두 도시는 신기함 투성이었다. 심지어 아베이루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서 산 만다리나 과일까지 신기했다. 분명 생긴 것도 귤이고 껍질도 귤과 똑같은데 안에 씨도 있고 오렌지맛이 나더라. 맛있어서 이후에 또 먹으려고 했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아쉽다.

여행을 출발한 지 딱 두 달이 되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새롭고 신기한 게 많다. 이거다. 이게 바로 내가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이유다.

코스타노바에서 먹은 Tripa 트리바
아베이루의 전통 간식, 오부스 몰레스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날은 '브라가'에서 시간을 보냈다. 원래 전날 가려고 했는데 열차 티켓까지 끊었건만 기차 파업이라고(정말 불친절하게 전광판도 그대로 시간 다 떠 있고 종이 안내문 달랑 한 장만 붙어있더라. 안 봤으면 계속 기다렸을 거다).

다녀온 지금에서야 잘된 일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원래 가려던 날에는 비가 왔다. 그래도 일단 가려고 했던 건데 파업 덕분에 하늘 말끔한 날에 브라가를 다녀올 수 있었다.

브라가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정도였기 때문에 큰 기대도 없었는데, 아니 이렇게 건축미가 아름다운 도시였다니!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도시라는 브라가는 과거의 어느 한 지점처럼 느껴졌다. 무슨 건축 양식인지 모르겠지만 낡아서 더 멋진 건물들과 분수대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봉제수스 성당까지 모든 게 역사책에 나올 것 같은 풍경이었다.

특히 봉제수스 성당은 이전에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 데도 입체감이 주는 경이로움이 있었다. 깊이감이 주는 신성한 분위기에 세계여행을 지금까지 안전하게 잘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기도를 해야 할 것 같은 성당이었다.

더 일찍 브라가에 와서 여유롭게 둘러봤으면 좋았을 텐데 얕은 아쉬움을 느끼며 구시가지를 둘러보고 다시 포르투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포르투갈의 마지막을 완벽하게 만들어준 그리고 마지막까지 새로움을 느끼게 해 준 도시다.

봉제수스 성당
브라가 구시가지




포르투에 도착하자마자 유심 데이터를 다 써 멘탈이 무너지기도

날씨가 호락호락하지 않아 으으- 추위에 떨며 목도리를 사야 하나 고민하기도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기도

그 비를 맞아 카메라가 일부 고장 나기도

티켓까지 구입했더니 열차 파업으로 계획했던 근교 도시를 못 가기도

구름이 많아 일몰 사냥에 5일 연속 실패하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포르투갈에 오길 잘했다'라고 생각한 순간이 많았다. 또 그 순간들은 매번 신선한 충격과 잔상을 만들었다.

나중에 휴대폰 갤러리 속에 쌓인 사진과 영상들을 보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번외] 경비도 스페인에 비해 훨씬 적게 들어 매우 만족스럽다(물론 스페인은 도시를 많이 가면서 교통비가 많이 들어간 게 크지만 물가도 꽤 큰 몫을 했다).



▼ 리스본에 대한 더 자세한 여행기는 아래에 있어요.

▼ 윤슬의 세계여행 정보들이 담긴 뚜벅이 여행 전문 뉴스레터 <뚜벅이는 레터> 구독하기


▼ 포르투 여행 브이로그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렌지 태양 아래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