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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Dec 28. 2023

볼루헤이를 닮은 도시

크리스마스 시즌에 먹는 포르투갈 전통빵과 리스본의 상관관계


볼루헤이(Bolo-Rei)는 포르투갈의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빵이다. 독일의 슈톨렌과 비슷한 크리스마스 기념 빵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대다수의 베이커리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볼루헤이를 가게 밖에서 잘 보이는 자리에 진열한다. 연중 내내 찾아다니면 먹을 수는 있지만 현지인들에게 볼루헤이는 크리스마스에 먹는 빵으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스타벅스에서도 볼루헤이 빵을 내놓는다. 본래 볼루헤이는 사람 얼굴만 한 도넛 크기로 생겼다. 혼자 먹기에는 아주 부담스러운 홀케이크 크기다. 스타벅스에서는 이를 미니 버전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조각 케이크 먹는 정도의 포만감으로 볼루헤이를 먹을 수 있다.  

필자도 첫 볼루헤이는 스타벅스에서 먹었다

볼루헤이의 뜻은 두 개의 단어가 내포되어 있다. 

볼로(Bolo)는 일종의 빵 종류를 통칭하는 단어다. 머핀과 파운드 케이크 같은 빵들이 모두 볼로다. 빵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식감으로 '아 그런 식감의 빵이 다 볼로구나' 지레짐작할 수 있다. 포슬포슬 빵가루 많이 떨어지는 빵들. 

뒤에 붙은 헤이(Rei)는 왕을 뜻한다. 크리스마스 빵인 만큼 여기에서 말하는 왕은 예수를 지칭한다. 

이 의미를 몰라도 외형을 보자마자 크리스마스와 참 잘 어울리는 빵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알록달록 오너먼트를 가득 단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는 것 같다. 볼루헤이가 수십 개 진열되어 있는 가게를 보고 있으면 대형 트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화려함을 느낄 수 있다. 


볼루헤이 맛 또한 외형과 비슷하다. 볼루헤이에 다닥다닥 들어가는 주요 재료는 과일 절임과 완두콩 그리고 견과류다. 재료만 들어도 무슨 맛인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일단 달고 씹히는 식감이 다채롭겠군. 맞다. 딱 그 맛이다. 머핀 식감의 빵에 다가 건과일과 견과류가 붙는다고 생각하면 흡사하다. 단맛이 강한 편이기 때문에 우유가 들어가는 음료랑 먹을 때 가장 맛있다. 마치 초콜릿 쿠키를 흰 우유에 담갔다가 먹었을 때의 맛있음이랄까. 머릿속 크리스마스 트리에 조명이 따랑- 켜지고 행복함이 반짝인다. 오래 기억에 남을 모양에 맛까지 갖춘 볼루헤이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만들어주는 빵이다.


볼루헤이를 처음 맛본 뒤에도 리스본 여행은 계속됐다. 24시간을 채운 날만 세어도 열흘이 넘는다. 리스본을 여행한 사람치고 긴 시간을 리스본에서 보냈는데도 매일 새로움이 계속 됐다. 

'도대체 이틀 만에 떠난 사람들은 어떻게 리스본을 다 보고 간 거지?'

의문이 들 정도로 리스본은 매번 다른 오너먼트를 꺼냈다. 나 이 색깔도 있다~ 나 이 모양도 있어! 이것 봐라 이것도 있지롱! 수많은 재료를 자랑하는.... 볼루헤이. 아 이 도시는 볼루헤이를 닮았구나!

리스본에서의 여정이 끝에 다 달았을 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실컷 봤던 얼굴만 한 빵이 다시 생각났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도시다. 규모부터 수도다운 면모를 자랑하고 있는데 꽉 차 있기까지 하다. 온갖 스파(SPA) 의류 브랜드가 모여 있는 아우구스타거리, 곳곳에 있는 포르투갈의 대장 베이커리 나타(NATA, 한국에서는 에그타르트) 맛집, 처음에 장난감 가게인 줄 알았을 정도로 동화 같은 인테리어를 한 정어리 통조림 가게, 경건함을 도시에 첨가한 성당들, 도시 중심가에 바로 있어 신기한 바다, 특이하게 화요일과 토요일에 여는 플리마켓, 매일 아낌없이 빛을 발하는 일몰, 그 풍경을 보기 좋은 전망대들, 그곳의 분위기를 한껏 감성적으로 만드는 버스킹, 이 모든 것들 사이사이를 지나는 빨강 노랑 트램 그리고 버스. 언급한 것보다 언급하지 않은 게 훨씬 많은 빼곡한 도시다. 그런 것치고 거리와 시야가 여유로운 게 매일 신기하다. 


처음 리스본에 열흘 이상의 시간을 잡기로 결정했을 때 며칠은 심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근교도시 도시 세 곳을 여행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었다. 결과적으로 여행 말미에 겨우 두 곳을 다녀올 수 있었다. 심심했던 날은 여느 유럽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가게와 관광지까지 내부 관람을 쉬는 크리스마스 당일뿐이었다. 

한 달을 지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도시는 지금껏 다녀본 해외 도시 중 뉴욕이 유일했는데 리스본도 추가하게 됐다. 

리스본에 오기 전에 거쳐온 도시 중에는 한 달 살기로 유명한 치앙마이도 있었다. 나에게 한 달 살기로는 치앙마이보다 리스본이 더 잘 맞을 것 같다. 이 도시의 꽉 찬 그리고 다양함까지 챙긴 볼루헤이 같은 매력이 마음에 든다.

리스본 8일 차 저녁에는 코메시우스 광장 해안가에서 언제 정박했는지 없던 게 짜잔 나타난 대형 크루즈선 옆에 보름달까지 떴다. 아니 이렇게 동그란 보름달까지 떠 버리면 어쩌란 건가. 한 도시 안에 얼마나 많은 걸 보여주는 거야! 

감사함이 담긴 원망에 코가 찡해졌다. 

그리고 대뜸 한참 빠져있는 TV프로그램 <최강야구>의 자막이 생각났다. 

'어떻게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그렇게 리스본은 내가 유독 사랑하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오래 기억에 남을 풍경과 시간만을 갖춘 도시다.



▼ 리스본에서 눈물 콸콸 쏟을 뻔한 윤슬의 유튜브는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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