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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Dec 19. 2023

몇 가지 강렬한 추억으로 사랑하게 되는 도시가 있다

이번에 확신하게 됐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몇 년 전에 좋아했던 그곳을 넘어 내가 사랑하는 도시다.

겉으로 보면 마드리드는 특별할 건 없는 그저 '도시'다. 바르셀로나처럼 햇살이 가득하고 바다가 있고 가우디의 재치 있는 건축물이 곳곳에 있는 테마파크 같은 도시도 아니고, 그라나다나 톨레도처럼 역사가 느껴지는 고즈넉한 느낌도 아니다. 시체스나 네르하같이 통일감 있는 색채가 있지도 않다.

메트로와 버스의 다양한 노선, 규모 있는 버스터미널과 광장 그리고 가게들, 많은 사람들,  유럽치고 단정한 보도블록. 누가 봐도 도시라고 할 법한 것들로 이루어진 마드리드다. 그래서 여행자들에게 마드리드는 대체로 여행지보다는 짧게 가보는 수도 혹은 쇼핑하기 좋은 곳으로 통한다.


하지만 내게 마드리드는 시작부터 조금 다른 만남이었다.

첫 마드리드 여행 기억 중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왕궁만큼이나 웅장했던 주황빛 일몰이다. 거대한 구름이 층을 만들어 더 장관이었던 일몰을 주황빛에서 보랏빛이 될 때까지 동생과 한참을 봤더랬다. 다시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을 것을 알기에 코가 찡한 기분을 느꼈던 걸로 기억한다.


좋은 기억 때문일까. 마드리드 가는 날을 기다렸다. 마드리드에 가면 좀 더 안정감을 찾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길어지는 여행 기간 중 심리적으로 한 템포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태국에서도 늘어지게 쉬었지만 한국에서도 잘 안 타는 택시를 타서 그런지 나라 자체가 나에게 이러나저러나 여행지일 수밖에 없었는지 안정감이 있는 기간을 보내고 싶었다. 편안하게 생각할 것도 하고 일도 하고.

실제로 마드리드에 있는 사흘은 편안했다. 메트로 타는 것도 한국과 비슷하고 넓지 않은 영역 속에서 플리마켓과 미술관도 다녀왔다. 스타벅스에서 말차라테를 마시며 작업에 집중하기도 하고 마트에서 물을 사는 평범한 하루들.


일상 속에서 가끔 영감을 얻는 것처럼 마드리드에서도 거대한 영감들을 접할 수 있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눈썹 있는 모나리자를 봤고, 호아킨 소로야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됐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그 유명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봤다. 이후 게르니카는 인생 작품 컬렉션에 올랐다.  

우연히 구글맵을 통해 주말마다 열리는 플리마켓을 알게 되어 다녀왔다. 플리마켓이 어땠냐면...

'종묘가 여기도 있네?'

옷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5유로에 파는데 어찌나 익숙한 풍경이던지.

크리스마스 시즌답게 광장 마켓과 거대한 조명 그리고 트리도 실컷 봤다. 왕립 우체국이자 정부청사 건물에서는 저녁마다 일정 시간에 조명쇼를 한다. 창문이 많은 건물의 특징을 살린 조명쇼가 창의적이다. 새삼 이 도시가 얼마나 크리스마스에 진심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6년 전처럼 이번에도 나만의 마드리드를 만났다. 어느 나라에나 있을 것 같은 도시 속에서 인생 작품을 스페인의 종묘를 창의적인 조명쇼를 그리고 한국 같은 편안함을 얻었다.

 

순간순간 느끼는 좋은 기분들이 쌓이고 쌓여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좋은 기분들은 좋은 추억이 된다. 6년 전의 기억이 그렇듯.

마드리드는 언젠가 또 한 번 가고 싶은 도시인데 그때도 살던 나라에 온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추억을 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무리는 내가 사랑한 도시 '마드리드'의 크리스마스 시즌 풍경으로.




▼ 마드리드를 사랑하는 윤슬이 운영하는 여행 유튜브 채널 <뚜벅이는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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