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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Dec 15. 2023

바르셀로나에서 당일치기 가능한 근교도시2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외에도 스페인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는 근교 도시 여행의 비중을 한껏 높이고 있다. 수도인 마드리드와 축구 바다 음식 쇼핑 여러 기준으로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바르셀로나 외에도 다른 각도에서 보이는 스페인의 얼굴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이틀을 쪼개 두 곳의 근교 도시를 다녀왔다.
부를 가진 사람들이 별장을 짓고 휴가를 보내러 간다는 시체스.
겨울에도 가을 같았던 갈색빛의 도시 지로나.
두 곳의 감상을 기록으로 기억해 본다.


시체스


바르셀로나에는 '바르셀로나타'라는 해변이 있다. 넓은 지중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의 천국과 같은 곳으로 서핑하는 사람들 혹은 모래 위에 앉아 그저 물멍 시간을 갖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가 스페인의 휴양 도시 역할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던 이유다.


그 생각에 균열이 일어나고 곧이어 깨진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시체스'다(사건이라 할만한 충격이었다).

사실 시체스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다. 세계여행을 다녀면서도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일정을 쓰고 노션에 장기 여행에 필요한 여러 사전 정보와 예약 사항을 누적시키는 뼛속까지 계획형 여행자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시체스가 어떻게 생긴 도시인지도 몰랐다. 아는 건 시체스 가는 방법과 그저 구글맵에 맛집 몇 개 저장해 둔 것뿐이었다(무색하게도 맛집들을 가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에서 렌페 기차로 사십 분 만에 도착한 시체스 기차역.

해안가 방향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일단 바다를 먼저 보자.

오전 열한 시의 한산한 거리를 걷기 시작한 지 삼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갖고 있던 생각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본 스페인이랑은 너무 다르잖아?

전체적인 건물색은 하얀색으로 칠하고 파란색 초록색 주황색으로 포인트를 준 건물들이 만드는 거리 풍경은 오히려 그리스의 산토리니의 번화가를 연상하게 했다. 건물에 달린 문마저 단색의 옷에 달린 브론즈로 보였다. 화려하지 않아 우아해 보이는 거리가 다른 도시를 넘어 다른 나라에 온 기분을 들게 했다. 내가 아는 스페인의 넓이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시체스의 길은 좁아질수록 아름다워진다. 좁은 길들은 관광객들을 위한 거리보다는 누군가의 집들이 모여 있는 주거 단지라 그 색과 요소가 더욱더 단조롭다.

십이월에도 온난한 기후를 갖고 있어 꽃을 심으면 잘 피는지 집집마다 생명력이 깃든 화분들을 테라스에 두었다. 집주인들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게 거리를 동화책의 어느 페이지로 만든다. 웃음 짓게 만든다.

시체스를 여행할 때는 정처 없이 골목을 걷는 시간이 꼭 필요한 이유다. 대강 어느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것만 인지한 채로 그저 끌리는 골목으로 걷고 돌고 들어가면 낭만이 가득 차다 못해 흘러넘치는 풍경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골목 탐험하는 재미가 있다.

동화책은 바다가 눈에 완전히 들어올 때부터 절정에 치닫는다.

'내가 제일 하~얀색이야!'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 산 세바티 안 성당을 시작으로 파도치는 바다를 따라 하얀색 카펫이 깔린 것처럼 길게 늘어진 하얀색 건물들. 그리고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일몰 명소이자 한국인들에게는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산트 바르톨로메 성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성당부터 다시 한번 해수욕장 역할을 하는 해변가의 등장. 왜 부자들이 시체스에 별장을 짓고 휴가를 보내러 오는지 납득되는 순간이다. 몰아치는 절정 구간을 그저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다닐 뿐이다. 눈으로 다 담지 못해 입으로도 흡수하겠다는 마음이랄까.



시체스는 스페인에서 가장 이색적인 도시 중 하나가 분명하다. 적어도 스페인의 이곳저곳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중인 현시점에는 단연 시체스가 일등이다. 예쁘고 웅장하고 역사가 느껴지는 도시들이 많지만 그 외에 '이색적'이라는 수식어를 추가로 덧붙일만한 도시다.

주요 여행지와 골목을 돌아봐도 세 시간이면 충분한 작은 휴양 도시의 매력은 힘이 세다. 심지어 기차역 외관까지도.



지로나

한국인들에게 드라마 촬영지 혹은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알려진 곳.

매년 꽃축제가 열리는 곳.

라리가 축구 클럽인 지로나 FC의 연고지.

지로나가 가진 수식어는 한두 개가 아니지만 이번 여행에서 내가 느낀 가장 큰 수식어는 '걸을수록 시계가 거꾸로 가는 곳'이다.  

도시는 대체로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탄생한 재료와 색채로 건물을 다시 짓고 길을 정비하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고 지하를 뚫는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도시 전체를 들어내기도 한다(한때 그 과정을 거친 도시가 바르셀로나). 그게 도시가 더 나아지는 길이라고 우리는 으레 생각한다.

하지만 지로나는 교체보다 유지를 선택한 듯하다(개발 제한이 걸려 있을 거라 짐작되지만, 제한을 건 것 또한 선택이니). 특히 주요 여행지들이 모여 있는 올드타운을 걸으면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센이 되는 계기가 되는 터널을 걷는 것 같다.

지로나도 옛 성곽이 올드타운을 감싸고 있어 성곽이 보일 때면 반지의 제왕에 나왔던 요새가 생각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톤이 어두운 도시라 중세시대 갑옷이라도 보일 것 같이 무게감이 느껴질 때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 다리들이 있는 쪽으로 나가는 길이 나타난다. 탁 트인 하늘과 함께 한층 알록달록해진 건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빨간색 다리, 에펠의 다리가 있다. 프랑스 에펠탑을 만든 그 구스타보 에펠이 맞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에펠이 프랑스에 에펠탑을 짓기 전으로 돌아가면 지로나의 빨간색 다리가 나온다.

지로나에는 1194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무려 목욕탕. 아랍인들이 고대 12세기에 만든 공중목욕탕에는 한국의 목욕탕 종류와 흡사한 구분으로 열탕 온탕 냉탕 그리고 사우나실까지 있다. 스페인에서 만나는 공중목욕탕이란. 사실만으로도 신기한데 모니터를 통해 사람들이 공간을 쓰는 모습을 시물레이션으로 보여주어 공간을 상상하며 보는 재미까지 있다. 구조가 흘러 온 시간에 비해 제법 완성도 있게 남아있는 것도 재미있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다.

이처럼 걸을 때마다 과거의 어느 지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곳이 지로나다. 걷는 만큼 더 많은 과거의 순간들에 닿는다.



바르셀로나만으로도 꽤 긴 여행 기간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더 여유 있게 기간을 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근교 도시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주변에는 당일치기로 가볼 만한 소도시들이 많다. 이번에 언급한 지로나와 시체스가 아니더라도 토세다마르 등 기차 타고 반나절을 보내고 돌아올만한 가치가 있는 곳들이 바르셀로나 주위에 포진되어 있다.


특히 바르셀로나에서 살짝 늘어진 기분이 들 때 근교 도시를 찾으면 전혀 다른 풍경 앞에서 적극적인 기분으로 전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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