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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Feb 09. 2024

뉴욕에 한 달을 머물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2022년에 이어 두 번째 뉴욕에 온 지 달이 됐다. 

인생 미술관이었던 모마 미술관과 재회했고, 듣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메트로폴리탄 도슨트를 다시 한번 들었다.

첫 번째 뉴욕여행 때는 가지 않았던 곳들도 여럿 가보고 있다.

인트레 피드(항공 우주 해양 박물관)와 자연사 박물관을 다녀왔다. 영화 <탑건>을 보고 방문해서 그런지 실제로 쓰였던 항공모함의 거대함은 우와 우왕 감탄할만한 존재였다. 갑판 위에 오르니 영화 속 N번째 조연 같았다. 뉴욕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은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메인 촬영지인데 덤덤 캐릭터로 나온 모아이 석상을 실제로 본 게 큰 수확이었다. 영화 속에서 다소 맹하게 표현한 게 사실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는데 그 의도와 다르게 나는 영화 캐릭터 중에 덤덤을 가장 사랑했다. 

센트럴파크의 여러 구역을 걷기도 했다. 지난번에는 피크닉 명소로 유명한 <쉽 메도우> 구역만 갔었는데 이번에는 비틀즈에 대한 국민적인 사랑이 머물고 있는 <스토로베리 필즈>와 공원 속 이색 스케이트 링크장 <울먼 링크> 등 센트럴파크 하부의 주요 명소들을 다녀왔다. 아름다운 분수대가 있어 영화 촬영장으로 쓰이기도 했던 <베데스타 테라스>에서는 일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아름다운 연주를 하던 중국인 아저씨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지난 뉴욕의 계절은 여름과 가을의 중간쯤이라 굉장히 푸릇푸릇 색감이 선명했다. 그런데 지금의 뉴욕은 칼바람에 첫눈까지 맞으니 '여기도 계절별 분위기가 이렇게나 다르구나'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 와중에 눈 내린 센트럴파크는 어찌나 예쁘던지. 미국 로맨스 영화인 줄 알았다. 아니면 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했던 눈 내린 호그와트 풍경이던가.

정말 해리포터의 한 장면 같지 않나요...?


도시의 분위기는 달라도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게 하나 있다. 나는 그게 뉴욕의 변치 않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지 않아도 될 자유가 눈에 띄었던 뉴욕은 여전했다. 

한국은 거리를 걸으면 지금 어떤 가방이 어떤 외투가 유행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검은색 롱패딩 혹은 숏패딩, 자이언트얀 가방,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비 오는 날의 장화, 한때 20대의 브랜드였던 아페쎄 등. 어떤 시기가 되면 사람들이 다 비슷해지는 풍경이 흥미로울 때가 많았다. 

그런데 뉴욕은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명확하지 않다. 무슨 컬러가 그리고 어떤 옷이 유행인 건지 잘 모르겠다. 추워서 입은 패딩 외에는 각양각색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다 다른데 거기서 느껴지는 자존감이란. 유행보다 '취향'을 중시하는 미국 사람들의 모습은 꼭 무지개 같다.

글로시에와 스탠리 빅 텀블러가 인기라는데 또 막상 거리를 돌아다니면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마치 뉴요커들은 베이글이랑 커피를 들고 다니면서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과 비슷한 이치다. 점심시간에 베이글 가게에 가면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한국 점심시간에 국밥집을 가면 아저씨들이 많은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유별날 정도의 문화는 아니다. 오히려 홈리스들이 편의점 문 열어주는 게 유행이라면 유행이다 허허.


모두가 다른 모습들을 매일 보고 있어서 그런 걸까. 나도 내 인생에 취향이 묻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외형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도 이런 식의 선택과 추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만의 기준으로 밀고 나아가는. 내가 한 선택을 옳게 만드는. 돌연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이렇게 다니고 있는 것처럼.

커리어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뉴욕을 포함해 지금껏 세계여행하면서 떠올린 단상들을 토대로 어떤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지 생각했다. 일단 불편함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브랜드에 가고 싶다. 여행하면서 너무 많은 불편함을 느껴서 그런 것 같다. 나라와 상관없이 생각보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불편함들이 많다. 개선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개선할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들이 많다. 그래서 세심하게 개선하는 서비스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너무 멋지다' 선망한다.

직무는 카피 혹은 글을 쓰는 직무로 더 뾰족하게 일하고 싶어졌다. 여행하면서 많은 글을 쓰고 있고 때로는 어떤 서비스에 필요한 글들을 쓰는데 쓸수록 내 길은 이 길이라는 확신이 든다. 카피라이터나 에디터가 나에게는 맞는 길인 것 같다. 지금까지 쌓아온 마케터 경력을 바탕으로 서비스에 도움 되는 글들을 많이 풀어내고 싶다. 나는 이게 내 취향이 묻어있는 커리어라고 생각한다.


계획적으로 만들어져 걸을 때마다 균일감이 느껴지는 도시를 좋아하는데(예를 들면, 바르셀로나) 뉴욕이 그런 도시다. 작은 블록들이 일정하게 늘어진 도시라 걸어 다니기 편한 도시다. 실제로 뉴욕여행을 오면 무조건 걸음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거리 위에 즐비한 가게들을 숱하게 본다.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건 다른 나라에서도 못 본 브랜드인데?'

'오 여기 컨셉 정말 명확하다. 마니아층 확고하겠는데?'

'아 여기가 미국에서 요즘 핫하다는 그 브랜드구나!'

예전에 어느 강연 영상에서 들은 적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브랜드는 그 나라에서 성공한 브랜드이지만, 미국에서 성공한 브랜드는 세계를 무대로 성공한 브랜드나 다름이 없다고 한다. 워낙 다국적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그만큼 다양한 소비자와 생산자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엄청난 물가를 충분히 견딜 거대한 자본까지. 실제로 미국에서 시작해서 머나먼 한국까지 흘러 들어온 브랜드가 많다. 심지어 오픈 하루 전부터 줄을 설 정도로.

그걸 전 세계 사업가들이 모두 아는지 뉴욕에서는 온갖 브랜드가 새로 태어나고 성장하고 절정에 달한다. 경쟁이 굉장히 치열한 도시라는 걸 한 달쯤 되어 가기만 해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데 덕분에 그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업가 정신에 관심이 생긴다. 각 브랜드들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는지 컨셉은 뭔지 양말 하나를 만들더라도 어떻게 브랜딩 해서 자기들만의 색깔을 가져가는지 등. 하다 못해 직원들 유니폼이 어떤지까지 관심 있게 보게 된다. 특히 소호 윌리엄스 버그 등 뉴욕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동네들을 가면 성수동만큼이나 컨셉 장인 같은 브랜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브랜드 매장에는 당연히 사람들이 많다. 금방 한국인의 여행 후기 속에도 등장한다. 


그 속을 한 달간 걸으면서 생각했다. '나도 내가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의 색깔을 좀 더 명확하게 만들고 몇 문장으로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게 고민해야지!' 사이드 프로젝트에 사업가 정신을 넣어본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사업에 가깝게 확장시키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업에 대한 관심이 많이 커졌다. 사부작사부작하고 있는 일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펼쳐내고 싶어졌다. 물론 아직 남은 여정이 더 길어 뭐 하나 제대로 확정 지은 건 없다. 심지어 뉴욕에서도 별다른 심경의 변화만 없다면 머문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머물 예정이니. 특히 이렇게나 다채로운 뉴욕에서 계속 지낸다면 더 많은 영감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식으로 내 프로젝트들을 정리하고 하나로 묶을지 나 또한 기대된다.

소호의 어느 풍경들

이전 뉴욕여행 때는 기간이 짧아 강렬하게 체감되는 부분이 아니었나 보다. 이 나라 사람들 인사에 굉장히 능숙하다. 한 달 동안 인사를 몇 번이나 한 건지. 뉴저지와 맨해튼을 오가는 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기사님께 '굿모닝' '땡큐'를. 계산할 때마다 '하이' '땡큐'를. 건물 경비원 아저씨와 '굿모닝' '바이'를. 여기에 온갖 사람에게 '헤브 어 굿 원'까지. 한국에서 한 5년 동안 인사한 횟수와 여기 한 달이 비등한 기분이다. 그게 처음에는 너무 적응이 안 되고 이것조차도 영어라고 미리 머릿속으로 말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가끔은 스몰 토크를 걸어오기 때문이다. 카메라 메고 버스를 탔더니 한 번은 먼저 앉아 있던 옆 자리 아저씨가 "뉴욕에 여행 왔나 보네. 햇빛도 좋고 빌딩도 멋지고 걸어 다닐 때마다 나이스 뷰야. 블라블라...."말을 길게 늘어놓으셔서 진땀 뺐다. 나중에 내릴 때 뉴욕 버스의 룰까지 알려주시더라. 뉴욕은 일어나는 대로 내리는 게 아니라 앞자리 사람들부터 차례대로 내린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앉아서 내가 앉은자리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국사람들은 답답해서 기절할 룰이다. 

'아니 이렇게 참을성 있는 사람들이 말할 때랑 운전할 때 그리고 횡단보도 건널 때는 왜 그렇게 급해진데?' 

속으로 생각했다.


뉴욕이 다 좋아도 뉴욕 사대주의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몇몇 구석에서 갑자기 급해지는 사람들의 성향들도 한몫한다. 운전할 때도 신호 바뀌자마자 0.1초 만에 출발 안 하면 바로 경적 빠아아아앙! 말할 때도 발음을 다 줄인다. 

영어 회화 늘기가 쉽지 않은 도시이기도 하다. 뉴요커들의 말은 참 빠르다. 내가 뉴요커들만큼 빠르고 완벽하게 영어로 말하지 않으면 재촉받는 것 같고 가끔은 새가슴이 된다. 14년차 뉴요커 가이드님께서도 여기서는 영어 잘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한 거라고 창피해할 필요 없단다. 말을 최대한 빨리 하려고 어떻게든 줄이는 사람들이 뉴요커들이라고 한다.

어쩔 때는 빠르고 어쩔 때는 느린 뉴욕에서 살아남은 한 달. 어느 장단에 어깨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는 뉴욕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



*2022년 뉴욕여행에 대한 리뷰는 2건에 나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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