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에 이어 새롭게 발견한 도시가 생겼다. 바로 스위스 '바젤'. 바젤은 처음부터 갈 생각이 있었던 도시는 아니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프랑스 니스로 넘어가는 방법을 며칠간 알아봤다. 은근 골머리 앓는 구간이었다. 당연히 기차가 있을 줄 알았더니 프랑스 남부로 넘어가는 건 비행기가 최선이더라. 인터라켄에서는 바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도시를 거쳐 가는 게 제일 저렴한지 비교했다. 처음에는 취리히였다가 그다음은 제네바였다가 진짜 최종이 바젤이 된 거다.
게다가 처음에는 바젤에서 하룻밤 잘 생각이 없었다. 초기 일정으로는 마지막 날, 인터라켄에서 기차를 타고 바젤SSB역에 가서 바로 공항으로 가는 거였다. 그런데 하루 만에 공항까지 하는 건 비행시간을 감안했을 때 너무 새벽같이 나와야 해서 급하게 여행하지 말자며 하루 미룬 거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예술이 일상인 도시
미술에 조금만 관심 있어도 듣게 되는 아트페어 '아트바젤'. 세계에서 가장 큰 아트페어로 스위스 바젤에서 매년 6월 열리는 아트 축제이자 박람회이자 마켓이다. 아트바젤의 시작이 바로 스위스 바젤에 있다. 세계여행 중 이뤄내고 싶은 최상위 세 가지 안에 '미술 작품 많이 보기'가 있는 여행자로서 바젤을 가게 됐다? 이런 행운은 또 없는 거다.
바젤에는 쿤스트 뮤지엄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등 많은 근현대미술관과 가고시안 등의 유명 갤러리가 곳곳에 있다. 최근 뉴욕에 있었던 여행자 눈에는 첼시의 확장판 같았다.
바젤에 머문 짧은 시간 동안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을 다녀왔다. 파운데이션이라는 말이 붙어있으면 특정 가문이 설립한 미술관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은 바이엘러 가문이 사들인 여러 컬렉션을 특별전과 함께 선보이고 있는 사립 미술관이다. 연못과 초록색 잔디가 작은 산책길을 만들고 통창 건물을 두고 있어 그 풍경을 전시 공간 안으로 들이는 동화 같은 미술관이다. 그 안에는 모네 세잔 피카소 등 세계적인 작품들이 걸려있다. 특히 미술관의 연못이 보이는 곳에 모네의 수련 두 작품을 둔 배치는 실로 놀랍다. 수련을 보고 밖을 나와 미술관 앞 연못을 보는데 또 하나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본 여러 수련 연작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났다 미술관을 나오니 날까지 짜잔~ 깨끗하게 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쨍한 햇살을 맞고 한층 더 행복해져 바젤의 여러 거리를 일부러 걷고 또 걸었다.
신기했던 점은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에서 진행 중인 제프 월 개인전 포스터가 애플 신제품 광고만큼이나 도시 곳곳에 있다는 거다.
'이렇게 미술전 광고가 주된 도시는 처음인데.'
공원마다 거리 끝마다 설치 미술 작품이 있기도 하다. 여기 현지인들은 모두 미술을 굉장히 가까운 무언가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의 특별 전시 포스터가 도시 곳곳에 가득했다
나만 알고 싶은 제2의 포르투를 발견하다
작년의 마지막 유럽 도시였던 포르투갈 포르투의 분위기는 아이보리와 노랑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도시였다. 그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외관 색깔 때문만은 아니다. 거리를 걸을 때 강을 볼 때 드는 기분의 색깔도 그랬다. 강에 떠다니는 윤슬처럼 찬란한 빛깔의 슬픔과 일몰이 일대를 물들일 때처럼 따뜻한 행복의 사이가 여행 내내 함께 했다. 작년 한 해 동안 포르투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짐작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도시가 하나 더 있었다. 2만보를 걸으면서 확신했다.
어쩐지 포르투의 모루공원을 생각나게 하는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강과 조깅하는 사람들. 가로등 앉아 사색하거나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만드는 분위기. 이 모든 걸 오감으로 흡수하다 문득 포르투갈 포르투가 떠올랐다. 아 여기 포르투다. 아직 포르투만큼 유명해지지 않은 포르투. 마테호른과 융프라우에 가려져 도시의 가치가 아직 한국 사람들에게 닿지 않은 스위스.
그렇게 바젤은 나만 알고 싶은 맛집 같은 도시가 됐다.
바젤에서 가장 따뜻한 일몰을 보고 싶다면 Wettstein Beach 공원과 Wettstein Bridge를 찾아가면 된다. 조금 걷는 걸 좋아한다면 바젤SSB역에서 도보로 이십여분 걸어서 갈 수 있다. 해 질 녘에 가까워지면 Wettstein Bridge 일대는 운동복 차림으로 열심히 뛰거나 개와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이 한데 뒤섞인다. 그 거리에 가을에 벼가 익어갈 때 나는 색깔이 입혀지면 일몰이 시작된다. 여기에 핑크빛이 들어서면 일몰 사냥 대성공! 강가 계단에 앉아 보고 있으면 일몰처럼 기분도 황홀해진다. 별이 빛나는 밤 전에 찾아온 하늘이 빛나는 저녁이다.
바젤을 여행하면서 때때로 변수는 선물이 된다는 걸 배웠다. 변수가 생겨도 당황하거나 아쉬워하지 말자. 억지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니. 완전히 맞닥뜨려 그 순간에 내가 서 있기 전에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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