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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Apr 24. 2024

주말이 되고 나서야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됐다

프랑스 아비뇽의 매력 두 가지

파리와 니스보다야 한참 모를 곳이지만, 프랑스 소도시 여행을 해본 사람들에게는 익숙할 아비뇽.

프랑스 소도시를 몇 군데 들렀다가 파리로 올라갈 생각으로 베이스캠프를 고민했는데 최종지가 아비뇽이었다. 아비뇽에 머물면서 엑상 프로방스와 아를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고 틈틈이 그리고 하루를 투자해 아비뇽 올드타운 곳곳을 여행했다. 아비뇽에 있었던 전체 시간 중 초반에 해당되는 평일에는 딱히 보고 싶은 게 없었다. 작년에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여행했는데 그 도시들과 닮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극이 필요한 장기여행자에게 아비뇽은 황토색 성벽과 유적지들이 다소 심심했다. 오히려 당일치기로 다녀온 엑상 프로방스가 더 좋아서 베이스캠프를 잘못 정했나- 생각도 잠깐 했다. 

내심 갈 수 있는 근교 도시가 많아 다행이다 생각하며 아비뇽에서 평일을 보냈다. 

그리고 주말.

스페인을 닮았다던, 그래서 조금 지루하다던 감상이 지워졌다. 아비뇽의 두 풍경을 마주하면서.


아비뇽 교황청 앞에서 현지인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음악에 맞춰 서로의 손을 잡고 돌고 있었다. 마치 한국의 강강술래처럼 둥글게 돌고 돈다. 

축제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결국 존재를 찾지 못했는데 일단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아비뇽 페스티벌'은 아니었다. 매년 7월에 열리는 아비뇽 페스티벌은 연극 축제로 전 세계 축제 마니아들이 방문하는 유명 축제다. 시기도 방문객도 축제 규모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그때는 객실 가격이 3배가량 뛰는 데도 객실 예약 자체가 전쟁통이라고 한다).  

아비뇽 페스티벌 같은 대형 축제보다 작은 마을 축제에 가까웠던 이 날의 풍경은 지극히 아비뇽의 소도시 정서와 어울리면서도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벽 없는 분위기였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원을 그리는 사람들도 입 벌리고 보고 있는 나도 웃고 있었다.

'이런 축제는 어떻게 준비되는 걸까' 궁금하면서도 현지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돋보이는 마을 축제의 좋은 사례였다. 작은 지방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특이점을 아비뇽 사람들은 스스로 찾아 실현하고 있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아비뇽 교황청 앞의 광장은 시끌벅적하다.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주축으로 만남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반가운 사람들끼리 모여 축제의 여운을 대화로 푼다.

축제를 구경하던 여행자는 그 모습이 흥미로웠다. 불어를 몰라도 충분했다. 색상도 채도도 다른 전통 의상들과 악기가 이렇게 저렇게 붙고 떨어지는 모습이 마을의 생명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축제가 끝나도 아비뇽의 주요 거리들은 한창이다. 가게 안에서 팔던 제품들을 바깥으로 뺀 풍경은 동남아 야시장을 방불케 한다. 사람도 물건도 많다. 

관광객들은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어 파르페도 먹고 옷도 사고 집에 놓을 홈스타일링 제품들도 산다. 

나 또한 가난한 세계여행자가 아니었다면 뭐라도 하나 사 먹었을 거다. 거리가 지갑을 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방방 뛰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우연히 만난 축제이니 얼마나 눈에 별이 박혔겠는가. 뵈는 게 없는 와중에 지갑을 용케 지켰다.


아비뇽에는 누군가에게는 전망대, 누군가에겐 개를 산책시키는 코스, 누군가에겐 건강을 지키기 소소한 비결인 공원이 있다. 이름은 '로쉐 데 돔 Jardin des Doms (Rocher des Doms)'. 구글맵 리뷰만 봐도 아비뇽에서 꼭 가봐야 할 장소임을 유추할 수 있다.  

로쉐 데 돔은 지그재그 완만한 오르막길을 올라야 도착할 수 있다. 그만큼 점점 더 넓은 아비뇽의 조각이 한눈에 담긴다. 여러 작은 풍경이 하나의 큰 풍경으로 합쳐지는 모습을 오르면서 볼 수 있다. 마치 이탈리아 어느 와이너리 고장을 떠올리게 하는 노란빛이 가미된 초록빛의 풍경이 이국적이면서도 평화로웠다. 많은 색이 들어있지 않아도 풍경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아비뇽의 공원은 갈 때마다 조용했다. 공원 넓이가 워낙 커서 그런지 유명세에 비해 인적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라 생각하며 여유롭게 끌리는 방향으로 걸었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즐기고 있다

아비뇽에는 강이 있다. 론강이 아비뇽 올드타운을 사악- 감싸고 있는데 사실 이 공원에 오르지 않으면 모르고 도시를 떠날 수도 있다. 그만큼 올드타운 안에서 강을 보기가 어려운데 공원에 오르면 비로소 '와!' 하며 아비뇽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지극히 잔잔해 이게 흐르고 있는 건 맞나 싶을 정도인 강가는 마치 명상하는 강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을 차분하게 울리는 싱잉볼 같다. 가만히 보고 있는 나 또한 차분해진다. 그렇게 아비뇽의 매력에 스며든다. 

그리고 확신한다. 아비뇽을 좋아하게 됐다고.


아비뇽의 첫인상은 베이스캠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뭐가 좋다고 말할 게 없는 도시.

그렇지만 어느 도시든 떠날 때까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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