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고 있는 그리스 산불이 빨리 진화되고 복구되기를 바라며.
문명의 발상지.
올림픽의 시작.
IMF와 EU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던 시간을 이제 막 지나 회복 중인 도시.
그리스는 호기심 80과 치안에 대한 걱정 20을 안고 입국했던 나라다. 필독도서 0순위였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자랐던 여행자에게 그리스는 유럽 국가 중 하나 그 이상이다. 정말 신들이 구름 뒤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는 나라.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한국에 자리 잡은 대표 종교 외 새로운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나라. 그렇게 탄생한 이탈리아 로마와는 또 다른 돌덩이의 나라.
온전히 호기심만 100을 가지고 가면 가뿐한 시작이었겠지만, 그리스에 간다고 했을 때 걱정 어린 시선도 많이 받았다. 숙박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치안이 안 좋다는 동네에 숙소를 예약하기도 했고.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깊이 잠들지 못했던 밤을 보내고 그리스 아테네로 향했다.
아테네에 도착한 첫날부터 도시 곳곳에 스며든 과거와 현재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현대적인 카페와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 한편에는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그리스 문명의 흔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테네 현지인들의 일상 속에 녹아든 흔적들은 마치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았다.
무신론자라 그런가. 아크로폴리스 · 아테네의 아고라 등 신을 향한 마음이 만들어낸 건축물들을 보고 있는 내내 신기했다. 신을 향한 마음 하나면 못 만드는 게 없는 걸까. 기계도 없어 뭐든지 이고 끌고 들고 왔을 바위 덩어리마다 견고한 믿음이 담겨 있겠지. 믿음으로 쌓아 올린 건축물은 역사 속 사건들로 훼손됐지만 위대함은 훼손되지 않았다. 현장감이 대단한 유적지들이다. 어릴 적 필독도서 속 그림이 누군가에겐 일상적인 풍경이라니.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한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서는 신비로움의 연장선이었다. 도통 예상조차 되지 않는 그리스어가 새겨진 바위를 보면서 '외국인들이 한글을 보면 그림처럼 인식된다는데 이런 느낌일까?' 흥미롭게 생각했다. 아테네와 포세이돈을 기리는 신전인 '에레크테리온' 기둥인 여신상 진품을 보면서는 조각의 디테일에 놀랐다. 땋은 머리 모양까지 완벽하게 조각한 당시 사람들의 능력치는 대체 어디까지였던 걸까. 그 밖에도 그리스인들의 삶과 정신이 담긴 토기 석상 등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을 소환했다. 고대 올림픽 발상지에서의 올림픽. 오직 아테네만이 쓸 수 있는 슬로건부터 소름 돋는다.
'Welcome Home'
수년이 지나는 동안 기술력 또한 빠르게 높아져 여러 개최국들이 더 화려한 무대를 보여주고 있지만 '올림픽의 시작'이라는 근본은 강력하고 견고하고 또 가장 빛난다. 개막식 영상을 보고 있으면 고대 그리스의 문명과 올림픽을 예술적으로 연결시킨 연출에서 이 나라가 쌓아온 역사에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개막식이 그러했듯 아테네를 여행하는 동안에도 이 나라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한때 몰락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가 이제 막 딛고 일어서고 있는 시기임에도. 아테네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끊임없이 반질반질하게 닦아가며 미래를 만들고 있다.
아크로폴리스가 저 멀리 산 위에 올려져 있는 모습이 보였던 아이올루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고대부터 쌓아온 문명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 그 진가를 알고 지켜왔기 때문에 이렇게 일어설 수 있는 게 아닐까.'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때로는 당차게 선보이고 때로는 뺏어간 문화재에 분노하는 나라의 수도를 여행하면서 긴 인생 또한 역사인데 나는 내 과거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걸 추진력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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