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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ul 17. 2024

돌덩이에 반하게 되는 나라

'김영하 작가는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피렌체를 가고 또 갔다는 작가의 말이 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전까지 이탈리아는 흥미를 주는 나라가 아니었다. 여행사에서 일하면서 너무 많은 이탈리아 정보를 봤던 탓이다. 너무 유명해서 안 가봐도 가본 것 같고 극악무도한 소매치기의 나라라고 하니 딱히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까지 보고 싶은 게 없었다. '안 봐도 그림이지'라는 말이 딱 내가 생각하는 이탈리아였다.

그러다 TV 프로그램 <알쓸신잡> 피렌체 편을 보게 됐고 존경하는 작가의 한 마디에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 정도로 가고 또 가면 무언가 있지 않을까.

몇 년 뒤, 세계여행을 떠나게 됐고 루트에 이탈리아를 넣었다.


이탈리아에서 간 도시들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여행 루트였다. 로마 - 피렌체 - 피사 - 친퀘테레 - 베니스(베네치아). 영국 런던에서 건너가 8박 9일간 여행한 이탈리아가 나에게 준 건 무엇이었을까.




거리를 걸을 때면 어린 시절 찰흙을 가지고 놀 때가 떠올랐다. 물론 보이는 건 사부작사부작 움직여 만들어낸 그것들과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길 건너 멀리서 봐야 겨우 삼분의 일쯤 보이는 콜로세움. 세계에서 가장 큰 돔으로 완성한 판테온. 도시 어디서든 둥근 지붕이 보이는 피렌체 대성당. 쓰러지겠다는 건지 어떻게든 서겠다는 건지 알쏭달쏭한 매력이 있는 피사의 사탑. 바로 앞에 있는 성만큼 아름다운 성 천사의 다리. 우직하게 맡은 바를 다 하겠다는 돌덩어리는 인간의 상상력과 기술을 만나 위대한 걸작이 된다. 쓰임을 다 하는 때가 오긴 올까 싶은 건축물 앞에 서면 찰흙을 떼어 이리저리 붙여 놓고 "짜잔~" 당당하게 외쳤던 과거의 내 모습이 민망해진다. 


모든 것의 시작은 돌덩어리다. 신발 앞 코에 부딪혀도 어떤 생각을 한 기억조차 없는, 팔꿈치에 부딪히면 아찔할 정도로 아픈 울림만 주는, 사소함의 극단에 치닫는 돌이 한 나라의 모든 것을 바꿨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에 돌이 없었다면? 이탈리아가 중동의 사막처럼 모래만 있었다면? 

건물이 지금 같지 않다면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일상도 달라졌을 거고 쓰는 물건에도 영향을 줄 거다. 그렇게 도시는 전혀 다른 곳이 된다. 시작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건물 혹은 땅에 붙어있는 각종 조각 작품들에서도 돌덩어리의 변신을 엿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특히 대리석이 널리 사용됐는데 이때 '다비드 상'과 같은 조각 작품들이 탄생되었다. 

건축물의 외벽, 기둥, 창문 등에 정교한 조각되어 붙어 있는 작고 장식적 조각들도 흔해진다. 예를 들어, 로마에서는 곳곳에서 열쇠 모양의 조각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티칸시국과 관련 있다. 성경 속 성 베드로의 열쇠로 예수가 천국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를 성 베드로에게 주는 성경 구절과 연결된다. 두 개의 열쇠가 교차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교황과 바티칸의 권위를 뜻하고 하나는 천국 하나는 땅을 의미한다. 이 문양 조각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트레비 분수'다. 2024년 올해 역대 최대 액수의 동전이 나왔다는 트레비 분수는 사진보다 입체감이 생생하게 보이는 실물이 훨씬 우아한 분수다. 고대 로마의 조각 기술 능력을 엿볼 수 있는 트레비분수에서는 치유의 신인 '히포크라테스'와 바다의 신 '오션' 등 신화적 요소도 엿볼 수 있다. 

바위 위에 집을 지어 삶의 터전으로 삼기도 했다. 푸른 지중해 곁에 있는 해안절벽을 볼 수 있는 친퀘테레가 대표적인 지역이다. 마나롤라 리오마조레 등 경사진 해안선을 따라 터를 잡은 여섯 개의 마을로 이루어진 친퀘테레는 절벽에서 보는 풍경만으로도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파도와 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무늬와 그 위에서 잘 살아보려는 마음이 담긴 창조물. 그 조합이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마을마다 갖고 있는 그림들을 한 점 한 점 실제로 보는 이색적인 미술관 여행을 할 수 있다. 


같은 바위가 주어져도 누군가는 그 위에 집을 짓고 누군가는 경기장으로 만들고 누군가는 신전을 세우는 이탈리아처럼 여행 또한 같은 나라여행해도 각자만의 감상이 있음을 배운 여행이었다.

김영하 작가가 이탈리아를 사랑하는 이유에 공감하기 위해 찾은 이탈리아였지만, 여행 끝에 얻은 이유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돌덩이로 만들어진 이 나라가 마음에 든다. 유럽의 대표적인 관광국가 중 하나인 것 이상으로 간직한 게 많은 나라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창의력과 기술력. 때로는 종교에 대한 믿음. 때로는 처절함이 땅에 건물에 조각에 담겨있다. 그 이야기들은 돌덩이만큼 단단한 역사가 되어 수백 수천 년 뒤인 지금도 자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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