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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Aug 27. 2024

여행도 마무리가 중요한 이유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퇴사할 때야'

나올 때까지 성실하게 마무리하고 잘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나오느냐는 관계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했지만, 회사에 대한 기억을 결정짓는 마지막 붓칠이기도 했다. 백날 열심히 그려도 마지막 붓칠을 대충 찍- 그어버리면 작품 전체에 결점이 생긴다. 회사에 퇴사 의사를 전하고 마지막 출근 날 짐을 챙겨 떠나는 순간까지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 웃으며 안녕하면 두고두고 그 회사를 다녔던 시절은 뜻깊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지막이 중요한 건 비단 회사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여행에서조차 마지막이 중요하더라.


2015년에 처음으로 튀르키예를 여행했다. 튀르키예는 대체로 한국에 우호적이지만 유럽 국가치고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체감되는 치안이 불안정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을 좋아하는 현지인들과 웃을 수 있는 추억을 쌓았고, 유럽인데 유럽 같지 않은 풍경들에 실컷 감탄했다. 이스탄불에서 유명한 고등어 케밥과 자꾸 나를 놀리는 튀르키예식 아이스크림도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맛이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어 이번에는 스탑오버로 여행하는 거지만 다음에는 제대로 여행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9년 뒤, 튀르키예로 이름이 바뀐 땅을 다시 한번 밟았다. 스탑오버가 아닌 목적지로.

카파도키아(카이세리)와 이스탄불을 두 도시를 여행하고 요르단으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카이세리에서 이스탄불 가는 비행편을 다음 달 항공편으로 잘못 사서 당황했어도 여행 중에는 어느 것 하나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한 없이 친절하고 잘 웃는 현지인들. 현지인만큼 많은 것 같은 애교 많은 길고양이와 들개. 여기가 진짜 유럽으로 분류되는 게 맞는 걸까 여전히 신기한 흙빛 풍경들. 중동여행이 벌써 시작된 것 같은 사원들. 다른 나라에서는 먹을 수 있을까 싶은 마트 과자들과 케밥들까지. 참 이상하고 신비로운 나라에 대한 애정이 차곡차곡 쌓였다. 트램을 제외하면 현대적이고 편안한 컨디션이 어디에도 없었지만, 꼭 현대적인 것만이 최상은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준 곳이었다.

수많은 동굴과 뾰족한 산을 보고 아침마다 튀르키예 스타일의 조식을 먹었다. 특히 조식들은 잊을 수가 없다. 갓 구운 것 같은 폭신한 빵과 얇은 계란프라이, 온갖 잼과 치즈와 꿀, 소시지, 올리브의 나라 아니랄까봐 꼭 등장하는 올리브 몇 알. 여기에 튀르키예식 티까지. 원래 아침부터 고기도 굽는 집 딸인데 돈 아낀다고 마트에서 빵 한 두 개만 사 먹던 장기여행자는 반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하고 풍성한 한 상차림에 아침마다 조식시간 맞춰서 부지런히 눈을 떴다. 한국에서도 이런 구성으로 한 번 한 끼 식사를 만들어 보고 싶어 했을 정도로 어느 호스텔에서나 흡사한 구성과 모습으로 조식을 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가 방심했던 걸까. 아니면 튀르키예가 방심했던 걸까. 좋기만 했던 나라가 꼴도 보기 싫어진 여행 마지막 공항 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때문이다. 

마지막 날 아침, 조식을 먹으러 일층 리셉션을 지나 조식당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숙소 사장님이 말을 걸었다.

"오늘 체크아웃하지?"

"응!"

"오늘 대중교통이 스탑되는 날이야"

"??? 왜?"

"오늘 근로자의 날인데 이스탄불에 큰 시위가 열려. 그래서 도시의 모든 대중교통이 멈춰"

아니 오전에 공항 가야 하는데 무슨 소리야. 사고 정지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난 어떻게 공항까지 갈 수 있어?"

"오늘 너 이동하면 위험해. 방법은 찾아볼게. 아침 식사하고 이따 리셉션으로 와"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조식이 무슨 맛인지도 몰랐다.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일정이고 이스탄불 시내에서 튀르키예 국제공항까지는 절대 도보로도 갈 수 없는 거리이기 때문에 운송 수단이 없으면 비행기 자체를 못 탄다. 유럽여행 카페에 문의 글도 올려보고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여행자의 후기가 있을까 싶어 검색도 해봤지만 이 일은 내가 최초로 겪는 건지 관련된 정보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예정보다 한 시간은 빠르게 체크아웃을 했다. 숙소 사장님은 다른 방법은 없고 택시를 타야 한다고 했다. 택시라도 중간에서 예약해 주면 좋을 텐데 이제 와서 사장님은 도리가 없다는 듯 체크아웃 외에는 별 도움을 주지 않았다. 

현지인의 도움이 없는 게 얼마나 난처한 일이냐면 튀르키예 택시는 사기가 빈번하다. 우버 앱이 있지만 우버로 불러도 막상 오면 우버 끄고 몇 배의 가격을 부른다. 실제로 그랬다. 우버로 잡을 때마다 메시지로 몇 배의 가격을 불러 흥정을 시도했다. 눈앞에 와도 달러로 훨씬 많은 금액을 불렀다. 대중교통이 멈춘 상황에 기사들이 신이 났더라. 아무리 애원하고 흥정을 시도해도 그냥 가면 갔지 절대 자신들이 원하는 금액 이하로는 해주지 않았다. 싫어? 그럼 너 공항 못 가. 딱 이 자세로 단합한 택시 기사들이었다.

일찍 나온 게 무색하게 두 시간을 택시를 잡기 시작한 그 자리에서 흘려보냈다. 택시는 족히 열 대는 보냈다. 비행기를 놓칠까 봐 초조해서 곧 울상을 지었다.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우버 가격으로 가는 건 포기하고 택시 기사가 부르는 달러 가격의 2/3 가격으로 흥정해서 공항에 갔다. 다 됐다고 생각했다. 공항에 도착해 결제할 카드를 줬더니 승인이 안 된다며 다른 카드를 요구하길래 휴대폰으로 승인이 안 떨어진 걸 확인 후 다른 신용카드를 줬다. 이것도 승인이 안 된다면서 소액으로 나눠서 결제해 보겠다고 그러더니 여러 번 결제를 했고 이제 됐다면서 카드를 돌려줬다. 

비행기 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일단 영수증만 받고 짐만 잘 챙겼는지 다시 한번 확인 후 후다닥 공항으로 뛰어 들어가 확인했는데 결제된 리라를 달러로 환산해 보니 원래 흥정한 가격의 2배 이상을 결제한 거다. 택시 사기를 우려했는데 최선을 다해 흥정했는데도 사기를 당해 흥정을 안 하고 오히려 덤터기를 쓰인 격이 됐다. 곱씹을수록 화가 났다. 

'이 사람들 좋게 봤는데 사기를 쳐? 형제의 나라라면서 그렇게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할 때는 언제고 뒤통수를 치냐.' 

터키 사람들에 대한 호감도가 택시 기사 한 명 때문에 마이너스가 됐다. 너무 싫다 진짜. 어떻게 세계여행 경비를 모았고 어떻게 아끼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모든 노력을 택시 기사 한 명이 날렸다는 생각에 피로도가 확 몰려왔다. 이놈의 나라 다시는 오나 봐라 씩씩 대다가 공항에서 노트북을 분실한 건 내 불찰이지만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9년 전 다음을 기약했고 9년 후 그대로라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마지막 몇 시간이 이전의 모든 감상을 밥상을 엎듯이 뒤집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는 튀르키예가 별로 좋지 않다. 시작도 과정도 좋았지만 이만하면 됐다. 미련도 없고 좋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출장 기회가 생기지 않는 이상 다시는 터키를 여행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우리 즐거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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