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아드리아해의 진주
터키 카파도키아 여행 중 현지 투어를 예약했다. 오랜만에 언어에 대한 불편함도 직접 알아보며 다니는 수고로움도 훌훌 털어낼 요량이었다.
투어 일행 중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님과 대화를 하게 되면서 세계여행을 다니고 있고 미주와 유럽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더니 으레 세계여행자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 날아왔다.
"지금까지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이미 여행지에 순위를 매기지 않기로 해서 잘 모르겠다고 말하려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어 살짝 방향을 튼 대답을 했다.
"음...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런데 유럽 중에서는 크로아티아가 가장 좋았어요!"
세계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와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세계여행 1위 도시는 모르겠지만, 유럽 안에서는 크로아티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이러니한 건 세계여행 이전에도 크로아티아를 늘 추천하고 다녔다. 크로아티아를 다녀온 뒤에도 체코 헝가리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을 다녀왔지만 변함이 없었다.
난 무엇 때문에 크로아티아를 그토록 애정하는 걸까.
크로아티아만의 색깔
크로아티아를 여행할 때면 컬러칩을 수집하는 기분이다. '이런 색깔이 있다니!' 감탄하며 하나씩 눈으로 줍고 카메라 렌즈를 통해 줍는다. 어느 색 하나 흔한 색이 없었다. 주황색에 상아색을 살짝 섞은 듯한 지붕과 갈색에 빨간색을 살짝 떨어뜨린 낮은 채도의 붉은 지붕의 조합은 그림책에서도 본 적 없는 동화 마을이다. 크로아티아 어디서든 전망 보기 좋은 곳에 오르면 명량한 빨간 머리 앤이 떠오른다.
인간이 가장 살기 좋은 기후라는 지중해 기후를 갖고 있는 나라의 색은 언제나 테두리가 선명하다. 상시 많은 빛이 떨어지고 해가 지면 한국의 초가을 날씨처럼 선선한 적당함을 아는 크로아티아의 날씨는 풍경에 선을 그린다. 그렇게 크로아티아는 거대한 미술관이 된다.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종류도 다양하다.
도시와 자연 사이
'대자연도 보고 싶고 거리도 거닐고 싶고 대중교통이 편했으면 좋겠어요'
도시도 자연도 놓치기 싫은 사람들에게 크로아티아는 만족할 선택지다. 차브타트나 두브로브니크에서 바다에 첨벙 뛰어들고 플리트비체의 깊고 푸른 모습에 감탄하고 버스로 원하는 도시 어디든 찾아가고 반질반질한 돌길 위를 걸으며 끌리는 가게가 보이면 호기심 어린 마음을 갖고 들어가는 여행. 할 수 있는 건 다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은 나라다.
크로아티아는 여행 취향이 만족도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나라다. 여행 스타일이 '예외 없고 무조건 도시!'를 외치는 완고한 도시파였는데, 거대한 무언가를 만나면 갖고 있던 생각이 180도 바뀌기도 10배로 확장되기도 한다.
크로아티아 자연은 맑고 투명하다. 물도 숲도 모두 불투명도가 30%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닿았어도 그 모습을 유지하는 지구의 민낯이 유독 존재감이 센 나라다.
그런 곳을 여행하면서 꼭 건물 사이를 걷는 것만이 큰 재미는 아님을 알게 됐다. 플리트비체를 걸으며 바람에 흩날리는 폭포의 물줄기를 맞는 게 마음이 간질간질한 경험이라는 걸 알게 됐다. 차브타트의 코끼리만 한 바위 위에 누워 있으면서 꼭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기분이 좋아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여행 취향은 지금도 자연보다는 도시이지만 이제는 나만의 기호로 푸른 자연이 있는 여행지를 곧잘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세계를 여행하면서 자연이 주인 나라를 곧잘 받아들인 건 크로아티아 덕분일지도 모른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하는 곳
음식의 천국이다. 꼭 이 나라 전통 음식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음식이 수준급이다. 특히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하다못해 숙소 앞에 파는 빵집 빵조차도 곡물을 아끼지 않더라. 재료를 아끼지 않는 음식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돈값을 한다. 맛있다는 이야기다.
세계여행을 하는 몇 달 동안 돈 아낀다고 빵과 맥도널드 혹은 그 정도 가격대의 음식만 사 먹다가 가족들을 만나 레스토랑이란 곳을 처음 들어갔다. 스테이크다! 생선이다! 트러플 소스다! 한식을 만났을 때만큼 반갑고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세계여행 중 유일하게 다양한 음식을 매번 경험했던 크로아티아였는데, 첫 번째 크로아티아도 이번에도 매번 새로운 음식이 메뉴판에 쓰여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고기를 생선을 면을 채소를 해석한다. 동일한 건 음식들이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도 잘 드시는 경우가 더 많으니 이쯤 되면 효도 여행지로도 합격이다. 간혹 짠 경우가 있는데 그건 뭐...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고 한식과 똑같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니까. 이참에 맥주를 사랑하는 크로아티아도 실컷 경험하는 거다.
이 밖에도 무뚝뚝한 듯 호의적인 현지인들의 태도나 지하철 기차 없어도 편리하다 느끼게 하는 교통체계 등
적어도 여행으로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세계여행자의 눈에는 완벽에 가까운 나라다. 어떻게 이 나라를 알게 되었는지. 두 번이나 다녀와도 여전히 행운이란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세 번째 크로아티아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