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계여행의 목표 세 가지 중 가장 긴 시간 이뤄내야 했던 목표.
나라별 미술관 최대한 많이 가보기.
여정이 길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목표를 잘 이뤄내고 싶어서 미술관 · 갤러리를 다 가봤다.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는 다시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인생 작품들을 많이 만났고 또 한국으로 가져왔다. 물론 실제 작품을 살 수는 없으니(그럴 돈도 없고) 사고 싶은 작품들은 엽서로 대신 구입했다.
15개국 52개 도시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구입했던 작품들을 총정리해 봤다.
앙리 마티스 <Dance 춤>
꼭 다시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Dance>는 2022년에 처음 실제로 본 작품이다. 미국 뉴욕 모마미술관(MOMA)에 있는 작품으로, 상상보다 훨씬 컸던 크기와 생명력이 느껴지는 선에 반해 마음속 일등 작품이 됐다. 사람 키보다 큰 작품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으면 그림 속 사람들이 강강술래 하듯 빙글빙글 움직이는 것 같다. 특히 가장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손이 살짝 떨어져 있는데 동작의 속도감이 느껴진다.
아직 미술에 대한 조예가 얕아 작품을 보면서 움직이는 것 같은 감상을 가져본 적이 딱 한 번밖에 없는데 그게 앙리 마티스의 Dance다.
미국 뉴욕 이후에도 유럽 중동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수많은 미술관과 갤러리를 갔는데 지금 마음속 일등 작품은 동일하다. 심지어 앙리 마티스의 다른 작품들도 많이 접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
클라리네 모네 <Nympheas 수련>
모네의 수련은 세계여행 중에 가장 많이 본 연작이다(예술가로는 피카소를 가장 많이 봤고, 작품은 수련을 가장 많이 봤다). 미국 뉴욕 모마 미술관에서 봤을 때는 세 작품이나 있었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있길래 '뉴욕에 거진 다 있구나' 생각했는데, 프랑스 파리에도 수련 연작이 여러 점 있는 게 아닌가. '오 여기가 더 많네. 파리에 다 있었구나!'
그런데 스위스 바젤에도 있네? 몇 년 전에 한국에서도 고 이건희 회장 기증전이 열려서 수련을 봤는데... 혼란스러워져 찾아보니 대표작을 제외하고도 250여 점이 있다고 한다. 30여 년간 그렸다고 해도 한 작품에 들어가는 시간부터 어마어마한테 어떻게 다 그린 건지 경이로울 따름이다. 세계인의 마음을 울릴 작품을 그리려면 그 정도 집념은 있어야 하나보다.
여러 수련 작품을 보면서 가장 사고 싶은 작품은 스위스 바젤에 있는 것이었다. 스위스 바젤 파운데이션에는 수련 작품이 두 점 있다. 하나는 공간 벽 하나를 다 채울 정도로 거대하고 하나는 그에 비해 한참 작은데 그중 200x180cm짜리 작은 수련이 유독 좋았다. 다른 수련 연작에 비해 선이 명확한 이 작품은 다른 수련 연작을 보다가 보면 다소 감동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만큼 다른 그림들에 비해 차이가 명확한 편이다.
그럼에도 가장 좋았던 첫 번째 이유는 사용한 색에 있다. 다른 수련에 비해 비교적 광도와 채도가 높은 색을 사용했는데 뭐든지 밝고 쾌활한 걸 좋아하는 취향상 시선을 오래 둘 수밖에 없다. 연보라색과 연분홍색이 밝은 연못은 밝아지는 풍경을 표현한 것만 같다. 다른 작품들을 볼 때는 비 오는 날이 연상됐는데 유일하게 맑은 날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두 번째 이유는 선이다. 미술에 취미를 두면서 알게 된 건 내가 선이 명확한 걸 좋아한다는 거다. 비교적 형태가 뚜렷하고 확실한 걸 좋아한다. 모호한 걸 싫어하는 성격에 딱 맞는 기호라고 생각하는데 수련을 볼 때도 반영된 것이다.
바젤 파운데이션 갤러리가 통창 공간에 이 수련을 둔 게 탁월한 배치라 생각했다.
빈센트 반 고흐 <Portrait of Joseph Roulin 조제프 룰랭의 초상화>
뉴욕 모마 미술관에 워낙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에>가 있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작품이다. 우체부였던 조제프 룰랭의 초상화다. 반 고흐는 아를에서 살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그렸는데 그중 한 명이 반 고흐의 담당 우체부 조제프 룰랭이다. 정확히는 조제프 룰랭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 아들의 초상화까지 그렸다고 한다. 총 삼십여 점에 달하는 초상화를 조제프 집안을 모델로 그렸다고 하니 그 당시에는 아니었더라도 현대에 와서는 엄청난 행운을 가진 집안이다.
반 고흐는 조제프 룰랭을 모델로 여러 점의 초상화를 남겼는데 그걸 찾아본 뒤에도 가장 마음에 드는 버전이다. 동화책의 어느 삽화 하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스케치가 마음에 든다. 볼터치를 바른 것 같은 볼 색깔이 뭔가 귀엽게 보이고 길고 구불구불한 붓질을 상상하게 하는 자칭 '반 고흐의 시그니처 붓터치'가 엿보이는 수염이 캐릭터를 그릴 때 적용하는 수염 모양 같다. 너털웃음 지을 것 같은 수염이랄까.
꽃무늬 벽지도 야생화를 떠오르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에드워드 호퍼 <Gas 주유소>
에드워드 호퍼 작품은 다 좋아한다. 2023년에 한국에서 에드워드 호퍼 특별전이 열렸을 때도 소원을 이룬 것 같은 기분으로 관람했다. 호퍼의 색상은 항상 화질이 낮은 카메라로 풍경을 찍은 것 같다. 직접 그린 거라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선이 없고 모든 요소가 한 번에 그려진 것 같다. 그래서 매번 감탄한다. 어떻게 이걸 그린 거지? 그리는 모습을 실제로 보고 싶은 작가 일등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 작가인 만큼 뉴욕에서도 여러 점 볼 수 있는데 주유소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뉴욕 모마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2022년에 봤던 곳에 없어서 당황했는데 그새 배치가 바뀌어 엘리베이터 맞은편까지 밀려났더라.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전시관 안에 없는 게 살짝 아쉬웠다. 작품을 찾아다니지 않았다면 못 봤을 거다.
주유소 작품을 보고 있으면 쓸쓸함 속 한 줄기의 밝음이 떠오른다. 희망적인 작품이라는 게 개인적인 감상이다. 사전적인 해석에서도 숲의 주는 우울감을 주유기를 점검하는 사람과 건물 내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안도감을 준다고 말하고 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작품은 소장 가치가 느껴진다. 이왕이면 매일을 긍정적으로 살게 하는 작품을 걸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 마음에 구입을 결심했다.
호아킨 소로야 <boys on the beach>
빛이 유형의 존재에 닿을 때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를 잘 나타낸 작품이라 생각한다. 특히 해변은 그렇다. 햇빛이 구름을 걷히지 않고 내려올 때면 체감 온도도 눈에 보이는 풍경의 온도도 올라간다. 그걸 우리는 쨍쨍이라 곧잘 표현한다.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면 boys on the beach가 아닐까. 물에 젖은 소년들의 몸에 햇빛이 닿았을 때 하얗게 보일 정도로 윤기가 나는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소로야의 그림들도 보자마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호아킨 소로야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국민 화가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빛의 움직임 중 한 장면을 포착해 완벽하게 그려내는 작가로,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 그 특징을 더욱더 확연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대표작이다. 그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소로야는 바다를 배경으로 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고향인 발렌시아에 있는 해변을 사랑했다고 한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난 뒤로 내가 애정하는 장소는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인데. 책상을 그려봐야 하나.
두고두고 아쉬운 게 마드리드에 소로야 미술관이 있는데 존재를 몰라서 못 갔다는 거다. 으휴 바보야.
작자 미상 <Mona Lisa 모나리자>
프라도 미술관에도 모나리자가 있었다.
도슨트를 듣지 않았으면 두 번째 미술관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몰랐을 거다.
2012년, 작자 미상의 모나리자 작품이 스페인에서 발견됐다. 당시에 미술 세계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몰랐지만 아마 발견됐을 때 미술계가 떠들썩했을 거다. 세계 그 어떤 미술관에서도 작품 앞에 그렇게 많은 관람객이 모여있는 걸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림 한 점 보기가 성수기 놀이공원 대기하는 것만큼 긴 인내가 필요하다. 그런 작품이 한 점 더 발견됐다니. 이제 와서 새삼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작품은 다빈치의 제자가 그린 것이라는 게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와 크기가 같고 얼굴은 원작보다 우아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원작이 나이 들어 보이는 건 표면에 금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색채도 비교적 화려하다. 원작보다 보존이 잘 된 작품이라는 걸 실제로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이건 작품이 취향이라기보단 놀랐던 당시의 감정을 잊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존재를 깜빡하고 싶지 않아서 구입했다.
'나중에 들고 가서 원작이랑 비교해 봐야지!' 했는데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원작 앞에 사람이 보통 많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Las Meninas 라스 메니나>
그림은 단면 하나인데 그 안에 스토리가 다 녹여져 감탄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귀족이 되고 싶은 열등감이 있었던 작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이 그린 왕실의 풍경이다. 가운데 마르가리타 공주를 중심으로 시녀들을 그림에 함께 넣어 그림을 그리는 당시의 모습을 넓은 시야로 담아냈다.
그림이 말하는 재미있는 몇 가지 사실은 왼쪽에 있는 기사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라는 점과, 벽에 걸려있는 거울에 비친 인물이 왕과 왕비라는 점이다. 왕과 왕비가 한 공간에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본인을 공주 옆에 그려 넣은 것도 신기한 부분인데 귀족이 아닌데도 기사단 옷을 입고 있다. 이는 귀족이 되고 싶은 작가의 열등감이 표현된 것이다.
작품을 볼 때 장면이 바로 그려지는 이유는 구도에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의 위치가 우리가 실제 인물을 볼 때의 시선 위치와 동일하다. 공간 안에서 공주와 시녀를 실제로 본다면 그림과 동일한 위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작품을 볼 때 이렇게까지 계산적으로 감상하는 편은 아니지만, 도슨트를 들으면서 가장 '오호라!' 했던 부분이라 잊고 싶지 않아서 구입했다.
파블로 피카소 <Guernica 베로니카>
2차 세계대전이 세상을 얼마나 뒤흔들었는지 선명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너무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이지만 사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심드렁했다.
역시 뭐든지 실제로 봐야 한다. 작품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단번에 충격받고 반한 작품이다. 평화로운 농가에 갑자기 폭탄이 떨어져 도망치는 사람들의 표정. 고통에 울부짖는 생명들. 그런 아픔 속에서도 횃불을 들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거대한 작품의 크기에 비례하는 요소 하나하나의 표현이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위대한 작품이라는 게 이래서 위대하다는 거구나 바로 알 수 있었던 작품이다.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본 게 피카소 작품이었는데 가장 압도하는 작품이었다.
본래 사진촬영이 불가했던 공간인데 방문했을 때부터 사진 촬영이 가능해져서 운 좋게 인증샷도 남길 수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 <LE DOMAINE D'ARNHEIN>
세계여행을 하면서 여행을 한 장면으로 설명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세계여행을 대하는 내 감정을 한 장면으로 설명하고 싶었다. 그림을 많이 보면서 여행하다 보니 그런 욕구가 있었는데 르네 마그리트 박물관에서 그 장면을 만났다.
보자마자 '개와 늑대의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나는 언제나 달걀이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달걀. 그래서 때로는 위태로운 달걀.
여행하면서 보는 세상은 언제나 거대했다. 때로는 멋있고 때로는 두려운. 그래서 이게 나를 덮쳐 깨뜨리려고 하는 건지 그저 절경으로 다가오려는 건지 항상 조심스러웠다.
그 생각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라 생각했다.
세계여행을 다 마치고 온 지금도 이 작품을 볼 때마다 기가 막힌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그림도 이보다 나의 세계여행을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거다. 그렇게 나에게 아주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 됐다.
산드라 보티첼리 <Primavera 봄>
무려 140여 종의 야생화가 그려져 있다는 작품. '봄'이다. 보티첼리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그림 앞에는 당연히 많은 관람객들이 모여있었다.
그럼에도 실제가 훨씬 아름답다며 감탄했는데 비너스 등의 인물보다 주변에 있는 야생화과 열매들 때문이다. 숲 속의 어두움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는지. 꽃과 열매가 그림에 주는 힘이 대단하다.
아주 단순하지만 강렬한 감정 하나로 이 작품을 구입했다.
'와 아름답다. 이건 정말 봄이다'
위고 가토니 <2024 파리 올림픽 포스터>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부터 이미 꼭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림을 결국 샀다. 본래 포스터는 위 사진과 같이 한 장의 그림이지만, 판매용은 반으로 잘라 두 장을 사야만 하나의 완전체 그림이 나오게끔 판매하고 있다. 두 장을 다 구입하기에는 예산상 이슈가 있어 에펠탑이 있는 왼쪽 포스터만 구입해서 한국으로 가져왔다.
2024 파리 올림픽 포스터는 에르메르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위고 가토니 Ugo Gattoni' 작품이다. 에르메르와 협업하여 그린 히포폴리스 스카프 디자인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작가다.
위고 가토니는 꿈속에서 봤거나 신화적인 요소를 주제로 그림을 그려내는 작가다. 색채 또한 이런 주제와 잘 어울리는 구름 위 세계를 연상하게 하는 부드럽고 연한 색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번 파리 올림픽 포스터에서도 작가만이 가진 색깔이 잘 드러난다.
평소 엄청난 디테일로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답게 이번 2024 파리 올림픽 포스터에도 여러 요소들이 많이 들어 있다. 파리 올림픽 마스코트가 여기저기 관중 중 한 사람으로 있기도 하고, 새로 추가된 종목들의 경기 모습도 숨겨져 있다. 이번에 새로 나온 파리 올림픽 메달도 그려져 있다. 다가오는 파리 올림픽의 특징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시의성면에서 한정판이기도 하고 위고 가토니의 디테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비싸도 사야겠다-싶어 공식 스토어에서 구입했다. 이 정도의 디테일을 가지려면 일단 성격 급한 걸 고쳐야 하는데...
<계속해서 작품을 구입하고 끝끝내 미술 경매에 참여하고싶은 윤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editor_hyeon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