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도 꼰대가 될 수 있다

by 뚜벅이는 윤슬

여행이 시야를 넓혀준다는 말은 오래된 속담과 같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규범이 있고 그 속에는 살던 곳에는 없는 채소 과일 과자 공연 대중교통 바다 숲 절벽 스포츠 브랜드 등이 빼곡하다. 모든 것들이 아이디어이자 레퍼런스이자 배울 점이자 전환점이자 경계를 부수는 망치다. 여행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성큼성큼 넓어진다.

그러나 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해서 누구나 높고 넓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이십 대까지만 해도 100% 비례하는 법칙인 줄 알았지만, 나이를 먹고 세계여행을 다니고 여행업에 종사하고 출장 빈도가 높아지고 자유여행 횟수가 늘어나고 여러 여행자들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냐가 더 중요하구나. 자신이 경험한 것만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세상을 부정적인 마음으로 비꼬아 보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구나.

때때로 자신의 감상을 강요하거나 부정적으로 단정 짓는 여행자들을 만난다. 남미 등 모험적인 나라를 가지 않으면 여행한 게 아니라는 사람. 제주도는 대중교통으로 여행할 곳이 못 된다는 사람. 일본은 한국과 비슷해서 별로라고 말하는 사람. 스페인에서 이걸 안 하고 왔냐며 여행을 허투루 했다 말하는 사람 등. 여행에 계급을, 여행지에 정답을 만들어 강요한다.

겉으로는 어색하게 웃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여행 꼰대'라는 그룹에 넣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되새긴다. 세상을 담는 그릇은 여행 횟수를 늘린다고 무조건 넓어지는 게 아니다. 절대 여행 꼰대가 되지 말자.


여행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것에 크게 만족하고 또 감동하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안 했으면 어쩔 뻔했냐' 수십 수백 번이고 하이라이트라 말할 수 있다. 나 또한 시드니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한 게, 스키니진을 입고 북한산 정상에 오른 게, 등산도 제대로 안 해 봤으면서 한라산 백록담을 찍고 온 게, 요르단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낸 걸 죽을 때까지 뿌듯해할 생각이다. 놀라운 경험은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누군가 그 여행지에서 동일한 경험을 안 했다고 '엥?'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삶의 방식은 셀 수 없다. 옳고 그름도 따질 수 없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게 아니다. 여행자라면 오히려 나와는 다른 여행을 즐기고 온 상대방의 여행에 호기심을 느껴야 한다. 오, 그건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야? 어떻게 다녀왔어? 어떻게 생겼어? 해보니까 어땠어? 무슨 맛이야? 그렇게 다녀온 곳이지만 또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 여행지를 깊이 있게 경험하는 게 맞는 순서라 생각한다.


여행지를 부정적으로 대하는 태도도 경계한다. 볼 게 없거나 치안이 안 좋거나 한국과 비슷하거나 본인이 그 도시에서 안 좋은 경험을 했거나. 특정 여행지를 '거기 별로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이 중 하나다. 여행은 변수로 가득하고 가기 전까지 알 수 없으니 예상과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이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나 또한 튀르키예 여행 끝이 안 좋았다. 대대적인 시위로 도시 내 대중교통이 올스탑되면서 모든 택시 기사님들이 다 사기를 치기 시작해 당시에 공항을 가야 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택시 사기를 제대로 경험했다.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는데 우버로 부른 택시기사들은 다 10배가량의 가격을 부르며 안 내면 출발 안 한다고 하는 대환장 에피소드다. 몇 시간의 당황스러움과 분노 때문에 정신이 하얘져 공항에서 노트북까지 잃어버렸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날에 와르르 쌓았던 모든 정이 다 무너졌다. 당시에는 즐거웠고 이제 다시 보지 말자고 생각했을 정도이니 나 또한 별로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에피소드가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일출 시간에 본 카파도키아 열기구, 두 번째라 더 반가웠던 이스탄불, 배부르게 먹는 튀르키예만의 조식 문화, 퍽퍽한 듯 고소한 튀르키예의 길거리 빵들이 그립다. 다신 보지 말자고 말했던 건 튀르키예가 아니라, 하필 시위하는 날에 비행기를 타야 했던 타이밍이다. 당연히 튀르키예를 또 갈 의향이 있다. 아니 가고 싶다. 같은 상황이 또 오면 조금 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캐리어에 넣고 튀르키예의 새로운 매력들을 당차게 발견하고 싶다.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던 스페인에도 걷다가 총소리를 들었다. 뉴욕에 있는 동안 자주 걷는 길에서 총기 사고가 일어났다. 요르단에서는 구걸하는 아이들이 언제나 따라붙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현지인들이 대놓고 인종 비하 발언을 내뱉으며 지나갔다. 일본에서는 술 취한 젊은 남자가 오더니 몸을 치대고 웃으면서 지나갔다. 에피소드를 기준으로 전체를 판단했다면 지금쯤 난 모든 나라를 싫어하고 있을 거다. 여행하는 삶이고 뭐고 때려치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살고 있는 한국도 한국인도 다 싫어하고 있을지도. 자극적인 소재만 뽑은 뉴스 기사 몇 건을 두고 나라 전체가 이 모양이라고 하기 딱 좋은 시야일 테니.

내 기분 안 좋았던 에피소드 몇 개가 이곳의 전부라고 판단하고 "아, 거기 별로야" 부정할 자격이 고작 여행자인 나에겐 없다. 그저 내가 갔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에피소드 그대로를 전하는 것까지. 딱 거기까지가 세상이 여행자에게 허락한 권한이다. 지나고 보면 또 그런 에피소드가 미화되기도 한다. 그런 일이 있었지 껄껄. 소재로 실컷 써먹을 테야 껄껄.

한국과 비슷해서 별로다, 라며 반복해서 특정 국가를 말하는 여행자들이 과연 모든 걸 다 보고 듣고 몸소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보고 그렇게 말한 것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나라의 모든 지역과 마을을 다 가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대체로 한국과 비슷해서 별로였다고 말하는 여행자들이 다녀온 여행 기간은 3주 미만이다. 거기 사는 사람도 그곳을 100% 다 안다 말할 수 없는데, 그게 세상이고 인간의 한계인데, 어떻게 몇 번 여행 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여행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이 여행자로서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목표다. 오만 가지 도시들을 다 가보게 되더라도 절대 내 경험과 감상을 정답으로 여기지 말자. 때때로 실수하더라도 고쳐 잡고 지구 앞에, 여행이라는 선물 앞에 겸손한 인간이 되자. 그래서 여행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성큼성큼 넓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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