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지순례'가 인기 테마 여행 주제 중 하나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맛집 탐방을 넘어 특별한 빵과 디저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한 것이다. 유명 빵집들을 중심으로 여행하는 빵지순례 여행지는 대한민국 곳곳에 있다. 그중 호두과자로 유명한 천안 또한 빵지순례 여행지로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일부 매장은 오픈 시간에 맞춰 달려가는 일명 '오픈런'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화제다. 달콤한 빵에 곧잘 눈이 돌아가는 빵수니라면 주목할 만하다. 올해 여행 버킷리스트에 꼭 넣어야 할 천안의 빵집과 디저트 카페 네 곳을 소개한다.
뚜쥬르 빵돌가마마을
천안에 빵 마을이 있다? 호빗마을 컨셉으로 높이가 낮고 귀여운 집들로 이루어진 뚜쥬르 빵돌가마마을은 이름처럼 빵집보다는 빵 '마을'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각 건물별로 케이크 전용 매장, 거북이빵 전용 판매점, 역사관, 어린이 베이커리 등 주제가 뚜렷하게 나뉘어 있어 마을 속을 거닐며 빵 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본관이라 할 수 있는 베이커리 안에는 수십 가지 빵이 가득하다. 여러 종류의 식빵과 명란 소금빵, 조각 피자, 천안 통밀빵, 고르곤졸라 바게트, 매콤피자소세지, 마법의 옥수수빵, 단호박 카스텔라, 까눌레 등 재료도 모양도 종류도 다양한 빵들이 진열되어 있다. '적당히 사야지'라고 다짐하며 들어온 여행자를 멋쩍게 만들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한가득이다. 결국 쇼핑백 가득 빵을 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뚜쥬르 빵돌가마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빵은 '돌가마 만주'와 '거북이빵'이다. 돌가마 만주는 실제로 돌가마에서 구운 만주다. 겉은 페이스트리 스타일이라 바삭하고 속은 국산 팥으로 가득 채워진 주먹만 한 크기다. 부드러우면서도 안에 들어간 견과류 덕분에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팥도 뚜쥬르에서 직접 끓인 팥이라고 하니 이래저래 먹어야 할 이유로 똘똘 뭉친 만주다.
거북이빵은 이름 그대로 거북이 모양을 한 빵이다. 수제 우유버터를 넣은 반죽에 크림을 올려 굽는 거북이빵은 겉은 얇고 바삭하며 속은 폭신하다. 고소한 버터 풍미가 강한 거북이빵은 천연 효모를 14시간 이상 저온 발효해서 만든다. '느리게, 더 느리게'라는 컨셉에서 거북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느린 발효가 만들어내는 깊은 맛을 경험할 수 있다.
뚜쥬르 빵돌가마마을은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하는 뚜벅이 여행자들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천안역에서 뚜쥬르 돌가마마을로 가는 버스가 여러 대 있으니 참고하자.
카페 카린
천안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개인 카페 카린. 규모는 작지만 디저트 맛과 분위기는 힘이 세다.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목재 가구와 오브제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깊은 색감의 원목 책장과 대형 스피커다.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은 독서에 방해되지 않는 정도의 편안한 선율이다. 공간 또한 독서와 대화를 동시에 허용하는 밀도로 구성되어 있다. 벽면을 따라 놓인 책장과 테이블, 서로 다른 형태의 목재 의자들이 안정적인 균형을 이룬다. 한쪽 테이블에서는 조용히 노트를 펼친 손님이, 다른 쪽에서는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카린의 인기 빵 메뉴는 '후르츠산도'다. 카린은 일본식 베이커리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데 반죽부터 직접 만든 탕종 식빵을 사용한다. 후르츠산도를 판매하는 카페들은 간간이 볼 수 있는데 식빵까지 직접 만드는 곳은 흔치 않으니 인기 메뉴가 될 만한 포인트다. 생크림과 딸기, 체리, 망고 등 계절별 제철 과일을 올려 만드는 후르츠산도는 과일에 따라 종류가 여러 가지다. 처음 방문한다면 여러 종류의 과일이 들어 있는 후르츠산도를 택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과일이 신선하고 크기가 커서 상큼하고 달달한 맛을 부족함 없이 느낄 수 있다. 생크림도 부드럽고 많이 달지 않아서 과일과 잘 어울린다. 일본 후르츠산도 맛집에서 먹었던 맛과 흡사해서 신기할 정도다. 뒷맛이 깔끔한 후르츠산도는 함께 마시는 홍차 본연의 맛을 방해하지 않는다.
카린은 사진으로 소비되는 카페라기보다 직접 앉아 시간을 보내며 비로소 완성되는 공간이다. 천안이라는 도시 안에서 이 카페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속도로 공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머물고 떠나는 곳이 아닌, 잠시 속도를 늦추고 생각을 정리하기에 적합한 장소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카린은 목적지보다, 일정 사이에 꼭 끼워 넣고 싶은 쉼표에 가깝다.
할머니학화호두과자
천안 여행에 호두과자가 빠지면 섭섭하다. 빵지순례라면 더 놓칠 수 없는 호두과자의 원조는 할머니학화호두과자다. 1934에 시작된 할머니학화호두과자는 ‘안하면 호두과자’라는 공식을 만든 곳이다.
본점은 천안종합버스터미널 인근에 있다. 오전부터 길가에 잠시 차를 정차하고 박스로 구매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천안 필수 기념품’ 역할을 여전히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도 많은 사실, 호두과자는 낱개로 구매할 때만 갓 나온 호두과자를 먹을 수 있다. 박스는 사전에 포장되어 있는 호두과자지만, 낱개로 구매하면 종이 봉투에 수량만큼 따뜻한 호두과자가 담겨 나온다. 가장 맛있는 상태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천안 여행 중에는 꼭 낱개로 먹어보자. 부드러운 팥이 가득한 동그란 호두 모양의 빵이 겉보기에는 익숙하지만 먹어보면 가득 들은 팥의 적당한 당도와 얇은 밀가루 반죽의 적당한 단단함이 완벽하다.
카페 블렌데렌
카페 카린에서 도보 10분 거리에는 치즈케이크와 밀크티가 유명한 카페가 있다. 2층까지 있는 카페 블렌데렌에서는 수제 치즈케이크와 진하게 우린 홍차와 우유가 어우러진 밀크티로 빵지순례에 향긋함을 더할 수 있다. 특히 좌석이 많은 2층에는 직사각형으로 기다란 창이 있는데, 창을 따라 길게 드리운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와 공간이 한껏 따뜻해진다. 인테리어에 한 감각하는 사장님의 선택으로 완성된 의자와 테이블 구성은 의외의 볼거리다. 모두 다른 형태와 질감의 가구들이지만 잘 어울리는 세트처럼 조화롭다.
밀크티는 마니아층이 두터운 음료인데 생각보다 밀크티에 진심인 카페는 많지 않다. 그래서 카페 블렌데렌에 적혀 있는 두 종류의 밀크티가 특별하다. 로열 밀크티와 차이 밀크티를 따로 두고 있다는 점이 반갑다. 차이 밀크티는 차이 티 특유의 시나몬 향이 있어 기호에 맞게 메뉴를 고르면 된다(차이 밀크티는 재고에 따라 선택할 수 없는 날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자). 로열 밀크티는 여느 밀크티보다 홍차 향과 맛이 뚜렷해 전문성이 느껴진다. 여기가 보통 밀크티 맛집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다. 빵을 계속 먹어와서 물릴 때면 단독으로 마셔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특유의 맛이 있다.
만약 조각 케이크를 곁들일 수 있다면 '치즈케이크'를 꼭 먹어보자. 치즈 비율이 높아 전체가 치즈 덩어리 같은 블렌데렌의 치즈케이크는 촉촉한 무스에 가까운 질감이다. 당도도 달지 않아서 어른 입맛에도 만족스러운 맛이다. 치즈케이크는 사전에 주문하면 홀케이크로도 픽업할 수 있다.
*해당 글은 <스위트 SWITE> 매거진 3월호에 기고한 글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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