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아산 여행

by 뚜벅이는 윤슬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이 둘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쓴 '평온을 위한 기도'의 한 구절이다. 인생에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있고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분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의 한 줄 문장은 건축물을 볼 때도 떠오른다. 땅 위(또는 땅 속)에 짓는 것 또한 땅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성질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성질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위에 적합한 방식으로 상상력과 논리를 쌓아 올린다. 그렇게 거대하고 입체적인 예술 작품이 땅 위에 태어난다. 2025-26년 ‘충남 방문의 해’를 맞이한 아산은 바로 그런 건축의 지혜가 빛나는 곳이다. 전통 한옥부터 근대 성당, 현대 건축까지 각기 다른 시대가 땅과 맺은 관계를 보여주는 다섯 곳의 건축 여행지를 소개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공세리 성당

2005년 한국관광공사 주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에 선정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언젠가 꼭 가 봐야지, 생각하게 되는 성당. 공세리성당은 성지순례자 외에도 많은 여행자들의 국내 여행 버킷리스트에 포함된 곳이다.
조용한 인주면 마을에 지어진 공세리성당은 입구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전철 온양온천 역에서 버스를 타고도 찾아갈 수 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갈색 벽돌 건물의 공세리성당은 주변 나무들과 어우러져 동화 속에 등장할 법한 모습으로 여행자 혹은 성지순례자들을 맞이한다. 견고하게 쌓아 올려 지어진 성당은 뾰족한 첨탑과 장식이 더해져 끝이 뾰족한 별을 닮았다. 존재감을 반짝 빛내고 있는 성당 주변에는 네 그루의 국가 보호수가 있는데 무려 350년 이상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꾸준한 풍경의 가치는 널리 퍼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명소로로 이어지고 있다.
성당 앞에서 마을 방향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산의 일부를 넓은 시야로 조망할 수 있다. 낮은 지붕들이 이루고 있는 소박한 마을의 풍경은 국내 소도시 여행의 재미를 일깨워준다.
공세리성당은 박해기 이후 세워진 충청도 최초의 본당이라 종교적으로도 그 가치가 크다. 천주교회 역사의 중심지로 언급되는 곳인 만큼 순례자를 위한 미사 시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성당 옆으로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길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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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상을 수상한 저수지뷰 카페, 아레피

공세리성당처럼 촬영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 카페 ‘아레피(Aleffee)’. 영인저수지의 잔잔함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다. 어떤 모양이라고 규정하기 어렵게 다양한 방향으로 이리저리 뻗어 있는 모양이 이색적이다. 카페 아레피는 이덤도시건축(IDMM Architects)의 곽희수 건축가가 설계한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건축상과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이니 건축미만 두고도 충분한 호기심을 부른다. 노출콘크리트와 농업용 저수지인 영인저수지를 한데 묶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오션뷰 못지않은 전망을 건축물 안으로 끌어 들였다. 차경(借景) 기법으로 모든 좌석과 동선이 저수지를 향해 개방되어 있고 대형 파노라마 유리창으로 내부 어디서든 영인저수지와 그 뒤에 있는 영인산을 모두 바라볼 수 있다.
600평 규모의 카페는 3층까지 있고, 그 안에는 온돌 평상과 비즈니스룸이 마련되어 있는데 담요가 차곡차곡 정리되어 제공되고 있는 모습은 겨울 여행 중 가기에 특히 편안한 곳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
카야 버터 소금빵, 여러 맛의 마들렌, 크로와상, 에그타르트, 뺑오쇼콜라 등 다양한 빵과 더불어 엔초비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우삼겹 깻잎 오일파스타, BBQ 세트, 샐러드 등 식사 메뉴도 함께 판매하고 있으니 맛있는 건축 여행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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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의 흔적을 찾아서,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과 생가, 기념관, 숲길이 한데 모여 있는 아산 현충사는 아산 시민들에게는 일상 속 공원으로 여행자에게는 역사 유적지로서 활약하고 있다. 축구장 약 80개 규모의 국가유산 유적지 안에서 가장 주요한 장소를 추린다면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과 이순신 장군 영정을 볼 수 있는 사당과 고택이다.
특히 소나무숲을 지나면 모습을 드러내는 사당은 1707년 숙종이 직접 ‘顯忠祠’ 현판을 내려 사액 사당(임금이 직접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려준 사당)이 되었다. 지붕은 한국 전통 건축에서 가장 격이 높은 팔작지붕을 사용했다.
사당에서 나와 내려다보는 소나무 숲길 풍경이 장관이다. 겨울철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 소나무들의 선이 아름다워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잘 왔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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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이 갖고 있는 자연과 역사를 담아, 온양민속박물관

낮은 담장 너머로 이어지는 돌길, 자연스레 고개를 낮추게 만드는 처마선, 그리고 전통과 현대가 조심스럽게 맞닿은 건축의 결. 온양민속박물관은 이름만 들었을 때는 박물관 건물 하나만을 떠올리게 하지만, 하나의 단지에 가깝다. 정원과 아트센터, 박물관 등이 한데 모여 있어 체험학습도 문화생활도 산책도 가능한 곳이다. 온양민속박물관은 여러 시대, 여러 건축가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먼저 박물관의 중심을 이루는 본관은 2000년대에 개관한 건물로, 김석철 건축가의 설계 작품이다. 김석철 건축가는 김중업·김수근의 계보를 잇는 건축가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박물관 본관은 인위적으로 솟아오르기보다 지형에 스며드는 방식을 택했다. 낮게 깔린 매스, 절제된 선, 주변 풍경을 끌어안는 배치. 전통을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적인 공간 감각을 정확히 짚어낸 건축미를 박물관을 여행하면서 내내 느낄 수 있다. 박물관에서는 옛 조상들의 의식주와 풍속 그리고 한 생애를 살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기념일과 행사를 모형과 유물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본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의 한국 첫 설계 작품인 구정아트센터가 있다. 아산이 충무공 이순신의 고장이라는 점에 착안해 거북선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지붕을 만들었고, 구조는 충청도 전통 가옥의 ‘ㅁ’자형 배치를 모티브로 삼았다. 외벽에 사용된 황토벽돌은 도고 황토와 백회를 7:3으로 섞어 태양에 말린 것으로 색감부터 질감까지 이 땅의 성질을 그대로 품고 있다. 바닥의 돌과 태극 문양의 경사로와 길게 뻗은 처마, 누마루 등의 요소들은 자연과 건축, 전통과 현대를 부드럽게 연결한다. 이타미 준 특유의 침묵과 여백의 건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현재 구정아트센터는 전시 기간에만 내부 입장이 가능하니 전시 관람이 가능한지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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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과 정원 사이, 모나밸리

모나밸리는 약 1만 평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한때 ‘모나무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으나, 리브랜딩을 거쳐 보다 열린 태도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레스토랑 웨딩홀 갤러리 정원 카페가 한데 모여 있는 곳인데 특히 여행자에게는 야외 정원이 가장 큰 볼거리다. 모나밸리의 중심에는 물과 정원이 있다. 수면에 비친 하늘과 건물, 느린 동선은 ‘힐링 명소’라는 표현을 무난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곳곳에 포토존과 설치 미술 작품들이 있어 즐길거리가 있는 정원이다. 예술이 실내 갤러리 안에만 있지 않고 야외 정원 전체를 덮고 있다.
2025년 국제 아트페어를 시작으로 다양한 문화 이벤트가 열리고 있어 예술 공간으로서의 분위기가 한층 활기를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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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SWITE> 매거진 내 기고한 글 전문입니다.

* 글 쓰는 윤슬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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