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May 01. 2020

한 달간의 휴직 일기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남기는 휴직 일기

여행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라면서 대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임금 삭감 혹은 근무일수 축소, 많이 상황이 좋지 않다면 퇴직을 하신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나의 경우에는 한 달간의 휴직이 주어졌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얻은 한 달간의 불안정한 자유. 

'불안정한' 자유라 칭하는 이유는 고용 불안정을 모르기에 더 이상 초긍정 이상주의자였던 대학생 시절의 네가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슬퍼지는 순간이 많아진다. 그래서 휴직이 썩 반갑지는 않았다. 이직을 해야 할까-수십 번을 고민했을 정도로.

그럼에도 자유는 9to6를 주 5일로 찍는 직장인에게도 꽤 필요했던 감정이었는지 금세 그 뜨뜻미지근한 자유를 즐기기 시작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야. 얼마가 주어져도 지내다 보면 어떻게든 살게 되어있어.

그렇게 보낸 휴직의 주요 결과물을 기록하고자 한다. 비록 사유는 부정적이지만, 그럼에도 이 같은 일을 자주 아니, 어쩌면 나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이기에.    


4월 한 달간 가장 초점을 둔 것은 '도전'이었다. 회사 다니면서 하기에는 시간상 혹은 여러 핑곗거리가 있어 미루기 딱 좋았던 것들을 시도해보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초심이라는 추진력 덕분에 4월 초부터 바짝 노력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실천할 수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영어문장 외우기

평소에 안 읽던 부류의 책에 도전하기

알쓸신잡 시리즈 다시 보기

자전거 라이딩

공복 아침 운동하기 / 약수터 가기

1주 1 영상 제작하기

피아노 다시 치기

요리 배우기


영어문장 외우기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에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라 사실 포기 상태였다. 관심 있다던 중국어 회화도 8개월 공부하고 스트레스받아 관두고 지금은 다시 0에 가깝게 돌아왔는데, 영어를 할 리가 있나. 여행사에 다님에도 영어를 못하는 것이 어쩌면 아이러니이지만, 공부는 도저히 못하겠어서 관두었다. 해외여행 다니는 데에 딱히 문제도 없고. 

그런데 대뜸 내년 뉴욕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고 입국 심사 질문에 답하는 정도는 필요하겠다 싶어(괜히 잘못 대답해서 수갑 차고 싶지 않다.) 4월부터 한 문장씩 외우고 싶은 문장만 찾아 외우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뉴욕에 얼마나 있을 거야?' 이런 질문들. 정말 회화 중에서도 가장 실용적인 회화가 아닐까. 학원에서도 이런 건 바로바로 안 배운다. 그 뒤로 생각날 때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서 '영어로 뭐지?'싶은 것은 찾아 외우고 있다. 

아, 오늘은 'It's hard for me'라는 문장을 외웠다. '나는 힘들어요'라는 뜻이다. 이걸 왜 외우냐고? 

그냥 오늘 운동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찾아봤다.


평소에 안 읽던 부류의 책에 도전하기

사실 이건 완독은 아직 못해서 성공은 아니고 시도만 했다. 책을 다양하게 읽는 것은 언제나 숙제였다. 매번 에세이 아니면 자기 계발. 편독이 굉장히 심하고 그런지가 몇 년이 돼서 큰 맘먹고 다른 부류를 읽어봤다. 

다행스럽게도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보다가 유시민 작가님이 언급한 '진보와 빈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싶어져(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생각이 담긴 고전서적) 서점에서 크게 마음먹고 구입했다. 

책 두께가 어마어마하다. 무슨 사전인 줄. 전공서적도 이것보다는 얇았다.

심지어 잘 읽히지도 않는다. 말이 너무 어려워서 한 번 읽어서는 택도 없겠구나- 한 페이지를 읽자마자 확신했지만 일단 이해 여부를 떠나 읽고 있다. 읽다 보면 이해가 되는 책도 있으니 그 가능성이라도 두고.

그래서 진도는 안 나가지만, 벌써 반이나 읽었다는 점에서 시도는 제대로 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완독은 글쎄. 살짝 지루해져서 다른 책과 병행해서 읽고 있으니까 진도가 더 안 나간다.


알쓸신잡 다시 보기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다. 종영한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 다시 보기를 열 번쯤 재생한 것 같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지역(도시)을 경험하고 이야기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고 그 방식을 쉽고 재미있게 만든 제작진분들의 촬영/편집 방식도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워낙 많은 지식이 쏟아져서 사실 열 번을 다시 봐도 외워지지 않아 매번 새로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오랜만에 긴 시간을 들여 시즌1~3까지 쭉 다시 보고 싶었는데 휴직 덕분에 실컷 봤다.


자전거 라이딩

시작은 팔당 자전거길이었는데 현재는 한강 자전거길이라지. 날이 선선해지면서 자전거에 푹 빠졌는데 항상 벚꽃이 피면 갔던 팔당 자전거길을 올해도 다녀옴을 시작으로 지금은 서울 따릉이를 매일같이 타고 있다. 팔당은 자전거 대여가 2시간에 8,000원인데 따릉이는 2시간에 2,000원이니 가성비가 압도적으로 좋아 갈아탔다. 

가격을 제외하더라도 한강을 따라 자전거길이 잘 정비되어있어 라이딩에 최적의 환경이기도 하다. 물론 가끔 등장하는 오르막길들은 그 최적에서 제외(따릉이로는 오르기 참 힘들다). 


공복 아침 운동하기 혹은 약수터 가기

운동은 참 하기 싫다. 꾸준히 한 지 2주 정도 됐지만 여전히 할 때마다 표정이 죽상이고 짜증이 나 있다. 그럼에도 굳이 매일 나가는 이유는 건강한 삶을 살아보겠다는 의지 때문이랄까. 온갖 패스트푸드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한 때 일주일에 한 번씩 햄버거를 먹었던, 그럼에도 운동은 일절 하지 않았던 나를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히스토리도 없이 대뜸 생겨나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수터를 갔다 오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만만해지면서 싫증이 나 공복 아침 운동으로 바꿨는데... 이건 무슨 스스로 지옥에 입성한 느낌.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정신 건강과 안색, 하루의 활기참을 포기하는 것 같다. 운동하는 시간 외에는 더 게을러진 것 같은 찝찝한 보람. 이건 5월에 두고 보기로.


1주 1 영상 제작하기

유튜브를 제대로 운영하고 싶어 일단 무조건 일주일에 한 개의 영상을 업로드하는 것에 집중했다. 제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리미어 프로의 신기술(?)도 하나둘 배워가고. 역시 도전의 묘미는 연결고리가 생겨 1+a로 배우는 것이 생긴다는 점이다.

아직 조회수가 미비하지만 길게 보고 하는 것이니 앞으로도 습관처럼 꾸준히 영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피아노 다시 치기

한 때 피아니스트가 꿈이었을 정도로 열심히 피아노를 치던 때가 있었다. 피아노 학원은 또래들이 모두 다니는 학원이었지만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한 애정은 실력과 관계없이 또래들보다 큰 편이었다. 

하지만 그때 학원을 다녔던 친구들이 그랬듯 시간이 지나면서 피아노와 거리를 두게 되었는데 그 애정은 못 버렸는지 어른이 되고 나서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어 졌다. 아니 그런데 성인 피아노 취미반은 학원비가 왜 이렇게 비싸지? 게다가 휴직자에게는 더욱더 부담이라 결국 집에서 피아노 건반을 다시 두들기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실력이 너무 형편없어져서 깜짝이야. 아무리 몇 년을 안 쳤어도 이렇게까지 못 치면 예전의 학원비가 너무 아까운 거 아닌가? 현재의 실력을 인정할 수 없어 매일 꾸준히 치기 시작했고 현재는 비슷하게 실력이 돌아오긴 했다. 피아노를 치면서 꾸준함의 중요성을 깨닫는 중.


요리 배우기

4월에 한 도전 중 베스트가 아닐까. 요리는 내 길이 아니라며 야채 껍질 까는 것 한 번 시도하지 않던 요. 알. 못이 어느새 밥버거를 만들고 머랭 치기를 하고 있으니. 어제는 시금치무침도 배웠다. 

맛에 예민하지도 않고 상한 것도 구별 못하는 둔한 감각이라 요리도 배워봤자 잘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칭찬받으면서 배우는 중. 다 하면 는다는 것도 함께 배우고 있다.

조만간 밀가루 없이 만드는 빵을 만들어보려 한다. 또 머랭 쳐야 하네? 오른손을 잃겠구나. 


5월도 휴직이란다. 5월은 4월보다 더 뜻깊게 보내고 싶은데 과연 무슨 일들로 31일을 채워갈까?

한 달 뒤에 또 휴직 일기를 쓸 때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했을 때의 이유를 손에 쥐고 있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