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이후의 다짐

약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된 순간

by 디디로그

응급실에서의 그날 밤은 희주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단단히 박혔다. 엄마의 등을 부축하던 손,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떨던 손끝,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그 순간 희주는 처음으로 느꼈다.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 이후, 희주는 다짐했다. 두 번 다시 그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먼저 약 복용 시간을 다시 정리했다. 아침, 점심, 저녁—세 번 모두 알람을 맞추고, 약 이름과 용량도 꼼꼼히 다시 확인했다. 약을 챙겨줄 때마다 엄마의 눈을 바라보고, 표정과 말투를 유심히 살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 바로 메모했다. 의사와의 상담도 더는 미루지 않았다. 희주는 묻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무지한 선택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엄마는 소파에 앉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머릿속이 좀 덜 복잡해.”

너무 짧고 조용한 한마디였지만, 희주는 그 안에서 변화를 읽었다. 약이 몸에 반응하고 있다는 작은 신호. 불안과 혼란으로 뒤엉켜 있던 엄마의 뇌에, 잠깐이나마 맑은 틈이 생겼다는 증거.
희주는 그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그 짧은 한 문장이, 지금까지의 고생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몸이 아니라, 삶 전체가 함께 회복되어야 하는 병. 그래서 희주는 다짐했다.

엄마의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계절을 함께 지켜보겠다고. 햇살 가득한 봄날처럼 잠시 찾아온 평온을 마음껏 누리고, 언젠가 다시 매서운 겨울이 닥쳐오더라도 함께 걸어가겠다고.


그날 밤, 희주는 엄마의 약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아. 흔들려도 괜찮아. 우린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회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마주하는 것,

그것이 희주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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