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랑 이렇게 길게 통화해?

남자친구인 줄~

by LYR

밤 9시가 넘어 들어온 딸.

아이 방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늦은 시간 친구랑 통화를 하기에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다.

다정한 말소리가 계속 이어져 ‘이상하다 남자친구가 생겼나’ 싶었는데 순간 '할머니'라고 부르는 딸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친할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80대 할머니와 뭘 그리 깔깔대며 전화를 하나 싶어 살짝 엿들었다.

학원에서 있었던 일, 공부얘기, 다리 아픈 얘기, 아빠 술 마시는 얘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재잘댔다.


딸은 가끔 시어머니와 통화한다.

나에게는 학원 끝나고 데리러 와달라고 하는 전화가 대부분이고 그 외 전화를 하지 않는다.

용돈 보내달라는 카톡이 전부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 주 양육자가 자주 바뀌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세 달도 채 안되어 출근한 엄마 대신 잠깐 친할머니가 키워주셨다.


6개월 된 아기를 대구 친언니네에 맡겼다

밤마다 딸이 보고 싶어 울고불고하다 세 달 만에 서울로 데려왔고 또다시 지방에 계신 어머니가 올라오셔서 아이가 4살이 될 때까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내려가시고 세명의 이모(베이비시터)를 거치며 초등 1학년이 되었다.

초등 1학년 때 둘째가 태어났고 그때부터는 둘째를 봐주시는 이모가 딸아이까지 돌봐주셨다.


그렇게 또 4명의 이모를 거쳤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가 주 양육자로 키울 수 없었을 때 딸아이는 할머니와 베이비시터 손에서 컸다.

딸아이가 사랑이 그리울 때 그 사랑을 한없이 채워준 사람이 바로 할머니였다. 어릴 때 엄마를 찾는 대신 할머니만 찾고, 손을 내민 엄마 손은 뿌리치고 할머니 손을 잡는 게 속상했다.


둘째가 잔병치레가 많아 1~2년 할머니와 같이 살 때도 딸은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참 많이 했다.

그때도 일이 생기면 할머니만 찾는 딸에게 서운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딸아이는 가만히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을.

잔소리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여유롭게 자기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늘 필요했다.


5학년말 학군지로 전학을 와서 친구도 없고, 공부는 더 많이 해야 하고 여전히 엄마와 이모는 어린 동생을 더 챙겼던 그 당시. 딸아이는 혼자서 더 많이 외로웠다. 사춘기 때 그 외로움이 원망이 되어 그렇게 엄마에게 차갑고 못되게 굴었나 싶다. 사춘기가 끝날 무렵 뒤늦게야 그걸 알았다.


사춘기가 한창인 중학생 딸아이는 마음을 받아줄 사람이 절실했다. 딸의 투정과 예민함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던 엄마, 아빠 대신 할머니가 있었다. 한없이 너그럽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할머니가 외로웠던 딸의 마음을 보듬어주었다.


유일하게 딸의 마음을 다 받아주신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니"


할머니~ 괜찮아. 공부 방해 안돼. 할머니가 전화하고 싶을 때 언제라도 해. 할머니 전화는 꼭 받을 거야. 못 받으면 학원 끝나고라도 꼭 다시 할게~


고3이 돼,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는 딸에게 여전히 할머니가 계셔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엄마~ 안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