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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Breasts Jul 14. 2024

당신의 유방은 안녕하십니까?

2024년 7월 12일, 나의 양쪽 새로운 유방의 첫 돌   


정확히 1년 전이었던, 2023년 7월 12일 오전 11시 나는 서울대학교 병원 유방외과 수술실에서 양쪽 가슴을 전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아무 죄 없는 양쪽 유두도 모두 제거가 되었다. 나의 유방암세포가 유두 아래쪽에도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방암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자세하게 아는 사람들은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고 하면 "유두는 살렸어?"라고 묻고들 한다. 왜 유두를 살리냐 마냐로 표현하는지 조금은 이상하기도 했지만 딱히 다른 단어도 떠오르지는 않는다. "살렸어?"에 대한 대답은 "아니, 못 살렸어." 밖에 없고, 살리지 못했으니 "사망했어" 혹은 "사망당했어"라고 표현하면 그 상황이 조금 더 가벼울 수 있을까?  나의 암세포는 양쪽 유두 아래 똑같이 자리 잡고 있었어서 둘 다 살릴 수 없었고, 센스 있으신 외과 선생님 덕에 유륜이 남아있어 아주 이상한 모양은 아니라고 나 스스로는 생각한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랄 지도 모를 일이다.


절제수술과 동시에 유방 재건수술이 진행되어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내 유방이 있던 자리에는 빵빵한 새로운 실리콘 유방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동시 재건 수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나마 운이 조금이라도 좋은 케이스였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실리콘 유방대신 "조직 확장기"를 빈 가슴의 자리에 심어 두고 6개월 정도를 기다렸다가 그것을 빼고 그 자리에 다시 실리콘 유방을 집어넣는 수술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세월의 흔적과 중력의 힘으로 형태가 변형이 되어가던 나의 늙어 가고 있던 중년의 유방은 불행 중 다행으로 옷을 입고 겉으로 보기에는 젊은 여성의 유방과 같다. 하지만 미용 수술이 아니므로 옷을 벗고 실물을 보면 커다란 수술자욱은 숨길수가 없다.


그리고 이제,  2024년 7월 12일인 오늘 나는 그 새로운 실리콘 유방과의 1년이 되었다.

 

다행히도 재건수술의 부작용은 없어서 구축이 일어나거나, 염증 또는 림프절 문제로 팔이 붓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양쪽 겨드랑이와 가슴의 감각이 100프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것이 또 그렇게 슬프지도 않다. 오른쪽 겨드랑이 부분의 감각은 80프로쯤 돌아왔고 왼쪽은 70프로쯤 돌아왔지만, 왼쪽 겨드랑이 부분의 이물감은 1년이 지났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물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그러므로 그것을 그냥 겨드랑이에 책 한 권 끼고 다닌다고 생각하고 인정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 정도면 새로운 실리콘 유방은 나와 잘 지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그래도 1년이 지나고 났으니, 새로운 유방의 첫 돌이라고 우스게스러운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지난 시간을 돌이켜 생각한다면 내게 있어서는 내가 맛보았던 가장 강도 높은 불지옥 그 자체였다. 지옥이란 게 꼭 죄를 짓고 죽어야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 시간 동안 뼈저리게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지옥에 있을지도 모른다. 지옥에 있다가 보니 지옥이 일상이 되어버려 그곳이 지옥인지 뭔지 구별하지 못할 만큼 무뎌졌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발견으로 일이 더 커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온 우주와 모든 신들께 엎드려 감사드린다. 


 유방암 환자가 되면서, 24년을 다녔던 회사도 그만두게 되어 직장도 잃게 되었고 48년간 사이좋게 지내오던 양쪽 유방과 유두도 잃게 되었다.  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회사에서 최악의 모습으로의 퇴사는 나를 패배의식에 잠식되게 만들었고 동시에 내 여성성의 상징이자 젊은 시절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던 양측 유방을 제거할 것이라는 통보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그때, 나는 한 마디로 완전히 미쳐가고 있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고, 최대한의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생각이란 중간이란 게 없었고 언제나 극과 극을 달려 나를 고통의 정중앙에 던져 놓았다. 그런데 이 모든 일 들이 고작 1년 몇 개월 전의 일이라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두고, 수술을 받고, 글을 쓰기로 결심을 하고, 내 글이 세상에 나 올 그날을 나의 양쪽 유방들이 새로이 교체된 7월 12일로 정하고 나름대로 많은 고민과 번뇌 속에서 글을 쓰면서도 이 것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당최 분간하기 어려워 내가 마치 호롱불조차 없는 어느 초가집의 시골집 어둑한 방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 시간들이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는데,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동이 트기는 하는 것일까? 자연의 섭리처럼 세상의 이치가 공평하다면 내게도 빛은 비치어질 것이다. 


 작년이었던 2023년 4월 26일 동네 병원의 영상의학과에서 상피내암을 진단받았고, 3차 병원으로 옮긴 후 검사 과정 중에서 다른 쪽 유방에서도 암세포가 발견이 되어 결국은 양쪽 모두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으며, 상피내암이라 추측되었던 암은 조직검사 결과 1기 암인 것으로 밝혀졌다. 양쪽 다 상피내암이었더라면 곧 있을 추적 검사가 이렇게 떨리진 않았을 텐데 혹시라도 재발과 전이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병원에 갈 날짜가 다가올수록 깊어진다. 


 지난달 6월 25일 수술 후 10개월 검사를 받았다. 원래는 초음파를 봐야 재발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 현재의 의료파업 상황으로 초음파 검사를 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 초음파 검사는 자동 취소가 되었다. 다행히 전이를 확인하는 뼈스캔이나 폐검사나 혈액검사에서는 특이소견이 나오지 않았지만 암세포라는 것이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완전히 없다고 방심할 수 없는 세포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 결과에 절대 안심하지는 않는다. 


결국, 초음파 검사는 서울대병원에서 처음 진단받았던 로컬 병원으로 전원의뢰서를 발급해 주었고 거기서 검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날짜는 내가 이 글을 올린 오늘부터 3일 후인 7월 15일로 정해졌다. 부디, 아무 문제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는 확신과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초음파를 받아 정확한 결과를 듣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암이란 것은 암도 무섭지만 재발과 전이에 대한 끊임없는 망상을 갖게 하는 것도 무섭다. 


 나의 수술 이후, 나랑 가까운 후배와 선배 그리고 지인까지 총 네 명이 더 유방암에 걸렸다는 것은 그들로부터 직접 온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위로해 주었던 사람들이 몇 달 후 다시 유방암 판정을 받고 내게 또다시 위로를 받는 상황으로 바뀐 셈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깨달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공감과 위로는 겪어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여성에게 있어서 유방암이란 다른 암과는 확연히 구분이 되는 암이다. 그것은 다른 여타의 일반적인 암과는 달리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 큰 흉터를 남기고 여성성이라는 것을 제거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유방암에 걸렸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가 않았다. 미국의 톱스타 앤젤리나 졸리가 유방암 걸릴 확률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유방을 예방적 절제를 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그녀를 백 프로 이해한다. 브라카 유전자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살면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70프로 이상이었으며 본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까지 유방암을 돌아가신 것을 지켜보았으니 피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방암이라는 통보를 받고 나서 내게 위로와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남편도 친구도 아니었고, 슬프게도 나보다 먼저 이 고난을 겪어 낸 사람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나보다 한 살 위이며 3년 먼저 유방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은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일 먼저 생각 나는 사람이 어릴 때 이후 왕래가 자주 있진 않았지만 가끔 경조사에서 보고 서로의 안부를 묻던 사촌 언니였다. 2년 전 외삼촌의 장례식장에 갔다가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진 언니를 보게 되었고 유방암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내게 큰 위로와 힘이 된 사람은 나와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지만 나보다 1년 먼저 수술한 회사 선배였다. 


그들의 위로와 격려와 내게 전해주는 정보는 뼈와 살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내게 있어서 지푸라기가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잡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그리스도의 옷자락과도 같았다. 암에 대한 정보와 이론을 찾아보자면 유튜브나 블로그 어디에든 너무 많은 정보들이 넘쳐나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그 공통분모의 정리된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 겪어서 내 앞에서 그들의 감정을 직접 말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묻고 싶은 것을 마음껏 질문하였을 때 공감과 위로를 주며 답을 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사촌 언니와 이전 회사의 선배에게 아직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어느 누군가가 만약 유방암에 걸려 정서적 방황과 심리적 고통과 피로를 겪고 있을 때 유튜브와 블로그의 지식이 아닌 당신과 유사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글을 써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나와 같은 일을 이미 겪었거나 겪고 있는데 어디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감정적 고립 상태인 누군가와 감정을 서로 교환하고 서로 위로하고 받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쓰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방암은 우리나라 여성암 1위이기도 하지만 현재  매년 3만 명의 신규 유방암 환자가 생기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매년 30만 명의 신규 유방암 환자가 생기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포인트는 미국의 인구가 우리나라 인구의 10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점점 더 유방암 환자는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나를 포함한 내가 아는 지인들 모두 누구 한 명 자신이 유방암에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작년 검진에 아무 이상이 없다 하더라도 올해 검진에 암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 팩트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는 환자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유방이 안녕한지 안 한지는 빈틈없는 검사와 검진만이 답이다. 지금 당장의 결과가 이상 없다하더라도 1년이 안된 시기에 유방암이 발견 되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에도 그랬다. 내 유방은 그래도 안녕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안녕하지 못한 유방을 가진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유방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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