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복이 참 많으십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by O Dan o

아침 9시, 대표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조찬 모임을 다녀오신 날이면 늘 그랬다. 리플릿을 한 아름 안고 들어오시며 나를 부르셨다. 경영자의 의욕이 그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 대리, 이거 보게. 정부 지원 최고야!"


건네받은 리플릿을 훑어보는 내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최신 정책'이라며 소개된 리스트들은 이미 우리 회사가 갖춰온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노비즈 인증, 우량기업 선정, 기술개발과제 신청, 수출 유망 중소기업, ISO 인증, 특허출원비 지원 등이다.


1시간 후, 나는 리플릿을 들고 대표께 갔다.


"리플릿 내용 우리는 이미 완료입니다."


대표는 웃으셨다. 그 순간, 다른 중소기업 관리자들의 입장이 떠오르며 등에 식은땀이 났다.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 마음이 어땠을까.


이런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정책을 들고 오셔도 내 대답은 늘 같았다.


"우리는 이미 완료입니다."


몇 번 반복되자 대표는 더 이상 리플릿을 내밀지 않으셨다. 굳이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신 것이다.


사수도 없는 작은 조직에서 내가 이토록 치밀하게 조직을 정비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설적으로 현장에 있었다. 각종 인증을 받기 위해 실사를 스스로 준비하고, 조건에 맞춰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고, 실사단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최고의 경영 수업이 되었다. 지금이야 각종 인증이 간소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심사 기준이 까다롭고 준비 부담이 상당했던 시절이었다.


실무를 통해 최신 이슈를 체득하고 시스템에 이식하다 보니, 우리 회사는 어느덧 웬만한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내실을 갖추게 되었다.


재미있는 일은 외부에서 터졌다. 협회 모임에서 정부 지원 안내나 조직 운영 및 정비 건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다른 회사 대표들이 우리 대표에게 의아해하며 물었다고 한다.


나중에 대표께서 직접 전해주셨다.


"도대체 새로운 지원 정책과 기업 인증들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적용하셨습니까?"


대표의 대답은 명쾌했다고 하셨다.


"우리 오 대리가 다 했어요."


그 소문이 퍼지자 다른 회사 대표들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대표는 나를 부르시더니 말씀하셨다.


"오 대리, 언제 시간 되나?"


그렇게 미팅이 잡혔다. 찾아오신 분들은 주로 실무적인 것들을 물으셨다. 인증 준비는 어떻게 했는지, 정부 과제는 어떻게 준비해서 신청했는지, 어떤 양식을 쓰는지 등. 나는 아는 대로 정직하게 답했다. 필요한 분께는 양식도 드렸다.


어떤 대표께서 작은 액자를 들고 오셨다. 빈손으로 오기 미안하다며 주셨다. 본인이 직접 그린 강아지 그림이었다. 애견을 워낙 좋아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그 액자를 한동안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나를 찾아오신 그분들이 돌아가실 때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표께 같은 인사를 남기셨다.


"인복이 참 많으십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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