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유예의 착각과 차가운 법전, 공무원이 가르쳐준 것

보도자료의 환상을 깨고, 생존의 기준 세우기

by O Dan o

회사의 모든 계약서 초안이 내 책상 위를 거쳐 간다. 나는 지금도 계약서의 토씨 하나, 문구 하나를 관련 법령과 대조하며 꼼꼼히 씹어 삼키듯 검토한다.


혹여 나의 선을 넘어서는 고도의 법률적 해석이 필요할 때면, 새롭게 연결된 든든한 외부 조력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돌다리를 두드린다.


내가 이토록 '문서와 법령'에 집착에 가까운 잣대를 들이대게 된 것은, 낡은 수첩 속에 적힌 5년 전 그날의 기쁨과 기대가 2년 후 얼마나 서늘한 깨달음으로 바뀌었는지 뼈아프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인수하면, 공정거래 당국에 "이제 이 회사는 우리 그룹의 계열사입니다"라고 공식 선언을 해야 한다. 관련 절차를 준비하며 막막해하던 중, 누군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귀한 소식을 하나 전해주었다. 바로 '계열편입 유예 제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일정 요건을 갖춘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인수되더라도 일정 기간 중소기업의 지위를 유지하게 해주는 방패 같은 제도였다. 오로지 연구개발과 생산에 매진해 온 우리 회사는 조건을 충족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무사히 '계열제외(유예) 통지서'를 품에 안았다. 이 종이 한 장은 조직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발생할 위기를 막아낸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당시 우리가 받은 공문에는 이 유예 기간이 '7년'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회사 내부에는 안도의 한숨이 번졌다.


"7년이면 충분하다."


복잡한 결재 라인 없이 빠르게 결정하고 움직이는 가벼운 조직, 오로지 기술력을 무기로 기민하게 대응하는 벤처기업 특유의 유연함.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강력한 장점을 한껏 살려 독자적으로 사업을 키워가며, 대기업에 걸맞은 관리 체계는 천천히 다져나가면 될 일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순진한 착각 속에 빠져있었다.


그로부터 약 2년이 지난 어느 날, 중소기업청 담당 공무원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그 평온함을 산산조각 냈다.


"귀사의 중소기업 유예 기간은 3년입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네? 저희는 유예기간 만료 시점까지로 알고 있습니다. 공문도 받았고요."


나는 다급히 유예 통지서와, 7년 유예를 홍보하는 정부의 보도자료까지 긁어모아 들이밀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 공무원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차가웠다.


"저희는 법에 의해 판단합니다. 제 판단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시려면, 인터넷 기사나 보도자료 말고 법 조항을 찾아서 제출하세요. 그럼 인정하겠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홀로 사무실에 남아 '국가법령정보센터' 사이트에 접속했다. 생전 들여다본 적 없는 차가운 법전의 숲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파고들며 나는 처음으로 법의 뼈대를 보았다. 헌법을 꼭대기로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으로 이어지는 견고한 수직 구조. 아무리 세세하게 뒤져보아도,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조항은 하위법에서도 없었다. 여러 낮밤을 새워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뾰족한 수는 찾지 못했다.


며칠 밤낮을 씨름하고 나서야, 나는 조용히 모니터를 껐다. 틀린 건 내 쪽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공무원이 미워지지 않았다. 만약 그가 내 사정을 봐줬다면, 다음 사람의 사정도 봐줘야 했을 것이다.


법이 아닌 사람의 판단이 기준이 되는 순간, 국가 시스템의 질서는 누군가의 손안에 달린 것이 된다. 법이 차가운 이유는, 그래야만 공평하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명확해지자, 우리는 불평할 시간에 방향을 틀었다. 유예 기간 만료 시점에 맞춰 느긋하게 준비하려던 계획을 전면 폐기하고, 시계를 미친 듯이 앞당겼다.


내 마음은 타들어 갈 듯 급해졌다. 벤처의 낭만을 즐길 시간 따위는 없었다. 당장 대기업 수준의 깐깐한 규정 준수를 요구받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조직의 뼈대를 서둘러 세우고 실적을 증명해 내야만 했다.


가장 시급한 생존의 문제는 '조직 운영'이었다. 회사의 실제 덩치는 아직 '초등학생' 수준인데, 당장 1년 뒤에는 법적으로 중견기업이라는 '어른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고, 그로부터 다시 2년 뒤에는 대기업이라는 '성숙한 어른'의 무게까지 온전히 견뎌내야만 했다. 시스템 없는 조직은 리스크였다.


나는 이 차가운 현실을 직원들에게 투명하게 공유했다. 하도급 관련 교육을 강도 높게 실시하며 조직의 뼈대를 갖추어 나갔고, 내부 관리 체계부터 영업과 연구개발부서에 이르기까지 법적· 사회적 요구 기준에 맞추도록 지속적으로 변화를 요구했다.


시간이 흘러 몇 해 뒤,

중소기업 유예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한다는 반가운 법 개정 소식이 들려왔다.

순간 "우리도 혜택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스쳤지만, 이내 헛된 희망임을 깨달았다.


법에는 '법률불소급의 원칙'이라는, 또 하나의 서늘하고도 공평한 원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법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과거의 일에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 회사는 5년 연장의 혜택이 없다.


솔직히 그 제도의 수혜를 받는 후배 기업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업은 결국 불평하는 대신, 주어진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최선의 생존 방식을 찾아 움직여야 하는 생물인 것을.


돌이켜보면, 7년이라는 순진한 착각이 깨어지던 그날은 참으로 매서웠다. 보도자료 한 장에 기대어 우기던 아마추어가 있었다. 그가 진짜 경영인이 된 건, 그날의 혹독한 수업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눈앞의 계약서를 한 줄 한 줄 짚어 내려가며 생각한다.

차가운 법전은 그날도, 오늘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그 앞에 선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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