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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미소랑 송아지가 밧줄로 연결됐드랑께

형제자매가 몇 명이냐는 질문을 요즘은 좋아한다. 물어보는 사람을 놀라게 해 줄 수 있는 아주 손쉬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8명이에요.

이러면 사람들은 보통 눈이 휭둥그래진다. 물론 아주 가끔 형제자매가 10명이 넘는 사람들은 시큰둥한다. 하지만 나의 두 번째 포탄은 남았다.


"1남 7녀예요."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아들이 막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들의 고정관념을 단박에 산산조각 내는 이 짜릿한 순간을 즐기며 함박웃음꽃으로 대답한다.


"아니요. 제가 막내예요. 오빠는 제일 첫째고요. 저희 아부지가 집안에는 반드시 아들이 적어도 2명은 있어야 한다고 강박으로 인해 계속 생기는 데로 낳다가 이렇게 됐데요."


뱃속에 내가 자리 잡은 순간 엄마는 알았다. 이번에도 딸이라는 것을. 머리 위에는 읍내 장에서 팔 상추와 콩, 무를 한가득이고 두 시간 넘게 걸어 읍내에 있는 단골 보약상점에 갔다. 아부지 몰래 마을 사람들에게 빌려온 돈을 허리춤에 넣고.


"이번에도 딸이란 말이요. 애기 지우는데 잘 먹는 약 좀 달여주시요."


보약사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엄마를 속이고 산모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약을 지어주었다. 보약을 아무리 먹어도 아기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엄마는 집뒤에 있는 논둑으로 무거운 발을 옮겼다. 논둑은 매우 가파란 언덕이었다. 머리를 논둑에 두고 굴러 넘어지길 몇 번이나 반복했다. 뾰족한 돌과 나뭇가지가 얼굴과 몸을 상처 내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제발 떨어져만 다오...'


그날 밤 엄마는 꿈을 꿨다. 집에서 기르는 누렁 암소가 논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하얀 안개가 짙게 깔려 주변은 잘 보이지 않았다. 누렁소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쇠방울이 울리는 소리만 적막을 깰 뿐이었다. 한참 동안 누렁소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올망졸망하게 생긴 송아지가 나타났다. 송아지는 누렁소와 밧줄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 순간, 엄마는 알았다. 이 놈의 딸년은 죽지 않고 태어날 운명임을.


"야, 나 너 태어난 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 새 학기 바로 시작하고 얼마 안 된 시점이었어. 학교 갔다가 집에 왔는데 동네 사람들이 '야, 니 엄마 또 딸났단다'라고 하는 거야."


큰 언니는 내가 태어난 날 이야기를 해주면서 싱긍벙글이다. 당시에는 마을 사람들의 놀림이 싫어서 내가 미워겠지만, 이제 우리 모두 중년의 나이를 다 넘긴 이 시점에는 과거 모든 추억은 달콤할 뿐이다.


하루종일 밭에서 쪼그려 앉아 풀을 매다 도저히 산기를 견디지 못해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바쁜데 일은 안 하고 잠잔다고 아부지는 엄마를 못마땅해했다. 아파도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엄마는 나를 혼자 받아냈다. 엄마 옆에서 뭣도 모르고 놀고 있는 세 살배기 딸이 가져온 가위로 엄마는 탯줄을 잘랐다. 고추를 달고 나오지 않은 딸이 너무 미워 얼굴도 보기 싫었다.


방으로 들어온 아부지는 엄마 옆에 누운 아기를 보고 일 순간 경악했지만, 딸인 것을 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말 한마디 없이 방문을 쾅 닫고 나갔다.


엄마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윗집 큰 엄마가 와서 내 몸뚱이에 뭍은 피를 닦아 주었다.

"오메메, 무슨 아기가 이렇게 하얗당가."

나뭇가지로 불을 지펴 끓인 물로 아기를 목욕시키던 큰 엄마는 연신 놀란다.


아무도 엄마를 위해 밥 해줄 사람이 없다. 며칠 전 읍내 장에서 사서 찬장에 넣어두었던 마른미역을 물에 불리고 쌀 씻은 물로 미역국을 끓인다. 딸이라 미웁기는 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이상 너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살아야지.


다음 날 아침 미역국은 일곱 명 아이 입 속으로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지난 40여 년간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아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항상 우울증에 시달려온 제 삶을 글로 담아내보고자 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성공한 삶처럼 보이는 삶을 살지만 행복을 두려워하는 제 마음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글로 치유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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