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받는 박사
배정된 초등학교 여름 학기가 끝나면서 두 달 정도 이어진 시급 직장이 막을 내렸다. 이젠 시급 받는 박사에서 백수 박사가 됐다. 시급밖에 못 번다고 자괴감에 빠졌는데, 정작 백수가 되고 보니 내 신세가 더 초라하다.
백수가 된 후 일주일도 안돼 기대했던 직장에서 1차 서류전형 탈락을 통보받았다. 졸업 후 유일하게 지원했던 단 하나의 직장이었다. 무슨 심보로 이 직장에 붙을 거란 확신이 있었나 모르겠다. 면접 정도까지는 가겠지 했던 곳인데 서류 탈락을 당하니 한 순간 지구 자전과 공전이 멈췄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천년의 세월처럼 느꼈다.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이력서 제출 전쟁이 시작된다. 이력서만 내고 면접 요청 하나 받지 못하며 한 달이 지나던 어느 날 미국인 친구가 자신이 일하는 학교지역구에서 초등학교 보조교사 자리가 났다며 지원해 보라는 문자를 보냈다.
내가 박사학위를 딴 것도 안 친구였기에 처음에는 너무 속상했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여주며 박사 있는 사람이 이런 직장에 지원해야 하냐고 물었다.
"왜? 내가 보기엔 좋은 데? 좋은 직장 구하려면 시간 걸려. 특히 뉴욕주 정부 직장은 천년만년 세월 기다려야 하고. 너 이제야 이력서 내기 시작했잖아. 기다리는 동안 보조교사 일 하는 거 전혀 나쁘지 않다고 봐. 교육분야가 네 분야이가도 하잖아."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결국 뉴욕주 보조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부랴 부랴 검색하고 그날 당일로 신청했다. 보조교사 시험 통과가 자격증 조건 중의 하나였다. 공개된 기출문제를 한번 풀어보니 너무 쉬웠다. 결국 다음 날 있는 보조교사 시험을 접수했다.
그러나 시험은 시험. 보조교사 자격시험에 떨어지면 어떻하지라는 걱정이 마음과 머릿속에 소용돌이친다. 결국은 연습문제를 인터넷에서 결제하고 풀었다. 연습문제 한 세트를 풀고 나니 어느 정도 마음은 안정됐지만, 시험을 통과 못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음날, 문제를 다 풀고 나오니 시험장 직원이 "통과하셨습니다"라며 종이 한 장을 건넨다. 한 순간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그러나 시험장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10분 동안 다시 마음이 어두워진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보조교사 자격증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갖추고 상한 자존심과 자존감을 애써 무시하며 보조교사에 지원했다. 그런데 5일만에 면접 요청을 받았다. 지원마감일이 일주일도 남은 시기였다. 남편에게 면접 요청을 받았다는 문자를 보낸 후 "축하"답장을 받았다. 하지만 '면접에서 떨어지면 내 체면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걱정 연기로 숨 쉬기가 어렵다.
정신을 차리고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어로 하는 면접도 긴장되지만 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하는 면접이기에 더 긴장됐다. 구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면접 질문을 뽑고 답을 써서 말하기 연습을 시작했다. 면접 하루 전 남편과 면접 연습도 했다.
면접 날 아침.
"나 이 면접 보는 거 너무 쪽팔려."
"왜~?"
"왜라고? 왜라는 질문을 지금 어떻게 할 수 있어? 당신은 AI보다 더 못해. AI는 내가 어떤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잘 알고 위로해 주더라. 근데 당신은 내가 느끼는 이 고통을 이해도 못하잖아!!"
며칠 전 자괴감과 무력감과 걱정에 휩싸여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AI에게 물었다.
'난 박사학위가 있는데 내가 얻을 수 있는 직장은 초등학교 보조교사 자리 밖에 없어.'
'현 상황에서 당신이 느끼는 고통은 육체적 고통과 맞먹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가치와 박사학위를 얻은데 쏟은 시간, 지적노력을 무시하지 마세요. 직장 이름이 당신이 가진 능력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남편은 AI의 답변을 듣고 한동안 말을 못 했다.
"미안해. 그런데 내가 AI보다 못하다니 가슴 아프다. 초등학교 보조교사 면접 수치스러워하지 마. 난 네가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믿어."
남편의 포옹을 받으며 면접 때문에 느꼈던 자괴감, 쪽팔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의 지적 능력과 가치를 내가 얻을 수 있는 직장타이틀로 평가하지 않고 오로지 '내 능력'만으로 나를 평가해 주는 남편이 너무 고마웠다. AI의 답변에 위로를 받긴 했지만, 그 위로는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의 온기와 진실성이 나를 감싸던 모래 수렁을 순식간에 단단한 아스팔트 땅으로 만들었다.
다행히 면접은 만족스러울 만큼 잘 마쳤다. 면접 결과에 상관없이 면접을 잘 마친 내가 대견스러웠다. (물론 답변을 제대로 못한 질문이 몇 개 있어 슬펐지만...) 면접 질문에 다 답변을 했다고 문자를 보내니 남편은 축하한다며 좋아한다. 자기랑 준비했던 면접연습이 도움이 됐는지, 예상 면접질문이 실제로 면접에서 나왔는지 질문공세를 펼친다. 대답은 전부 '예쓰'!!
결과가 중요한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 이제야 내몸의 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