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요청 하나 없어도 이력서를 계속 내는 이유

시급알바 일하는 박사

오늘 내 시급알바 일은 스탑모션 캠프 수업 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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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탑 모션 만들어 본 적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절반 가량의 아이들이 일제히 손을 뻗쳐 흔들어 댄다.


학생들이 아이패드로 자유롭게 자신만의 스탑 모션을 만들 전 선생님은 다시 한번 당부한다.

"완벽하게 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이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탑 모션을 가지고 재미있게 노는 거예요."


찰나의 순간 선생님이 나한테 말하는 줄 알았다.


완벽한 직장은 세상에 없다. 완벽한 나도 존재할 수 없다. 완벽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초 한 초 나에게 주어진 이 선물과 재미있게 노는 것이 중요한 거였다.




스탑 모션 영상은 보통 24개 사진으로 1초를 만든다. 스탑 모션 영화가 내 인생과 너무 닮았다고 3시간 수업 내내 소리 없는 탄식을 질렀다. 매일 계속 반복되는 일상은 결국 비슷하지만 눈곱만큼의 차이가 있는 스탑 모션 사진을 찍는 거였다. 좋은 스탑 모션 영상에 가장 중요한 요소 세 가지는 반복적인 일상이 기본인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언과 비슷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hZbvbghpXec&list=RDhZbvbghpXec&start_radio=1

스탑 모션 영화같은 내 인생...

첫째, 조명, 배경, 카메라 위치를 최대한 똑같이 유지해라. 자연광은 시간, 태양의 위치, 구름때문에좋은 조명이 될 수 없다. 태어나자마자 갖게 된 가족, 사회적 환경 등은 태양광이다. 태양광에 의존하지 말고 인위적인 조명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 조명은 뭘까? 나를 흑암 속에서 빛나게 해주는 조명이 뭘까? 내 못난 성격까지 귀엽다며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다. 배경처럼 움직이지 않고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며 나를 바라보는 사람. 난 그런 남편이 있으니 조명, 배경, 카메라 세팅은 끝!


둘째, 움직임은 최대한 많은 개별 프레임으로 쪼개라. 최대한 점진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해야 좋은 스탑 모션이 된다. 결국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을 많이 살아야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말. 눈에 뜨이지 않는 점진적인 움직임이 한꺼번에 모이면 마술과 같은 쇼가 벌어지는 스탑 모션처럼 인생도 벗어나고 싶은 일상을 즐길 줄 안다면 이 세상을 떠날 때 '난 행복한 사람이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다.


셋째, 움직임은 가속과 감속을 반드시 표현해라. 세상의 모든 것은 갑자기 멈추거나 갑자기 최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직장을 구하는 것은 내 인생 중대사다. 그렇기에 하룻밤에 이루어질 수 없다. 직장을 구하는 것도 처음에는 모든 것이 너무 느려 애간장이 타 들어간다. 하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나가다 결국은 천천히 멈추며 은퇴를 하게 된다.


내 인생의 스탑 모션은 아직 움직임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초조하다. 하지만, 최대한 작은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 좋은 스탑 모션이 되듯이, 잠복기 같은 이 구간이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데 절대로 필요한 시간임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졸업 전 박사 후 진로에 관한 워크숍에 참석했다. 보통 이력서 10개를 내면 면접 요청은 2-3개가 온다는 말이 오갔는데 이제야 그 말을 실감한다. 내가 낸 이력서는 10개가 넘은 지 오래다. 하지만 면접 요청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남편은 현재 직장을 얻기 전 이력서만 200개 넘게 냈다. 인터뷰 요청은 이력서를 100통 보낸 다음에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15번의 인터뷰를 본 후에야 현재 직장을 얻을 수 있었다.


인터뷰 요청을 하나도 받지 않는 것과 14번의 인터뷰를 보고 전부 다 낙방하는 것 중에 뭐가 더 좋을까.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하다 난 함박웃음꽃을 피우며 소리쳤다.

"면접 하나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래. 열네 번 낙방보다는 그게 더 나아!!"

내 말을 들은 남편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어떤 유명 하키 선수가 했던 말을 나에게 해준다.


You miss 100 percent of the shots you don't take.
쏘지 않은 총알은 절대 맞지 않는다.

내가 쏜 총알이 번번이 타깃을 빗나간다면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워 총을 더 이상 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물 정 중앙을 맞추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조금씩 점진적으로 목표물 중앙에 가까이 가는 것이 목표라면 총알을 최대한 많이 쏴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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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도 난 이력서를 낸다. 시급 알바일, 이력서 100개 200개 내는 일을 놀이처럼 즐겨본다. 크리스마스 환상이 깨지지 않은 아이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 처럼 "첫 면접 요청"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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