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받고 일하다 보니 요새는 아는 사람 만나는 게 꺼려진다. 내 근황 - 정확히 내 직장생활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나를 걱정(?)해주는 질문 때문이다.
직장이란 한 인간의 정체성을 대변해 주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역할을 한다. 1년 넘게 같은 교회를 다니던 사람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어제 처음으로 그 분의 직장을 알게 됐다.
"배달일 해요. 무슨 직장 다니세요?"
"저는 뉴욕주 공무원이에요."
남편의 대화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직업의 위계를 느꼈다. 직장의 이름이나 하는 일에 따라 사람의 상하 관계가 칼로 무 자르듯 깔끔하게 정리된다. 모든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 존중받고 동등해야 한다는 기본 가치는 한순간 증발된다.
물론 직장에 따라 요구하는 경력, 경험, 교육 수준이 다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장은 이 모든 부분에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교육과 경력이 필요 없는 직장을 잡은 사람에 비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높은 수준의 교육과 경력, 경험을 가진 사람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직장을 가지는 경우다. 교육과 경력을 사회가 인정해 준다면 이런 직장을 가진 고 학력, 고 경력자도 당연히 존중해줘야 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는 고학력에 합당한 직장을 얻지 못한 사람을 깔본다. 이런 사회적 환멸은 내 깊은 마음속에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리며 자라기 시작한다.
인간의 가치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가받는 사회가 올까. 상대를 존중해 주는 이유가 그 사람의 직업, 교육 수준, 경험의 양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이기에 존중해 주는 사회.
Love yourself. Respect yourself.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 내가 무엇을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 인간이기에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실 인간의 사고나 지식은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직업의 위계도 이런 착시 현상이 아닐까.
그래서 시급 받고 일하는 박사나 시급 받고 읽히는 초졸, 중졸, 고졸이나 모두 다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한다. 억대 연봉 받고 일하는 박사나 시급 받고 일하는 고졸도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다.
사회적 착시, 정신적 착시 현상에 현혹되지 말고 살자.
보이지 않더라도 보인다는 새로운 착시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