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벌써 직장에서 잘릴 것 같아

며칠 전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보통은 내 직속 상사인 제이슨에게도 같이 보내는데 꼭 나만 찝어서 이메일을 보냈다.


"민원 A가 제출했던 서류 말이죠, 민원인이 인용하지 않는 법규는 언급하지 마세요."


민원 A가 제출했던 서류는 내가 1차로 점검하고 내 직속 상사인 제이슨이 체크한 후 우리 부서 변호사에게로 넘어가 법률 관련 팩트 체크를 하고 최종적으로 리더십으로부터 오케이 사인을 받은 후 외부로 나간다. 민원 A가 제출했던 서류와 관련한 법규를 이 직원한테 공유했더니 이 직원은 이 법규는 뉴욕주 웹사이트에도 없고, 주정부 웹사이트에 없고 오하이오 주 웹사이트에만 있는 거라며 절대로 이 법규는 입에도 달지 마란다.


내가 공유한 법규는 그 직원이 민원인에게 알려준 법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둘 다 똑같은 이름을 가진 법규지만, 내가 공유한 것은 붙임이 있고 그 직원 법규는 붙임이 없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나 해서 바로 부서 변호사에게 달려가서 물었다.


"붙임에 사용된 언어와 양식이 전체적인 문서에 사용된 언어와 양식과 비슷해요. 붙임이 있는 문서가 오하이오주 웹사이트에만 있다고 해서 이 문서가 붙임 없는 문서보다 법적인 효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에요. 둘 다 충분히 법적인 효력이 있다고 봐요."


변호사의 확인을 받고 나는 그대로 그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나한테 바로 답장을 한다.


"그 법규를 민원인한테 언급하지 말라는 말이 하고 싶은 말이었고 나는 충분히 내 의도를 전달한 것 같으니 이만 하겠어요."


하지만 이 직원은 여기서 그만두지 않았다.


오늘 오후 이 직원의 상사가 우리 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며칠 전 우리 팀이 외부로 보낸 두 가지 민원서류를 보내 달라는 거였다. 내 직속 상사인 제이슨이 조퇴를 한 상황이라 내가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이 직원이 바로 우리 팀에게 답장을 보냈다.


"민원인이 언급하지도 않은 이 법규는 왜 넣었나요? 민원인도 당신이 이 법규를 넣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이 사람은 왜 자꾸 나를 타깃으로 삼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나만 괴롭히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나에게 최종 권한은 꼬투리도 없는데 왜 자꾸 나한테 뭐라고 하는지. 하소연을 하러 변호사 방을 또 찾아갔다.


"이 사람 정말 도를 넘었네요. 리얼리티 체크를 받아야 하겠어요. 잘못한 거 하나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 사람이 보낸 이메일을 나한테 보내줘 봐요. 내일 제이슨이랑 내가 얘기할게요."


애써 달아오른 얼굴과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변호사의 말에 안도감이 들었지만, 만에 하나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나는 잘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애비와 사무실 근처를 산책하며 나눴던 이야기가 강하게 스쳤다.


"내 큰아들은 뉴욕주에서 일하는데 처음에는 수습사원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나는 아들에게 하루 쉬라고 권했고 아들도 상사한테 하루 쉰다는 이야기를 하고 쉬었죠. 그리고 그다음 날 해고됐어요."


나도 수습사원이라 애비의 큰아들과 같은 상황에 처할까 너무 걱정이 됐다. 이 걱정스러운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데 버펄로 출장 간 남편은 내 문자에 답장도 안 한다.


한숨을 깊게 내쉬며 버스 창문 밖을 바라봤다.

구름 사이로 강하게 뻗치는 햇살이 장엄하다. 그 직원한테 받은 스트레스나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한순간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 며칠 전 남편과 영화관에서 봤던 호퍼스가 생각났다. 학교에서 교실 애완동물을 구출하다가 걸린 주인공 메이블에게 할머니가 말한다.


"I used to get really mad—but not anymore. Want to know my secret?... That’s what nature does. It’s hard to be mad when you feel like you’re part of something big."


"난 한때 정말 화를 많이 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 비밀이 뭔지 알고 싶니? 대자연의 힘이야. 내가 뭔가 거대한 것의 일부라고 느껴질 땐 화 내기가 힘든 법이야."


메이블의 할머니 말이 내 마음속에서 고요히 울렸다.


타고 있던 버스에서 내려 환승을 하려고 기다리는데 하늘이 너무 예뻤다. 한순간 회색 구름으로 가득 찼던 하늘이 이젠 가을 하늘처럼 푸르고 높다. 내가 대자연의 일부라고 느끼면 자연도 내 마음에 반응하나 보다.


두 시간 후에야 남편은 부랴부랴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사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 중이라 휴대폰을 볼 겨를이 없었고 문자 확인하고 바로 전화한 거라며.


오늘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토했더니, 남편 왈,

"변호사가 네가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한 거면 걱정할 필요 없어. 변호사 일은 그거야. 뭐가 잘못됐고 잘됐는지 판단하는 거야. 수습사원에서 잘린 아들 이야기를 들어서 네가 잘리는 걱정이 든 것은 당연한 거야. 하지만, 너를 자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네 직속 상사와 네 상사의 상사뿐이야. 그 직원이 너를 해고할 수 없어."


"그 직원 계약직이야. 3월 말에 우리 부서 모든 계약직이 종료되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에 이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는 걸 나한테 푸는 건지도 몰라."

"그래,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그 직원이랑 만나 적 있니?"

"아니, 제이슨이랑 팀즈로 한 번 이야기 나눈 적밖에 없어."

"그럼 그 사람 네 목소리 들었겠다. 그 사람이 너한테 이러는 이유도 네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 수도 있어."


나의 악센트 있는 목소리가 공격의 타깃이 됐다니 할 말을 잃었다. 평소 같았으면 못난 내 영어 실력을 탓했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점심 산책을 하며 애비가 해 준 말이다.


"난 네가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해. 제2언어로 이런 직장을 구해서 일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건 네가 똑똑하다는 증거야."


물론 애비의 아이들 세 명 모두 영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아는 똑똑한 사람들이기에 애비는 모국어 외에 다른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재능의 가치를 일반 미국인보다 더 잘 안다.


전화를 마무리하며 남편이 당부한다.

"제발 자신감을 가져. 모든 걸 네 탓으로 돌리지 말고, 알았지? 내일 보자."



다음날 벨라와 리암에게 해고 당하는 걸 걱정했다고 내 속마음을 털어놓자 벨라왈,


“나도 해고 당할까봐 어제 걱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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