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10. 14.의 생각
사랑하고 싶을 때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사랑은 사람이던 일이던 취미던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사랑하고 싶었던 것을 얼마나 포기하고 살았을까?
19년도 내가 사랑했던 일을 양 다리를 수술하며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 사랑했던 자전거라는 취미를 다시는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더욱 먼 옛날의 초등학생 때 그림그리는 것이 재밌던 나에게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깨닫고 일찌감치 포기해버렸을 때, 고등학생 시절 교내 캘리그라피 공모전에서 열심히 그려놓고 ‘내가 무슨 그림이야’라고 제출하지 않으며 스스로 사랑을 놓아버렸을 때?
나는 어느 상황에 놓여도 잃어버린 그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왜 포기했을까? 의사의 말 때문에? 아니면 돈이 정말 많이 들어서? 아니면 자신감이 없어서였을까. 수많은 포기의 연속은 현재의 나에게 감기처럼 옮아와서 내가 아직까지 사랑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반문한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만 같다. 현재는 끊임없이 흘러가고 결국 과거가 되어 씩 웃으며 그날을 회상할테지만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압박은 지금을 지이이이그으으음으로 만들만큼 느리게 흘러간다. 하루에도 몇십번씩 고민하고 쇼츠와 릴스를 보며 도피해보지만 이미 자기계발 및 성장과 관련된 영상들로 가득해 수십번이고 자괴감에 빠진다.
나는 진심으로 일을 사랑하고 싶다. 정확히는 사랑하는 일을 찾고 싶다. 찾는다면 정말 사랑해줄 수 있다. 이것도 내 아집이고 조각난 과거의 편린이겠지. 사랑하는 일을 한다는 사람 또한 벽에 부딪히고 그것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수없이 봤으니까.
하지만 단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찾는 것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그 사랑을 찾으러 가는 길에 이미 지쳐버리는 것이 빠를 수도 있겠다. 나만 생각할 수는 없는게 현실이니까. 일이라는 사랑보다 중요한 사랑이 있으니까.
왁스의 ‘황혼의 문턱’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꿈보다 중요한 현실의 기제들을 위해 미루고 미루다 황혼의 문턱에까지 와서 회상하는 내용이다. 나조차 그러진 않을까? 일이라는 사랑보다 중요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 나에게 미래의 나는 다른 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싶은 걸 해’라던지 ’다른 모든 상황보다 중요한건 너야‘라던가 말이다.
어떤 선택이든 일단 하고 봐야하는 것을 이미 안다. 하지만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을 뿐이다. 선택하고 내가 그것을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