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자신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성장하기
사람들은 성장을 추구한다. 성장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은 보편적이지만, 그 방법은 각기 다르다. 그리고 어떤 방법을 택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다른 곳으로 귀인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삶을 꾸린다.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사는가?
‘방향’을 따져 성장방법을 구분하면,
첫째, 외부에서 내부로 오는 성장이 있다.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보고 배울 점을 찾아내는 것. 직장동료를 보며 사회생활의 기술을 익히는 것도 그렇지만, 급하게 칼치기하는 게 습관이던 운전자가 기어코 사고를 내는 것을 보고 운전대를 무겁게 잡자고 다짐하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니 무뎌졌다는 경험으로부터 인생사 새옹지마를 깨닫는 것도.
둘째, 내부에서의 성장이 있다. 그건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퇴근하고 독서를 즐기는 모습으로부터 깊이 있게 사고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스럽고 화날 만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으로부터 인내심 있는 스스로를 인정한다. 어떤 말이든 예쁘고 듣기 좋은 말로 쉽게 바꾸어 말하고 쓰는 모습으로부터 ‘다정한 나‘를 받아들인다.
나는 지금까지 첫 번째 종류의 성장만을 성장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성장이 외부에서 내부로 올 때는 ’반성과 성찰‘의 기운까지 몰고 왔고 그렇게 나는 자꾸만 낮고 부족한 사람이 되어갔다. 누구를 만나든, 어떤 상황에서든 배우고 깨달을만한 점들을 찾았다. 없더라도 땅을 파서 찾아냈을 정도로 나는 늘 성장에 목마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반성과 성찰의 자극을 양분 삼아 지금까지 잘 성장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내부는 표류하는 배였다. 이렇게 반성하라는 바람이 불면 그쪽으로 휘영청 기울고, 저렇게 성찰하라는 폭풍을 만나면 그쪽으로 가차 없이 휩쓸렸다. 돛 없이 바람 따라 항해하는 배는 불안하고 무섭고 한편으로는 외로웠다는 걸 한참 동안 몰라줬다. 그러나 내부에서의 성장 역시 성장이 맞다. 내면을 보살핀다는 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성장’이라는 가치적인 이름을 붙이기 부족해 보였던 걸까? 그런데 이제는 ‘이 성장방법이야말로 나를 정말로 성장시킬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변화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나는 모든 일에서 늘 ’능력과 노력‘같은 내부로 귀인했다. 그건 내 능력이 적거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적당히 ‘운이나 과제 난이도’ 같은 외부로 귀인하고 만다. 그 대신 내부의 ‘강점’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그곳에서 성장점을 찾아낸다.
내부로 시선을 돌려보면 반짝이는 것들은 그 자리에서 늘 그렇게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조명을 비추어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제 나는 두 가지 방법으로 그곳에 빛을 보낸다.
첫 번째는 ‘칭찬노트’를 작성하는 것이다. 내가 쓰는 칭찬노트는 위쪽에는 ‘나에게 어떤 칭찬을 해주고 싶나요?’라는 질문이, 아래쪽에는 ‘칭찬한 내용을 보고 나의 강점을 찾아보세요’라는 안내가 있다. 칭찬의 말을 계속하다 보면, 나의 강점을 발견하게 되고, 나의 강점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어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 삶이라니, 얼마나 멋진 성장인가!
둘째는 남들이 자주 해주는 칭찬을 강점으로 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건 일반적인 증거로 여길만 하기에 자신감을 갖고 받아들이면 된다. 과거에는 그런 칭찬들을 으레 하는 말로 치부하여 외면하거나 겸손주문을 걸며 부정했다. 그러나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듣는 칭찬이라면 그 칭찬은 노력이고 마음일 수밖에 없음을. 나는 그렇게 배를 정비하고 단단한 돛을 올렸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든다. 다수의 칭찬보다 ‘단 한 사람’의 칭찬을 더 힘주어 생각해도 되는 거라고. 내가 정말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칭찬샤워를 받은 적이 있다. 반 아이들에게만 해주던 걸 직접 받아보니 정말 좋기도 했지만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안도감이 있었다. 나와 가깝지 않거나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듣는 백 마디 칭찬보다 ‘내 사람’의 한 마디 칭찬이 나를 더 확신 있게 인정하도록 이끌었다. ‘정말일까?’하는 의구심과 불안감이 그렇게 안도감으로 옮겨가는 걸 보면서 우리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듣는 진심 어린 말’로부터 더 반짝이는 사람이 되는구나 생각했다.
나는 나를 칭찬한다, 고로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왜 존재하며,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우리가 추구하는 성장이라면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나를 안다는 건 나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걸 포함한다는 ‘너른 이해’가 진정한 나로서 존재하는 첫걸음이다. 스스로에게 빛을 비추는 나는 요즘 진짜 나로 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