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햇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교육철학은 어떻게 수업에 녹아드는가.

by 수진 ㅣ 교육자

수업 기법보다 교육 철학에 대해 더욱 생각하는 요즘이다. 모든 수업이 완벽할 수 없다는 건 일찍이 알았지만, 주당 22시간의 수업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챙기던 버릇을 내려놓은 건 최근이었다. 이제는 보다 너른 마음으로 수업을 기획하고 있는 건, 철저한 준비보다는 단단한 교육철학이 더 좋은 수업을 만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따르는 교육 철학이 서서히 확실해지고 깊어지고 있다는 걸, 우리 반 안마 사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저번 주에는 감기 몸살이 와서 시름시름 앓으며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보더니 재현(가명)이가 자기가 집에서 안마 세신사(?)라며 어깨를 주물러주는 거다 ㅠ 쪼물쪼물 해주는 게 마냥 귀엽고 마음으로 치유받는 기분이라 너~무 시원하다며 폭풍칭찬을 해줬다. 그런데 그게 사건의 발단이었음을..


우리 반은 1인1역과 연계하여 경제학급(동아리)을 운영하고 있는데, 1학기 말부터는 창업을 허용해 줬다. 제작키링 사업, 캐리커쳐 사업 등 많은 자영업자들이 생겨났고.. 한식햇반 시장은 그렇게 2학기에도 굴러가고 있었다.


재현이가 칭찬받는 모습을 본 아이들 2명이 창업 계획서를 받으러 왔다. “설마 너도???!!!” 하더니 둘 다 안마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서로 표절 아니냐고 하길래 나는 “시장 경제는 원래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발전하는 거야”라며 창업을 독려했다. 찌뿌둥함이 마사지를 받으면 시원함으로 바뀐다며 근육맨 그림이 그려진 홍보물을 보여주는데.. 다른 쪽에서는 안마 부위를 세분화했다며 전문성을 어필했다. ‘최고의 마사지 사장 증명서’를 만들어오기까지 !!! 아 첫 손님은 무료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안마 가게가 창업했다. 이번에도 기존 안마가게와 차별점이 있었는데 바로 ‘알바 모집’을 한 것이다.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었다. 가게 주인들이 남학생이었는데 여학생들이 안마를 받기 어려울 수 있으니 여자 손님을 위한 여자 안마사를 채용한다는 것이었다 ㅋㅋㅋ 나는 알바를 뽑는 기준과 방법에 대해 물었다. 아이들은 이에 대한 계획을 세워왔고, 알바생에게 보너스를 줘도 되냐고 묻길래 인센티브 효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며 좋은 생각이라고 독려했다.

안마 가게가 많아지자 한 가게에서 쿠푼을 만들어 왔다. 12번을 이용하면 1번 공짜라나 ㅋㅋㅋ 근데 왜 쿠폰이 아니라 쿠푼이라고 적었냐고 하니까 저작권에 걸릴까봐 그랬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일상적인 단어도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라고 물으며 저작권은 창작성이 있는 표현물에 인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이제는 알바생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겠다는 가게가 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 알바 채용 기준과 근로 조건도 이전보다 점점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가게 홍보를 마무리하는데 한 학생이 이렇게 질문했다. “이거 ‘한식햇반 BOOK’에서 빌려온 책에 다 나오는 내용이에요.“ ‘한식햇반 BOOK’은 우리 반 1인1역 중 ‘매주 월요일에 책 3권을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역할’이다. ‘#레모네이드로돈버는법 ‘이라는 책을 마침 빌려왔는데, 그 책에서 ‘시장 가격’, ‘회사’, ‘이윤’, ‘노동자‘, ’경영자’, ‘임금’, ‘가격 경쟁’ 등에 대한 개념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

아이들은 예약 접수도 받고, 쿠폰도 혜자로 뿌리는 등 치킨게임을 이어갔다.. ’한 달 간 무료‘라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내놓은 가게도 있었다. 책에서는 그러다가 가게 합병을 하는데, 우리 반도 ’가게 콜라보‘를 하겠다며.. 그렇게 6개가 넘던 가게들이 하나둘씩 합병을 하기 시작했다. ’타이’ 안마 가게를 열었던 아이는 11년 경력 안마사(?)와 가게를 합쳤고..

앞으로 또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반 경제를 움직일지 나까지도 흥미진진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요즘이다 개념기반 탐구학습 책을 몇 권씩 연달아 읽고 있다. 민주시민교육과 미디어 교육 연수도 꾸준히 듣는다. 수많은 교육 이론과 교육적 사조가 유행처럼 불어닥치고 교육 현장을 흔들고 지나가겠지만, 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과 탐구를 스스로 하고 단단히 키워간다면 좋은 수업이란 언제나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어린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주도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의 경험에서부터 출발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진보주의, 경험주의, 구성주의 교육 이론과 맥을 같이한다. 나는 우리 반 시장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틀린 길로 가는 것 같더라도 일단 지켜보고, 적절한 질문과 설명을 통해 개념을 수정하고 보완하도록 도왔다. 주도적인 것을 넘어 열정적으로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며 아이들은


1.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시장은 발전한다.

2.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3. 노동에는 대가가 따른다.

4. 인센티브는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인다.

5. 저작권은 창작적인 표현물을 보호한다.

6. 기업은 차별화된 전략으로 경쟁한다.

7. 소비자는 가격 경쟁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는 개념들을 배워나갔다.


그렇게 배우고 성장하는 게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점점 나의 철학으로 굳어진 것이다. 다음 동아리 시간에는 이 학급 경험들을 토대로 개념을 더욱 구조화하고 명료화할 수 있도록 수업할 예정이다. 그 수업의 좋은 재료는 결국 아이들이 만들어주었음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도 내가 나의 철학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이유다. 예전같았으면 내가 가르쳐야 할 것 또는 가르치고 싶은 것에 초점이 확실히 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하고 배울 수 있는 타이밍인지를 신경 써서 생각한다. 그리고 정규 수업에 녹일 수 있다면 적절히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연계한다. 삶이 수업이 되고, 수업이 다시 삶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쫓는 교육 철학이다.


어제는 간판 제작 가게가 새롭게 창업했다. 창업을 하려면 사업 계획서, 간판과 메뉴판을 제출해야 하는데, 간판을 디자인 하는 걸 어려워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시장조사했나 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배워나가는 걸 지켜보는 것도 참 흥미진진하고 재밌단 말이지.. 과연 한식햇반 시장의 운명은!!!!!

작가의 이전글나는 나를 칭찬한다, 고로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