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한 진짜 교육을 시작하는 방법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이정재가 “얼음!!!!!“이라고 외쳤던 것을 기억하는가. 교육 현장은 지금 완전히 냉랭해졌다. 얼음을 외치는 ‘법적 리스크와 악성 민원’ 때문이다.
안전사고가 생길까 꺼려진 것은 현장체험학습뿐만이 아니다.
미술 판화 수업은 손을 다칠까 싶어서, 실과 한 그릇 음식 만들기 수업은 화상을 입거나 칼에 베일까 싶어서, 체육 뜀틀이나 철봉 수업은 골절이나 두부 손상 위험이 있어, 약식 진행되거나 영상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기분 상해죄’로 민원을 받을까 훈육도 어려워졌다. 방과 후 지도는 부진아 낙인이 되고, 일기 쓰기 활동은 사생활 침해가 되고, 반성문 쓰기는 학생인권침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씁쓸하지만, ‘악’이 되는 것보다는 ‘안전한 무(無)’가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주 심판에 올랐고, 그럴수록 얼음 교사가 되었다.
다치지 않는 교사가 되어, 다치지 않는 아이를 만들고, 다치지 않는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에게 ‘가능한 선’만을 제공하는 사이. 더 좋은 교육을 위해 도전하거나 모험하는 일은 사라지고 있다. 결국 진짜 차가워진 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볼까?‘ 하는 교사의 의지 자체다.
억울하다고 사회에 소리치고도 싶다. ‘법적 리스크’에 대해서는 분명 안전 지도를 성실히 했다고, 다수의 아이들을 동시에 관리하는 것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알아달라고 외치고 싶다.
‘악성 민원’에 대해서는 아이가 실패와 고통으로부터 건강하게 성장할 기회를 앗지 말라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도 좋지만 교육적인 의도와 가치를 알아달라고 호소하고 싶다.
그런데 사실 교사들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아이들’이 있다. 얼음 교육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로 간다는 것을 우리들은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하고 싶은 마음과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교육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지금이 얼음을 부수고 교사가 교사답게 진정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가장 기본적인 인식을 구축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답을 ’신뢰‘로부터 찾고자 하며 교사, 부모, 아이를 위한 진정한 교육정책을 내어 달라고 이 글을 통해 읍소한다.
일부는 전체를 어떻게 망치는가. 사실 모두가 알고 있는 건 극성 학부모, 극성 교사, 극성 학생 모두 일부라는 것이다. 악성 민원조차도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지금은 ‘일단 의심하고 보자’가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우리는 ‘선의에 대한 신뢰’를 먼저 회복해야 한다. 교사가 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믿음, 학부모가 교육 활동을 믿고 필요하면 협력할 것이라는 믿음, 선생님은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믿음 말이다.
‘선의’로 다가오는 사람을 일단 믿어주고 진짜 문제가 있을 때만 따지는 문화가 필요하다. 교육부와 법원, 사회 모두가 신뢰로부터 ‘과도한 결과 책임’은 완화하고 ‘이해와 용서를 바탕으로 한 과정 존중’을 강화할 때 얼음 교사는 사라지고 교실에 봄을 열 수 있다.
늘봄 정책이나 3시 하교제가 이슈가 되는 건 ‘정말 아이를 생각했느냐’를 묻기 때문이다. 늦게까지 일하는 부모를 대신해 학교에서 긴 시간 돌봄을 제공하면, 아이는 하루 동안 부모와 몇 시간이나 만나고 몇 마디나 나눌 수 있을까.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는 게 국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부모가 제대로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함이 바람직한 복지라는 건 유년기 결핍들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어른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결핍을 극복한 어른들은 말한다. 진짜 혜택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양분을 어릴 때 충분히 누리는 것이라고. 네모난 교실에 갇혀, 지는 노을까지 보고 깜깜한 밤에 나서 해뜨면 또다시 그곳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은 행복할까.
아이들이 원하는 건, 일찍 퇴근해 자신과 시간을 보내고 정서적으로 교감해주는 부모로부터의 사랑이다. 따라서 육아에 시간을 쓰는 것을 권장하고 경력 단절이나 해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부모가 부모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살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교사는 교육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다.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 없이, 어떤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교사는 아이를 성장시키려 하고, 학부모는 아이를 사랑하려 하고, 아이들은 자라나려 한다는 기본적인 선의를 서로 믿어야 한다.
정책들이 이 선의를 뒷받침해 줄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가 지금부터 할 일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쌓아가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얼음을 깨고, 아이들을 위한 진짜 교육을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