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프롤로그
세상은 각박해지고 묻지마 살인이 늘어나며 타인에 대한 무관심도 깊어지고 있다. 보험사기 살인과 사건을 통해 살인범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다. 한 여자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은 전무후무하다.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한 사람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명의 소중함과 존엄함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이야기속 일부는 실제 있었던 살인 사건의 실화를 모티브로 해서 기획하게 되었다.
비록 온 땅이 가린다고 할지라도
사악한 행동은 자꾸 일어나
사람의 눈에 띄고 말지니
-윌리엄 셰익스피어,<햄릿>
꿈에서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동자승은 바랑을 열어 눈물을 담았다.
망설이던 발자국은 산에 머물러 산중시간 속 침묵으로 갇혀 담장 이끼로 피어났다.
억새는 몸을 일렁거리고 동자승의 기도는 가늘어지고 머리카락이 사라졌다.
안개는 눈물로 구름은 복제된 표정으로 자꾸만 솟아나고 ,
바람은 가족을 몰아 회전하는 일주문 지나 배웅과 출발은 정거장에서 기다린다.
염주알 108개를 돌리면 낯설었던 수많은 눈들이 스쳐간다.
법당에는 괘불탱이 번져와 문밖으로 그녀는 커간다. 바랑을 열어 풍경소리 담아 방랑도 넣고 나니 목어가 흔들려 처마 끝에 걸려있던 얼룩진 눈동자가 쏟아져 문을 열어 바깥으로 흘려보낸다. 기억은 허공으로 팽창하고 혼자 떠돈다. 키울 수 없었던 고민 사이에 바랑을 열면 동자승이 출렁거린다. 암자 넘어 일주문 지나니 와불이 들어 앉았다. 스님이 되는 동자승은 번뇌를 끝냈다.
아궁이 속 숯은 붉은 심장을 머금고 있다. 몸을 태워 돌아갈 시간인가. 시야는 어둠에 적응할 시간이다. 빛은 가까운 듯 멀지만 잡히지는 않는다.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하다. 눈동자를 굴린다. 이마에 잡히는 주름은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는다. 아궁이에서 타들어 가던 숯은 몸을 태우고 껍질은 가볍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은 소용돌이 친다. 그녀는 응급실에 도착했다. 웅성거리는 의사들과 간호사, 형광등 불빛이 그녀를 에워쌌다. 울컥울컥 폐부의 심연에서 올라오는 그녀의 울음은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허락되지 않은 누군가는 떠나지 못한다. 웅성거리는 수면위의 일렁임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잦아 들어간다. 응급실은 갑자기 정적이 찾아들었다.
중환자실은 산자와 죽은자가 공존하는 곳이다. 누군가의 엉겨붙은 발자국 소리와 병원 침대를 끄는 소리가 위급함을 알리고 정적을 깨뜨린다. 시간이 멈춘 듯 환자들마다 특색이 있지만 의식이 없는 환자들이나 뇌사상태인 환자들은 날짜와 시간을 알지 못한다.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하고 가족과 친구도 모른다. 삶의 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도 하지 못하고 이유를 모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중환자실은 그렇게 365일을 살아간다. 시공간을 초월한 채 누워있는 그녀를 들여다보고 있다. 다시 누군가는 날짜를 세기 시작한다. 아무도 그녀를 기억한지 못했다고 했었지만 그녀 자신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추억하고 있는 것에 대한 기억을 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할까. 몸은 깨어나기 시작하고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 때문에 심장은 아팠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가족들에게 얘기했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의식이 없는 줄 알았었는데 시간이 더해지고 치료와 간호 덕분에 코마상태에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선명한 섬광으로 삶은 그렇게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식이 없었던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실로.
그녀는 코마에서 깨어나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우리는 무엇이며,우리는 어디로 : 고갱의 작품 제목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