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하는 남자(1)

연재소설

by 여름나무

“들쩍지근허게 생겼다. 니 몇 살이냐?”

“왜 이래요?”

막걸리와 편육을 날라다 주는 부엌데기가 쏘아붙였다.

아버지는 오늘도 동네 실비집에서 눈이 풀리도록 앞집 이 씨와 술잔을 기울인다.

막걸리가 찰랑하게 채워진 찌그러진 양은그릇의 누런 색이 희끄무리하다.

거나하게 취기가 올라오면 옆구리에 끼고 있던 목발로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손님의 의자 다리를 툭툭 치면서 “왜? 뭐?” 시비를 붙이기 일쑤다.

한바탕 소동이 지난 간 후 피떡이 된 입술을 시꺼멓고 반질반질한 낡은 점퍼 소매로 쓱 닦아버렸다.


아버지는 6.25 전란 때 상이군인이 되었다.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오른쪽 다리 때문에 목발에 의지하게 되었다.

나라에서 나오는 연금으로는 중고서점에서 준이의 중학교 참고서를 사기도 빠듯한 정도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 갈산초등학교 앞.

준이네가 사는 곳이다.

준이네 가족은 주정뱅이 아버지와 가톨릭 수녀가 되길 원했던 엄마, 그리고 터울 많은 형이 있다. 공고를 졸업한 형은 구로동의 어느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지낸다.

가끔 월급날 준이에게 통닭을 싸다주며 어린 동생을 측은하게 바라봤다.

“공부 열심히 해!”

“형이 대학 보내줄게!”

하며 이 천 원의 용돈을 쥐어줬다.


엄마는 오늘도 아침 일찍 성당으로 출근을 했다.

남편과 얼굴을 맞대고 있어 봤자 뾰족한 수도 없고, 잦은 손지검과 겁탈하듯 달려드는 짐승 같은 욕정에 욕지기가 올라온 지 한참 되었다.

‘개자식!’

‘죽어버려라!’

엄마가 수없이 되뇌었던 마음속의 악담들이다.

수녀가 되길 원했던 엄마는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술 취한 친구의 오빠에게 겁탈을 당해 임신을 하게 되었다.

망할 놈의 친구 오빠가 빌어먹을 지금의 준이 아버지다.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가톨릭 신자였던 엄마는 낙태를 할 수도, 죽을 수도 없었다.

친정에서 내버려지듯 쫓겨나 하는 수 없이 이 빠진 낡은 소반 위에 정화수 한 사발 떠놓고 맞절로 예식을 대신했다.

빈티 나는 얄팍한 은가락지 하나를 예물이라 받고 초야 같지 않은 초야를 치러야 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분한 마음에 엄마손은 알코올 중독이 분명한 아버지의 손보다 더욱 부들부들 떨렸다.

엄마가 성당에 가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남은 음식들을 받아와 식구들의 끼니를 해결하려 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반찬투정을 잊지 않았고, 급기야 엄마는 아버지의 밥그릇을 빼앗아 못 얻어먹어 깡마른 독구(준이네 강아지)의 밥그릇에 패대기치듯 부어버렸다.

독이난 아버지는 밥상을 엎어버리고 절룩이는 다리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노무 집구석! 불을 확! 싸질러버려야지! 퉤 퉤 퉤!”

“쾅!”

발로 차고 힘껏 풀스윙으로 닫아버리길 여러 번. 대문은 이골이 낫는지 부서지지도 않고 되레 약이라도 올리듯 “끼익 끼익” 소리만 내며 날름거리는 혀처럼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시간은 지나 낙엽은 떨어지고 길고양이들도 추운지 담벼락 아래 햇살이 머무는 곳에서 꾸벅거렸다.

어느 날부턴가 엄마는 하루 이틀 집을 비우게 되었다.

성당자매님들과 피정을 다녀오기도 하고, 수도원 식당에서 며칠 씩 일을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점점 더 술에 찌들어가고 얼마 남지 않은 세간을 후 드려 패다 지쳐 냉골에서 쓰러지듯 잠이 들곤 했다.

학교 앞 또와 분식집.

오래된 나무틀의 미닫이 유리문에 빨간 페인트로 비뚤게 ‘또와 분식’이 그려 저 있다.

낡고 허름한 차양이 코밑으로 거뭇하게 수염자국이 생기기 시작한 녀석들을 맞이해 준다.

아직 다 못 큰 남자아이들이 우르르 때를 지어 분식집에 들이닥쳤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중학생 남자아이들에게서 나는 꼬질꼬질한 땀내와 지린내가 달큼한 떡볶이 국물과 섞여 희안한 냄새를 만들어냈다.

떡볶이, 순대, 라면과 시커먼 기름에 튀겨낸 고구마튀김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초라한 분식집에서 준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끼이익”

부식된 철재대문이 힘없이 열렸다.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듯 맥 풀린 준이의 눈은 아무렇게나 벗어던져놓은 아버지의 낡은 워커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안방문을 조심히 열었다.

웅크리고 누워있는 아버지의 차량 맞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냄새나는 양말의 뒤꿈치가 해져서 허옇게 일어난 굳은 각질이 보였다.

조용히 문을 닫은 준이는 작지만 독한 한숨을 조심히 토해냈다.

좁은 마루 한편에 빛바랜 가방을 내려놓고 쌀독을 열어봤다.

얼마 남지 않은 쌀을 두 공기 꺼내어 난생처음 아버지를 위한 밥을 짓는다.

흰색과 누런색이 얼룩덜룩한 양은 냄비는 종잡을 수 없는 준이의 마음 같다.

찬장에는 시어 꼬부라지고 말라가는 김치가 커다란 냉면그릇에 수북하게 담아져 있다.

준이는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생각해 봤다.

기름에 달달 볶은 다음 물을 붓고, 파를 송송...

찬장에 달걀이 달랑 하나 남아있다.

김치찌개 냄새와 밥 끓는 냄새가 아버지를 깨웠다.

“당신이야?”

기대에 가득 찬 목소리가 부엌문을 벌컥 열었다.

아버지와 준이는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에 서로를 위로하는 눈빛을 주고받는 사이가 될 뻔했다.

며칠 간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불안해하며 기다렸던 건 아버지나 준이나 마찬가지였다.

준이는 아버지 밥그릇에 고봉으로 밥을 담았다.

따끈한 김치찌개와 달랑 하나지만 달걀후라이도 했다.

“짜식! 제사 지내냐? 누가 이 밥을 다 먹냐?”

아버지는 말 한마디 없이 고봉밥을 다 먹어치웠다.

김치찌개도 게걸스럽게 국물까지 퍼서 쓱쓱 비벼먹었다.

하지만 달걀 후라이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곤 준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힘겹게 일어났다. 절뚝거리는 발소리, 다시 “끼이익”거리는 철재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준이는 불안하지 않았다.

맛있게 끓인 김치찌개를 먹으러 아버지가 꼭 돌아올 것 같았다.

준이도 한 술 뜬다.

“앗! 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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