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크리에이터?? 내가??

by 여름나무

겨울치고는 따뜻한 날이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내리는 비에 애써 드라이 한 머리는 이미 바짝 풀이 죽어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일 년 만에 혜정이를 만나는 날이다.

천호역 7번 출구.

헉!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불과 일 년 만에 20키로의 살을 찌운 혜정이는 어디서 구했는지 시뻘건 우장 같은 코트를 걸치고 멋쩍게 웃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찐 살 때문에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고, 자세히 찾아봐도 목을 찾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혜정이가 무안해할까 봐 아무 말 없이 웃음으로 넘긴 나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컨셉을 오동통으로 바꿨어? 하하하” 정도로 인사를 끝냈다.

우리는 항상 갔던 국숫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여전히 맛있다며 순식간에 비빔국수 한 그릇을 흡입한 혜정이는 내 눈치를 살폈다.


길모퉁이 카페.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았다.

“크리스마스트리 너무 예쁘다!” 나의 물개박수를 웃으며 바라보던 혜정이는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한마디 툭 던졌다.

“나 신장에 문제가 생겼어!”

“투석해야 하나 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거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며 카페 탁자만 맥없이 바라봤다.

비가 그쳤다.

거리의 네온사인 불빛들이 눈을 파고든다.

아리다.

다시 천호역 7번 출구.

아무 말이 필요 없었다.

서로 손을 맞잡았을 뿐이다.

억지로 입가에 미소만 던져놓았다.


‘요즘은 왜 이리 좋은 일이 없지?’

‘주식도 다 떨어지고..’

주식시장은 자고로 12월에는 산타랠리라 무조건 오른다던데 올해는 산타께서 바쁘신지 통 소식이 감감했다.

‘로또도 두 장이나 샀는데.. 힝!’

아무것도 안 맞는 게 로또라지만... 한 끗 정도는 맞아야 만 원의 행복에 투자할 맛이 생길 텐데..

‘느닷없이 혜정이도 아프고..’


혜정이 생각에 뒤척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밤새 잠들고 깨고를 반복하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잤는지 말았는지 몽롱한 상태로 오전시간을 보냈다.

나의 고단함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누런 햇살은 거실이 패일정도의 사나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너무 구웠나?’ 바스락 거리는 토스트에 물기 많은 토마토 조각과 치즈 한 장을 올려 대충 우적거리며 밍밍한 흰 우유로 목마름을 해결했다.

맥 빠진 듯, 별생각 없다는 듯 리클라이너에 벌러덩 드러누워 핸드폰을 열었다.


‘스토리 크리에이터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대표 창작 분야로 좋은 활동을 이어나가 주시길 바랍니다.’ 좀 전까지 의욕 부진의 정점을 찍었던 나는 고장 난 로봇처럼 순식간에 직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읽고 또 읽었다.

‘뭐 하는 거지?’ ‘축하한다고? 나를?’

서둘러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고 스토리 크리에어터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부끄럽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면서 뿌듯해지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연말 연예 시상식에서 제일 많이 하는 소감이 “더욱 열심히 하라는 말씀인 줄 알겠습니다!”

이럴 때 난 새우깡을 아사삭 먹으며 “모야? 식상하게!” 라며 핀잔을 던졌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 역시 제일 먼저 생각나는 말은 시상식 수상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절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술술 나왔다.

브런치의 글들을 볼 때마다 초록 배지가 은근히 부러웠었다.

하지만 이젠 여름나무라는 나의 닉네임 아래에 버젓이 초록의 배지와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작은 명패가 생겼다.

나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떨어진 엔비디아 주식보다, 맞는 숫자 하나 없는 로또보다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다.

나는 벌써 대단한 작가라도 된 것처럼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무엇이라도 당장 써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혜정이에게 편지를 썼다.

내게 좋은 행운이 감사히 찾아왔다고, 그러니 너에게도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거라고..

희망을 놓지 말고 잘 이겨내 보자고.. 다음에 만날 땐 만두도 꼭 먹자고..

함께 있는 시간에 하지 못했던 마음속의 위로들을 몇 자 적으며, 혜정이의 희망과 나의 희망에 물과 햇빛을 보내주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내주신 브런치에 감사한 마음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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