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by 여름나무

눈을 뜨기가 힘들다.

붕어빵 속의 팥앙금처럼 이불속에 깊숙이 파묻혀 꼼짝할 수 없다.

어젯밤 늦게까지 손바닥만 한 핸드폰 속 세상을 헤매다 늦게 잠이 들었다.

암막 커튼이 간절한 아침이다.


오늘은 조카의 대학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조금 흐리지만 포근하다.

이런 날씨는 오래된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나의 대학 졸업식이 있던 날.

새벽부터 진눈깨비가 날렸다.


엄마는 전날 미용실에서 보기만 해도 무서운 불고데기로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 왔다.

망가질까 봐 조심히 잠들었다가, 눈을 뜨자마자 거울 앞에서 머리부터 확인했다.

아빠는 양복보다 몇 배는 비싼 한복을 잿빛 두루마기까지 갖춰 입었다.

눈 밑에 있는 작은 점까지 비출 정도로 검정 구두에 물광을 입혔다.

나는 고급스러운 아빠의 한복차림이 좋았다.

곱상한 얼굴과 잘 어울렸다.


할머니는 노인대학의 최고 멋쟁이고 싶어 했다.

땡글한 얼굴에 백태 낀 눈, 습자지보다 더 얄팍한 귀.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렸고, 인색하기론 최고였던 나의 할머니.

내 엄마가 아니고, 아빠의 엄마여서 정말 다행이다.


암튼 연분홍 한복에 배트맨의 망토보다 더 넓쩍한 밍크숄을 두르고, 무거운 곰인양 어슬렁 거리며 아들 며느리의 호위를 받으며 오셨다.

딱히 반갑지는 않았지만, 먼저 다른 세상으로 떠난 큰고모 생각에 훌쩍거리는 할머니가 약 2초쯤 안쓰러웠다.


졸업식이 끝난 뒤 먹었던 포천 왕갈비.

지금 생각해도 생크림보다 부드럽고, 입에 짝짝 달라붙는 그 맛.

다시 먹어도 같은 맛일까?


늦은 오후, 오빠가족과 함께 중국집에 모여 조카의 졸업사진을 한 장씩 넘겼다.

이제 사회인이 된 조카가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밤바람이 싸늘하다.

남편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에 초승달이 새초롬히 걸려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솜털 뽀송한 목련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노오란 개나리도 아파트 담장을 메우겠지.


4월이면 딸기 아이스크림 색깔의 벚꽃이 온 세상을 덮는다.

조카의 앞날에 벚꽃잎보다 많은 행복이 찾아오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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