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 낯선 나

by 푸르른 나


고3의 길고 고된 수능이 끝났고 나는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사실 고등학교 내내 “간호학과는 가지 말자” 다짐했지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됐다.


미술학원, 미용학원, 기타 학원…..


나는 내가 무얼 해야 재미있는지 알고 싶어서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그 어떤 것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결국엔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다른 직업군보다 비교적 취업이 잘되는 학과인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남들보다 뒤처져선 안된다는 마음이 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나는 지금 2학년 1학기 방학을 보내고 있다.


나름 실습복도 샀고 간호학과 동기들한테 ”난 간호학과 휴학 안 하고 끝까지 다닐 거야 “라며 선전포고까지 했던 걸 보면 1년 전의 나보다는 확실히 성장을 했다.


1년 전의 나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요동쳤다.


[2024년 6월-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날]


엄마가 제안했다.


“종강하면 여름방학 기간 동안 뉴욕에 계시는 이모집에 어학연수도 할 겸 다녀올래?


순간 주저했다.


부모님 없이 해외여행을 가본 경험은 2023년 겨울에 친구랑 갔던 나고야뿐이었기에.


그래도 언젠가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독립을 해야 했고 중학교 때부터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는 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나는 용기를 냈고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2024년 6월 27일-출국날]


기대 반, 두려움 반.


새벽부터 일어나 캐리어를 챙겨 인천공항으로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기 전에 아빠가 웃으면서 나한테 손을 흔들어주셨다. 아마도 내가 몇 개월 동안 옆에 없을 거라는 사실이 조금 서운하셨던 것 같다.


4시간 30분의 긴 버스 시간 동안 쪽잠을 잤고 세 번의 뒤척임과 많은 생각 끝에 공항에 도착했다.


어느새 나는 뉴욕행 비행기를 탔고 설레고 홀가분한 기분을 가지고 지구 반대편, 뉴욕에 도착했다.


입국심사 줄에 서서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뉴욕에서 잘 지내다가 돌아가겠다는 문자들을 주고받았고 입국장 근처 게이트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이모의 문자를 받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진짜 인생에 몇 번 안 될 기회인 어학연수를 왔다는 게 실감 났다.


이모와 이모부의 차를 타며 이모 집에 가는 내내 보았던 집, 나무, 도로, 표지판, 새벽하늘, 공기 모두가 새로워 보였다.


[Whitestone, 이모집으로]


내가 3개월 동안 머물 곳은 뉴욕 퀸즈(Queens) 안에 위치한 Whitestone이라는 동네였다.(한국에서 흑석동이 있다면, 미국에는 백석동인 Whitestone이 있는 셈이다).


이모집은 고속도로 옆에 위치한 4층짜리 아파트의 3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무거운 캐리어 두 개를 들고 계란을 오르느라 애를 먹었지만, 이모와 이모부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짐을 옮길 수 있었다.


이모 집에 도착하니 밖과는 또 다른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새로운 환경들이 제각각의 공기들을 내뿜는 듯이 나를 반겨주는 듯했다.


어쩌면 나는 그런 공기들을 갈망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이모는 선물로 진한 핑크색 에어팟 케이스와 에어팟 프로 2를 주셨다.


그동안은 보이스톡으로만 대화했는데 눈앞에서 이모와 웃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웠다.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니 1시간을 눈감고 뜨듯이 휙 지나갔고 그렇게 뉴욕에서 첫날밤이 지나갔다.


잠들기 전에 나는 “아직은 무섭지만 이왕 온 김에 영어에 자신감을 갖고 돌아가자”라고 다짐했다.


[내가 자주 갔던 장소인 도서관과 Little Bay Park]


도서관은 한국에서도 집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거나 심심하면 자주 갔던 곳이었다.


이모와 이모부께서 직장으로 향하실 때 나는 혼자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는데 근처에 도서관을 발견하고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그 도서관은 동네 아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이 열리는 중이었고 유치원생 또래의 아이들이 있었다.


영어로 서로 대화하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열심히 영어를 듣고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이모는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으면, 부딪히는 게 제일 빠르다” 고 하셨다.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 소설들을 권유해 주셨고 덕분에 그때의 영어독해의 경험들은 스피킹은 미흡해도 리딩은 잘하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Little Bay Park였다.


이름 그대로 작은 해협을 지니고 있는 공원으로 드록스 넥 브리지(Throgs Neck Bridge)라는 다리를 볼 수 있는데 뉴욕의 퀸즈와 브롱스를 연결한다.


나름 산책로도 길고 테니스를 하는 사람들과 멍을 때리며 사색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나는 돌다리 위에 서서 사진을 찍거나 앉아서 책을 읽곤 했다. (그때 읽었던 책은 셜록 홈즈-공포의 계곡.)


가끔 예고도 없이 내리는 가랑비에 젖을 때조차 짜증보다는 편안함을 느꼈다.


초등학교 2학년 이후 처음 성인이 되고 나서 온 뉴욕은 낯설고 두려웠지만 2~3주가 지나자 익숙함과 안정감이 생겼다.


뉴욕 생활을 하며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찾은 곳이기도 한 Little Bay Park.


내가 뉴욕 어학연수 도중에 많은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립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그때의 그곳에서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나도 참 많이 성장했다는 게 느껴진다.


나는 여전히 어느 때 서나 다름없이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지만 적어도 이젠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뉴욕의 공기와 공원, 도서관,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든 퍼즐조각과도 같다.


나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아야만 했던 20살의 나는 환경뿐만이 아니라 나조차도 낯설었다.



<그 당시 찍었던 사진들>

->미국 가기 전 한국에서 찍은 하늘 사진


-> 비행기를 타기 직전 설레는 마음으로


-> 미국 공기와의 마주함


-> 이모집에서 찍은 사진들



-> 돌다리에서 책 읽는 나



->내가 좋아하는 리틀베이공원

일요일 연재